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티르피츠 (문단 편집) === 호송 선단의 주적 === [[파일:Screenshot_2019-08-07-23-16-13-1.png]] 티르피츠는 비스마르크가 침몰한 다음에 완성된 관계로 주요 작전에 거의 참가하지 못했고 사실상 연합군 함선을 향해 제대로 포격 한번 해본 적이 없지만 노르웨이 근방의 여러 항구들을 전전하는 것만으로 연합국 해군의 신경을 박박 긁어댔고, 만약에 티르피츠가 공세적으로 나올 경우 이를 감당하기 위해 대규모 선단과 항공기들이 필요했음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특히 되니츠 제독과의 일화도 나름 유명한데, 비스마르크의 허무한 손실과 수상함대의 [[바렌츠 해 해전]]에서의 졸전에 실망한 히틀러는 전함들을 골칫덩이로 여기다가 결국 갈아버릴 것을 결심했고 이를 위해 해군 총사령관를 [[에리히 레더]] 제독에서 잠수함 전문가인 [[카를 되니츠]] 제독으로 교체했다. 그러나 되니츠는 티르피츠를 갈기는커녕 티르피츠의 억지력을 눈여겨보고 "이거 갈아버릴 돈이 더 많이 든다. 얘들이 살아있기만 해도 가치가 있다."라며 히틀러의 예상과 반대로 히틀러와 다퉜고 결국 담판을 지어서 해군에 대한 추가지원을 약속받고 티르피츠를 지켜냈다. 취역 직후 [[바르바로사 작전]]에 참여하였으나, 순양함과 구축함, 기뢰부설함으로 편성된 함대의 기함 임무만 수행하였고 소련 해군과의 교전이나 포격지원은[* 포격지원은 중순양함들이 맡았다.] 하지 않았다. 이후 독일군이 레닌그라드를 포위하자 할 일이 없어진 티르피츠는 훈련 및 포격 시험을 진행하며 시간을 보냈다. 1942년부터는 북해 [[무기대여법|렌드리스]] 선단을 압박하기 위하여 노르웨이로 이동하고 1942년 3월 초, 티르피츠는 연합군의 수송선단인 PQ-12와 QP-8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3척의 구축함의 호위를 받으면서 출항했다.[* PQ는 영국에서 소련으로 향하는 호송선단에, QP는 소련에서 영국으로 돌아가는 호송선단에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티르피츠가 출항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수송선단에는 [[리나운급 순양전함]] [[리나운]]과 [[킹 조지 5세급 전함]] 듀크 오브 요크가 붙은 상태였고, 그 뒤에 독일군 몰래 전함 킹 조지 5세와 [[일러스트리어스급 항공모함]] 빅토리어스, 그리고 중순양함 1척과 6척의 구축함을 추가로 매복시켜둔 상태였다. 독일군은 선단을 발견하는데 실패했으며, 운 나쁜 한척의 수송선이 [[구축함]]에게 딱 걸려 침몰당했다. 결국 3월 9일 영국 항공모함 빅토리어스 호의 정찰기에 티르피츠의 출항 여부와 위치가 탄로난다. 독일 제독은 영국 해군항공대의 추격 및 공격을 우려하여, 티르피츠의 임무를 중단시키고 노르웨이로 귀환하도록 명령한다. 그러나 모항이었던 트론하임으로 돌아가는 길에 빅토리어스의 함재기로부터 어뢰와 폭탄 세례를 받는다. 하지만 티르피츠는 피해를 입지 않았고, 빅토리어스의 함재기중 폭격기 2대를 격추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