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티르피츠 (문단 편집) ==== 텅스텐 작전(Operation Tungsten) ==== || [[파일:external/www.kbismarck.com/tirp44.gif|width=100%]] || || 1944년의 티르피츠[* 중앙에 갑판 위에 놓인 어뢰 발사관과 2번 주포위에 대공포좌 등의 차이가 보인다. [[http://www.kbismarck.com/bism41fiord.gif|비스마르크]]와 비교해 보면 차이가 크다.] || 영국은 티르피츠를 주저앉힌 이후, 통신 감청과 항공촬영, 노르웨이 스파이를 통한 관찰로 끊임없이 티르피츠를 감시하고 있었다. 티르피츠가 복귀한 경우 호송선단이 공격받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에 1943년 말에는 티르피츠를 완전히 끝장내는 기획을 논의하게 된다. 그러나 1944년 4월경 수리를 마친 티르피츠는 다시 작전 가능한 상태가 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3월부터 이미 영국군은 조짐을 눈치채고 있기는 했다. 어쨌든. 영국은 독일 전함이 전부 무력화된줄 알고 자국 전함을 [[노르망디 상륙작전]] 준비와 [[태평양 전쟁]] 참전을 위해 내보내면서, 북해가 텅 빈 상태였다. 텅텅빈 북대서양으로 주력전함이 튀어나와서 호송선단을 초토화시키고, 그걸 막기 위해 상륙작전을 준비하고 훈련중인 전함을 도로 빼서 티르피츠와 숨바꼭질을 하는 사태는 달갑지 않았기에, 부랴부랴 티르피츠 격침 작전을 입안한다. 이를 위해 항공모함 [[퓨리어스(항공모함)|퓨리어스]]와 4척의 [[호위항공모함]]이 준비되었으며, 일러스트리어스급 항공모함 빅토리어스를 동양 함대에서 복귀시킨다. 이 조치로 동양함대가 주력 [[항공모함]]이 부재중인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는데,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공을 들이던 [[미 해군]] 역시 티르피츠의 출현을 경계하여 협조해주었고, 그 결과 [[새러토가]]가 영국 동양함대에 일시적으로 배속되어 인도양과 동남아에서 작전하게 된다. 거기에 더해 4월 1일에 수리된 티르피츠가 고속 항해를 테스트하는 모습이 노출되자, 다급해진 영국군은 [[킹 조지 5세급 전함]] 듀크 오브 요크와 앤슨을 텅스텐 작전을 위해 도로 불러온다. 앤슨을 기함으로 해서, 총 2척의 킹 조지 5세급 전함과 항공모함 빅토리어스, 1척의 경순양함과 5척의 구축함이 1그룹을 구성해 호송선단을 지키러 출발했고, 뒤이어 항공모함 퓨리어스와 4척의 호위항공모함이 5척의 구축함과 2척의 유조선을 데리고 2그룹이 되어 노르웨이로 향했다. 그리고 호송선단과 헤어진 1그룹이 2그룹과 랑데뷰한 뒤, 듀크 오브 요크가 티르피츠 레이드의 총기함이 되었다. 4월 3일 시험을 위해서 티르피츠는 경비가 삼엄한 모항에서 잠시 나와있었는데, 이틈을 노려 함재기들을 새벽에 출격시켰다. 영국 해군 항공대 소속 [[페어리 바라쿠다|바라쿠다]] 뇌격기들과 호위기들로 구성된 비행대를 2차례에 걸쳐 순차적으로 투입했으며 [[뇌격기]]들은 대잠탄, 갑판을 뚫기 위한 철갑 폭탄, 상부 구조물들에게 피해를 입히기 위한 소규모 폭탄과 일반 범용 폭탄 등 다양한 폭탄들을 적재해서 티르피츠에 쏟아부었다. 갑작스러운 기습공격에 티르피츠는 효율적인 대공방어를 해내지 못했으며 티르피츠의 승조원들도 허둥대며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다. 일부 영국 해군 전투기들은 갑판에 기관총을 마구잡이로 발사하기도 했다. 영국 해군은 3대의 항공기를 손실하고 티르피츠는 승조원 122명 사망에 300여명 가량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약간의 누수와 상부구조물에 손상을 입어 이걸 고치는데에 또다시 2개월이 들었다. 총지휘관이던 무어 제독은 다음날인 4월 4일에 다시 한번 공격하는 옵션을 검토하였으나, 공습 도중 촬영된 사진에서 티르피츠가 심한 손상을 입은 것으로 판단되었고, 삼엄한 작전 속에서 부하들이 심하게 지친 것을 고려하여 함대를 반전해 영국으로 돌아간다. [[조지 6세]]는 공습의 성공을 치하하였으나, [[윈스턴 처칠]]은 국왕 앞에서는 치하하였으면서도 개인적으로는 티르피츠가 끝장나지 않은걸 의식하고 있었고, 제 1 해군경이던 앤드류 커닝햄 제독도 4일에 재공습을 시행하지 않은 결정을 비판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