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티투스 (문단 편집) === 후계자 시절 === 71년 개선하여 로마로 돌아온 티투스는 성대한 유대 전쟁 개선식을 거행했다. 이때의 개선식 모습은 로마에 현재까지 남아있는 티투스 개선문에 남아 있다. 이후, 그는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개인 군대인 황실 근위대의 지휘를 맡았다. 이후, 아버지와 공동 통치를 하며 호민관 권한을 부여받았고, 2년 뒤인 73년에는 감찰관을 아버지와 함께 지내면서 몇 차례에 걸쳐서 집정관을 지냈다. 이처럼 티투스는 제위 계승자이자 아버지의 [[러닝메이트]]로 정치가 겸 행정가로의 역량을 키워나갔다. 이때 일화도 있는데 그것은 아버지가 양모 가공업자들에게 매긴 [[오줌]]세에 관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양모는 특유의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암모니아]]로 세척하는데, 지금이야 정제 암모니아를 쓰지만 당시에는 암모니아가 포함된 오줌을 사용했다. 로마의 양모 가공업자들은 공공화장실의 오줌을 공짜로 이용했고, 이런 양모업자들의 무임승차에 대해 베스파시아누스는 과감하게 오줌세를 거뒀다. 이에 양모업자들은 크게 반발했고, 티투스 역시 같은 생각이었기에 아버지에게 이를 따졌는데 이때 베스파시아누스가 [[동전#s-2.2|은화]] 한 줌을 아들 코앞에 쥐어 주며 '''"자 맡아봐라. 오줌 냄새가 나느냐?"''' 라고 [[촌철살인]]급의 대답을 하며 해프닝으로 반발을 수습했다고 한다. [[베스파시아누스]] 사후 이 오줌세 때문에 희극에서 고인드립이 벌어졌는데 아버지가 생전에 저런 개그를 많이 했던거에 익숙했던 티투스는 그냥 웃고 넘어갔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런 일화 못지 않게, 어두운 면이 많았던 후계자가 바로 티투스였다. 그는 잔인했고, 비열한데다 폭력적인 테러 행위를 대놓고 벌였다. 서기 79년, 티투스는 아울루스 카이키나 알리에누스, 에피우스 마르켈루스가 베스파시아누스와 자신을 폐위시킨다는 음모를 꾸몄다면서, 알리에누스를 저녁 식사에 초대한 다음 들어오자마자 자신 앞에서 칼로 찔러 죽이게 했다. 이때 티투스는 이들이 했다는 혐의를 조작해 유죄 증거로 만들어 놓고, 알리에누스의 연설문이라는 것을 위조해 만들어 자신의 테러 행위를 정당화 했다. 이런 행동은 이후에도 계속 됐는데, 여기에는 후일 황제가 되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할머니([[트라야누스]] 누나의 외손녀 루필리아 파우스티나)의 집안 어른들인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와 피소의 후손 등 오래된 귀족과 옛 오토, 비텔리우스 지지자, 베스파시아누스를 도운 인사들이 숙청 대상에 올라, 큰 고초를 겪었다. 이중 공화정 시대부터 내려온 극소수의 [[파트리키(계급)|파트리키]], [[노빌레스]] 출신 원로원 의원들은 아우구스투스 시대 이후 그 재산이 현저히 줄고, 명맥만 유지해 "돈도 없고 가난함만이 남은 이들"이라고 놀림감이 된 경우가 많았음에도, 티투스의 이런 행동으로 추방형, 재판 회부 등 온갖 고초를 겪었다. 그럼에도 티투스는 이를 역이용해, 네 황제의 해 동안 벌어진 사건들까지 끄집어 낸 다음 피해 입은 귀족들의 복수를 도와주고 이를 통해 지지를 얻는 영악함까지 선보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