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파르티아 (문단 편집) === 기원 및 형성 === 파르티아는 카스피 해 남동쪽, 현재 이란 북부~[[투르크메니스탄]] 남부 일대를 가리키는 지명이다. 고대 [[페르시아어]] "파르타바"에서 유래한 말로, [[다리우스 1세]] 시대에 새겨진 베히스툰 비문에서 [[아케메네스 왕조]]가 지배하는 땅들을 열거할 때 처음 나온다. 이 지역에서 나라를 세웠으므로 나라 이름도 그대로 '파르티아'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들 스스로는 시조인 [[아르사케스 1세]](Arsaces I, Arshak 혹은 Ashk)의 이름을 따서 '아르사케스 왕조'라고 했다. 건국자인 아르사케스 1세는 [[스텝(지리)|스텝]] 지대에 살던 '''파르니'''(Parni)라는 유목민 부족의 지도자였다. 파르니족은 '''다하이'''(Dahae, 고대 페르시아어 '다하')[* '도둑떼'라는 뜻이다.]라는 유목민 집단의 일부였으며, 원래 파르티아 땅이 아니라 그보다 북서쪽에 있는 [[트란스옥시아나]] 지역에 살았다. 아케메네스 왕조 시대에 [[페르시아]]에 복속되었고, [[알렉산드로스 3세]]와 다리우스 3세가 맞붙은 [[가우가멜라 전투]]에도 동원되었다. 알렉산드로스 3세 사후 [[디아도코이]] 전쟁의 결과로 과거 아케메네스 제국의 영토 대부분이 [[셀레우코스 왕조]]에 편입되는 동안, 다하이족 역시 대세를 따라 셀레우코스 세력에 굴복했다. 셀레우코스 왕조의 동방 영토는 수십년 동안 심각한 저항이나 외침을 받지 않았지만, 기원전 250년경이 되자 파르티아와 [[박트리아]] 지방의 [[사트라프]]들이 연달아 반란을 일으켰다. 소수의 그리스-마케도니아인들이 지배하는 셀레우코스 왕조는 시리아의 [[안티오크|안티오케이아]]에 그 거점을 두고 있었으며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의 [[시리아 전쟁]], [[켈트]]인들의 [[갈라티아]] 침입 등으로 전력이 분산되어 머나먼 동방 영토를 제대로 관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도 파르티아 지역을 자주 약탈하던 아르사케스 1세와 파르니 부족은 파르티아의 사트라프 안드라고라스가 반란을 일으켜 독립 세력이 된 틈을 타 본격적인 침공을 감행하여 점령해버렸고, 이것이 아르사케스 왕조의 시작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