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파시즘 (문단 편집) === [[민족주의]]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민족주의)] 독일은 1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맺은 [[베르사유 조약]]의 부당한 조치와, 프랑스군의 점령지역에서 일어난 억압과, 영미권에 의하여 강제된 정치체제에 분노하여 민족주의가 크게 고조되었다. 나치의 경우 고대 아리안 종교에 대한 관심과 함께 "게르만 족의 생활 공간 ([[레벤스라움]])," "고유 영토" 등의 개념에 대한 광적인 집착을 보여주며, 나치당은 [[오토 폰 비스마르크|비스마르크]], [[프리드리히 대왕]], 더 나아가서는 [[프리드리히 1세|바르바로사 대왕]] 등을 민족 영웅으로 내세우며 선전에 나섰다. [[아돌프 히틀러]] 본인은 로마 제국에 대한 동경심을 가지고 있었고 일천년 동안 유지될 자신의 제국이 로마와 같이 많은 유산들을 남길 것이라는 몽상을 품고 있었다. [[일본제국]]의 경우 물질주의적 서구에 대항해 이른바 "야마토 정신"으로 일컬어지는 [[정신주의]]로 무장한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고, 좀 정도가 심했던 [[황도파]]의 경우 이른바 [[쇼와 덴노|쇼와]] 유신이라는 미명 하에서 [[천황]]이 친정을 하는 [[절대군주제]]를 주장하기에 이르른다. 이탈리아는 1차 세계대전에서 [[협상국]]으로 참전하면 영토와 이권으로 보상하겠다는 [[런던 밀약]]에 속아서 독일을 배신때리고, 연합국에 붙어서 전쟁에서 수백만의 사상자와 수십만의 전사자를 희생하며 승전국이 되었지만, 협상국은 약속했던 이권을 축소하거나 주지 않으면서 이탈리아에게 뒤통수를 날렸다. 이로 인해 이탈리아에서 민족주의적 분노가 크게 고조되었다.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는 로마 제국의 부활, 지중해의 이탈리아 내해화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었다. 각 파시즘의 분파의 공통점은 "외압"으로 부터의 자유에 대한 주창이다. 흔히 [[일본제국]]의 [[대동아공영권]], 나치당의 초기 선전 포스터의 표어 인 "Arbeit, Freiheit und Brot"(일자리, 자유[* 개인 단위의 자유가 아닌 (1차대전 승전국의) 외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빵)으로 알수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외압으로의 자유를 위해 내세운 대안(전쟁)이 역으로 다른 민족을 탄압하는것이었다는 점이다. 파시즘이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기회주의적으로 변해왔으며, 여러가지 이념들을 혼합하여 취사선택하는 짬뽕 잡탕의 성격을 가졌지만, 민족주의만큼은 언제나 항상 일관적으로 파시즘의 기반을 형성하였다. 민족주의는 파시즘의 핵심중의 핵심이었다. 파시즘의 일관되지 않고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인하여 파시즘에 대한 이론 역시 학자마다 다양하지만, 극단적 민족주의는 모든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부분이다. 이로 인하여 일반적 파시즘론에서는 파시즘의 최소치로 민족주의를 포함시킨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