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특수부대 (문단 편집) === [[제2차 세계 대전]] === 현대적인 특수부대의 시초는 2차대전 때 활약한 서방의 [[코만도(영국)|영국 육군 코만도]]이다. 코만도라는 단어와 소부대 게릴라전 전술은 그보다 거의 반세기 전인 [[보어 전쟁]] 때를 기반하는데, 당시 보어인들의 저격과 소규모 부대의 기습 및 교란작전에 영국군은 숫적우세에도 불구하고 큰 피해를 보았다[* 당시 영국군은 전열보병 시대의 유산으로 붉은색 군복에 흰색 장구류를 장착하고 있었는데, 이 색상때문에 적군의 눈에 잘 띄어 큰 피해를 입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군복색상을 흙색과 비슷한 갈색으로 바꾸게 된다. 게다가 윈스턴처칠이 종군기자로 참전했다가 포로 생활을 한것도 이 전쟁.]. [[됭케르크 철수작전]] 이후 독일군이 영국 본토를 침공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영국군은 보어 전쟁에서 당한 그대로 독일군을 괴롭히려고 40년 6월 처음으로 육군 코만도를 창설한다. 이후 전세가 나아지자 코만도는 유럽에 위치한 독일군 기지들을 기습하는 임무를 맡는데, 1941.3.4일 노르웨이 해안에 대대 규모의 육군 코만도 부대가 상륙하여 클레이모어 작전(Operation Claymore)을 성공시켰다. 한편 [[에르빈 롬멜]]에게 주구장창 밀리던 북아프리카 전선에서는 영국 육군 제8코만도 부대의 [[데이비드 스털링]] 대위가 유럽전선에 있던 [[낙하산]] 기습부대인 제2코만도(11st SAS로 개칭)와 같은 부대를 중동지역에도 도입할 것을 건의했다. 그 이름은 유럽지역 제11공수특전단(11st SAS)과 연관성을 나타내기 위해 '육군 공수특전단(SAS) L파견대'로 지었다. 이 L파견대가 현재 영국 육군 특수부대인 [[SAS(특수부대)|SAS]]의 기원이다. 그러나 첫 작전은 사막의 돌풍, 이질적인 기후, 물 부족 등으로 인해 60명이 투입되어 단지 20명만 돌아오는 대실패로 끝났다. 이 실패자들을 구조한 것은 영국 육군 제8군 직할 차량화수색대인 장거리 사막 정찰단 LRDG였는데, 이후 SAS는 공수 기습을 포기하고 LRDG의 도움을 받아 차량을 이용한 기습작전으로 전환했다. 이들 합동부대는 영국 정규전 부대보다 뛰어난 활약을 보여 준다. 그들은 몰래 잠입한 후, 활주로나 기지를 파괴하는 파괴공작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특히 리비아의 이탈리아 공군 비행장이 그들의 밥이었는데, 250대의 항공기를 격파했는데 이는 특히 처음 털어버린 비행장을 재습격해 얻은 전과까지 포함된 것이었으며, 열개가 넘는 식수저장고와 도로 및 철도를 파괴한다. 폭파에는 [[경유]]와 소이 폭발물을 가득 담은 루이스 폭탄(Lewes bomb)이 사용되었으며, [[시르테]], 엘 아게일라, 아즈다비아 등지의 비행장이 공격대상이었다. 이탈리아 공군은 울며 겨자먹기로 전투기 1대당 보초병 한명을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계속된 기습에 이골이 난 독일군이 [[SAS(특수부대)|SAS]]가 침투할만한 지역들의 경비를 죄다 강화하면서 SAS 임무 실패도 점점 늘어났고, 마침내 스털링 소령 본인도 포로로 잡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점차 경험이 쌓이면서 독일군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지점이나 후방에 과감히 침투하여 공적을 쌓기 시작했다. 특히 1942년 3월 벌어진 [[생나제르#s-2.1|채리엇 작전]](Operation of Chariot)은 '''[[구축함]]을 [[충각|들이받아]]''' 전함 도크를 박살내고, 특수정을 통해 코만도를 상륙시키는 대담한 작전으로, 코만도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쌓게되었다. 또한 영국 육군 코만도는 [[1940년]] 설립된 '''특수작전집행부'''(SOE, Special Operation Executive)의 작전부대로 차출되기도 했다. SOE는 영국정부 산하 비밀조직으로 요인암살, 후방교란, 주요시설 폭파, 저항세력 지원 등 보다 포괄적인 업무를 맡았는데 [[코만도(영국)|코만도]], [[SAS(특수부대)|SAS]]를 차출하여 비밀작전을 수행했다. [[게슈타포]]국장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암살, 루르 댐 폭파, [[노르망디 상륙작전]] 및 [[시칠리아 상륙작전]][* 그리스 저항군 ELAS, PAO의 지원을 받았다.]상륙지점 기만, 중립국, 적국영토에서 시행된 폭파작전 등이 모두 SOE의 작품으로 특수작전사에 있어 한 획을 긋게 되었다. [* 여담으로 인도, 미얀마에 파견된 [[한국광복군]] 대원들을 지원한 롤랜드 베이컨(Roland C. Bacon) 중위 역시 SOE 소속이었다.] 당시 SOE의 연합국 파트너는 미국의 OSS(현 CIA), 자유 프랑스의 중앙정보작전국(BCRA), 소련의 NKVD 등이 있다. 이외에도 영국 육군은 [[제2차 세계 대전/전선#s-2.4|동남아시아 전선]]에서 장거리침투단(Long Range Penetration Groups), 통칭 [[친디트|친디트 부대]](Chindits)를 운영하기도 했다. 한편 이 기간에 추축국 진영과 공산권도 나름의 특수작전을 발전시켜 나갔다. [[나치 독일]]의 경우 [[아프베어]] 산하의 브란덴부르크 사단과 [[무장친위대]] 산하의 프리덴탈 특수임무대대, [[소련]]의 경우 방대한 자체 군사력을 가지고 있던 [[NKVD]]와 소련 공수군이 특수작전을 수행했다. 특히 소련은 작전 과정에서 유럽 각지에 산개한 지하 공산당 및 사회주의자 조직의 덕을 톡톡히 봤다고 전해진다. 이들의 특수작전은 [[스페츠나츠]]로 이어져 전통을 유지한다. 독일의 경우는 그 유명한 [[오토 스코르체니]]가 프리덴탈 특임대를 이끌어 여러 중대한 작전들을 성공시켰다. 하지만 당시 독일 특유의 대책없는 전쟁계획 덕분에 특수부대의 체계적인 운용이 어려웠고, 독일 본토가 위협받는 지경이 되자 브란덴부르크 사단이든 프리덴탈 특임대든 전선에 일반 보병부대로 배치받아 소멸한다. 때문에 체계적인 특수작전 전통이 이어지지 못했고, 독일의 경찰특공대 [[GSG 9]]이 자국 특수부대가 아니라 [[SAS]]에서 교관을 초빙하는 등 독일 특수작전 또한 영국식 체계에 편입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