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티베리우스 (문단 편집) == 여담 == * [[알루미늄]]의 생산을 금지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로마의 역사학자인 플리니우스의 저서에서 나오는 이야기로, 한 여행자가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잔을 티베리우스에게 주었지만, 티베리우스는 이 금속이 금, 은의 가치를 떨어뜨릴까 두려워 알루미늄의 개발을 금지시켰다(덤으로 알루미늄을 바친 사람을 죽였다)는 이야기이다. 사실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사실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데, 19세기 전기분해법[* 이것도 사실 비용이 만만치 않다. [[아이슬란드]]의 주된 산업 중 하나는 풍부한 자연 에너지를 이용한 알루미늄 제련인데, 2008년에 가동을 시작한 알루미늄 제련소 한 곳을 운영하기 위해 700MW, 아이슬란드 전체 전력량의 1/3에 달하는 수력 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해야 했다. 다른 예로, 세계 최대의 알루미늄 제련 회사가 노르웨이에 있는데 풍부한 수력발전자원을 이용한다. 산유국인 노르웨이에 전기자동차가 아주 많이 보급된 여러 이유 중 하나. 애플은 이 회사제 알루미늄을 사면서 친환경 소재를 쓴다고 광고한다.]이 개발되기 전까진 순수한 알루미늄을 제련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워서 금, 은보다 더 귀하게 여겨졌다.[* 나폴레옹의 황제 즉위 이후 열린 연회에서도 제일 귀한 손님에게 내준 식기가 알루미늄 식기였고 그다음이 금과 은으로된 식기였다.] 구두쇠인 티베리우스가 생산을 금지하게 한 것도 이해가 갈 것이다.[* 한마디로 가성비가 개판이라 막는 게 옳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티베리우스는 쓸데없는 재정 지출을 싫어하는 타입이었으니.] * 후대 황제중 티베리우스와 많이 비교되는 [[도미티아누스]]는[* 두 황제는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았다. 행정에 세심하게 관심을 기울였고, 특히 원로원과 지속적으로 마찰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그렇다.] 티베리우스가 남긴 기록들을 그 무엇보다 열심히 읽었었는데, 이 사례에서도 보이듯이 티베리우스는 지나치게 엄격한 통치로 동시대인들의 불만을 샀지만 통치방식 면에서는 후대 황제들의 모범이 되었다. * [[오현제]] 중 한명인 [[네르바]]와도 인연이 있는 황제이기도 하다. 네르바 가문은 증조부때부터 대대로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와 깊은 협력 관계를 맺고 있던 귀족 가문이었는데, 당대 최고의 법률가 중 한명인 네르바의 할아버지는 티베리우스의 조력자이자 몇 안 되는 진정한 친구로 유명했다. 또한 네르바의 외숙모는 티베리우스의 손녀 율리아가 낳은 딸이었으며, 네르바의 아버지 역시 티베리우스 시절 원로원 의원이 된 뒤, 칼리굴라 시대에 집정관이 되었다. * 훗날 동로마에 '티베리우스'란 이름의 황제가 둘([[티베리우스 2세]] [[티베리오스 3세]]) 더 등장하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서는 '티베리우스 1세'로 불리어야 하지만, 고대 로마와 동로마의 연속성을 부정하는 뿌리깊은 편견 때문인지 오늘날까지도 '티베리우스 1세'라 부르는 경우는 해외에서도 거의 없다. 당장 [[클라우디우스 1세|클라우디우스]]부터 훗날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클라우디우스 2세]][* [[군인 황제 시대]]때의 황제이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1세'라고 불리는 경우가 드문 것을 보면, 이는 초기 로마 황제들의 압도적인 인지도와 3세기 이후의 로마사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된 현상인 것으로 보인다. * 티베리우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당시 황제이기도 하다.[* 다만 의외로 [[그리스도교]]에서는 티베리우스에 대한 악평은 하지 않는다. [[신약성경]] [[누가복음]]의 본문에서 티베리우스는 공생애 당시의 시대적 배경으로 "티베리우스 황제 치세 때의 일이다"라고 언급되고는 더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간접적으로 언급된 것도, 예수 그리스도가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라며 유대인들로부터 로마 제국의 권위를 옹호한 사례 정도가 있을 뿐이다. 예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황제에게 돌리는 것은, 예수 자신의 사상으로 볼 때도 복음서 저자의 의도로 볼 때도 굉장히 어긋난 생각이다. 실제로 당시 이스라엘 식민지 행정관이던 [[본디오 빌라도]]에게 책임이 있는가 없는가도 의견이 분분한 상황에, 거의 대륙 하나만큼 떨어져 있던 티베리우스에게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개역한글판]] 성경전서의 누가복음에서는 [[라틴어]] 탈격을 적용하여 '디베료'라고 부른다.[* 개역한글판 성경전서의 네 복음서에 등장하는 [[라틴어]] 인명 대부분이 그렇다. '[[아우구스투스]]'를 '아구스도'로, '[[클라우디우스]]'를 '글라우디오'로 '[[폰티우스 필라투스]]'를 '본디오 빌라도'로, ''[[코르넬리우스]]'를 '고넬료'로 부르는 등. 전부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흔히 알고 있는 라틴어 인명의 '-us'를 '-o'로 바꾸고, 'ㅋ, ㅌ, ㅍ' 등의 격음을 'ㄱ, ㄷ, ㅂ' 등의 평음으로 바꾸면 대충 개역한글판 성경전서에서의 표기가 나온다.] * 현대 이탈리아에서는 그를 티베리오(Tiberio)라고 부르는데, 그가 13년 동안 살았던 카프리 섬에는 황제의 이름이 상호명에 들어간 레스토랑, 디저트 가게, 카페, 숙박업소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 이혼당한 빕사니아는 이후 [[가이우스 아시니우스 갈루스]]와 재혼했다. * 운동능력이 아주 뛰어났는데, 그 정신력 역시 대단했다. 젊을 적 하루에 300km를 달렸고, 오래 달리기 등으로 건강을 관리해, 군복무 시절 종종 이렇게 운동하면서 본국 이탈리아와 게르마니아 일대를 돌기도 했다고 한다. 따라서 후대의 플리니우스는 이런 티베리우스 황제의 신체능력과 정신력에 혀를 내둘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