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튜더스 (문단 편집) == 인물들의 후일담 == * 시모어 형제 이들 형제는 마지막 화에서 보듯이 절대적인 위치에 자리잡지만, 동생인 토머스가 막 나가기 시작하면서 슬슬 파멸하게 된다. 토머스 시모어는 [[헨리 8세]] 사후 왕비였던 [[캐서린 파]]와 결혼했지만 캐서린 파가 끙끙 앓는 중에, 당시 13세였던 [[엘리자베스 1세|엘리자베스 공주]]와 포옹하는 장면을 딱 걸리면서 엘리자베스 공주는 캐서린 파의 집을 떠나게 된다. 엘리자베스도 토머스 시모어와 결혼할 생각은 있었지만 망설였던 듯. 여하간 토머스는 1549년에 횡령죄로 기소는 됐는데 증거가 부족했던지 선대 때에 사용했던 효과적인 무기인 수권박탈법으로 처형되었고[* 형인 에드워드 시모어가 이 조치를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 형 시모어도 이후 [[영국]] 내에서 반란이 일어나면서 그의 입지가 좁아지기 시작한다. 정국을 잘못 운영했다는 거대한 비판에 직면하게 된 틈을 타서 존 더들리[* John Dudley, 초대 노섬벌랜드 공작. [[제인 그레이]]의 시아버지이자 그녀를 옹립한 장본인이다.]에게 정국의 주도권을 빼앗기게 되고, 1550년에는 무사히 넘어갔으나 더들리를 제거하려다 역으로 걸려 1552년에 목이 달아나게 된다. 형제가, 그것도 '''왕의 외삼촌들이''' 싸그리 목이 달아난 것이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이 존 더들리도 1년 후에 목이 달아나게 된다는 것(...). 자세한 것은 [[제인 그레이]] 항목 참고. * 토마스 탈리스 시즌1에서 윌리엄 컴튼과 찐한(?) 사이를 보여줬던 인물. 시즌1 피날레까지만 나오고 그 뒤는 안 나왔으나, 무려 [[엘리자베스 1세]] 시대까지 살았으며 영국 교회음악의 아버지로서 많은 교회음악을 작곡했다. * [[토마스 하워드]](노포크 공작) 역사에서는 이후 [[헨리 8세]] 치세 말기에 작위를 빼앗기고 [[런던탑]]에 갇히기도 했으나[* [[런던탑]]에 갇혔다는 것은 '''웬만해서는 죽음을 의미한다.''' 이 장소가 중범죄인, 특히나 왕에 대한 반역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처형 장소로 쓰였기 때문인데, 이 양반은 거기에서 살아돌아온 케이스. 원래는 아들의 반역죄를 숨겼다는 것을 법정에서 인정했고, [[헨리 8세]]가 노포크 공작의 처형에 서명하면서 완벽하게 목이 달아날 운명이었지만, 아들의 목이 달아난 며칠 후에 '''[[헨리 8세]]가 죽어버리는 바람에''' 왕위를 계승하는 [[에드워드 6세]]의 즉위식을 피로 물들일 수 없다 하여 사면, 석방되었다. 정말로 헨리 8세가 '''하루 이틀 정도만 더 살았으면''' 당대에 처형당한 사람들 명단에 올라갔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헨리 8세]]가 한 열흘만 빨리 죽었어도 아들도 살아났을 거라는 이야기...], 메리의 도움으로 풀려나 [[메리 1세]]가 여왕으로 올랐을 때 그녀를 보필한다. * 토마스 와이어트 [[앤 불린]]의 전 약혼자이자 시인. 앤과의 사랑을 잊지 못하는 순정남의 이미지로 나오며, 그녀를 그리워 하는 시를 짓기도 한다. [[외교관]]의 자리까지 올라서 앤과 서로의 상승한 지위를 확인하며 기뻐하는 등 여러므로 출세한 인물. 앤과의 불륜 혐의로 구속되지만, 상관인 크롬웰의 비호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다. 이후, 과거의 애인이었던 앤의 처형을 눈물을 흘리며 지켜보게 된다. 앤의 처형 이후 등장하지 않았으나, 정사에서는 나중에 결혼도 했으며, [[캐서린 하워드]]가 왕비인 시절에 반역 혐의를 받기도 했다. [[캐서린 하워드]]의 처형 이후 살아 남았으나, 얼마 살지 못하고 죽었다. * [[토머스 크랜머|토마스 크랜머]] 시즌 2에 등장. 크롬웰과 함께 [[영국]]의 [[종교개혁]]을 이끌었으며, 영국의 국교가 바뀌기 전 [[앤 불린]]과의 결혼에 찬성하고 왕비와의 이혼에 찬성한 신학자였기 때문에 [[헨리 8세]]가 켄터베리 대주교가 임명했던 인물. 아이러니하지만 헨리 8세가 막나가는걸 막아보고 달래려고 대주교 서품의 [[교황청]]의 승인까지 받았다. [[에드워드 6세]] 시절 잉글랜드 종교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했고 그러나 [[메리 1세]]가 즉위하여 영국 국교회를 독립 상태에서서 로마 교황청 휘하로 들어가자 회유 설득 협박끝에 일시적으로 포섭하나 크랜머가 다시 번복하자 화형시켰다. 회유에 찬성하는 문서에 서명했기 때문에 반성하는 의미에서 화형 당할때 오른손을 먼저 들어 태웠다고 한다. * 레지날드 폴 시즌 3에서 프란시스 브라이언이 그렇게 잡으려고 애를 썼던 [[추기경]]. 그 후로도 살아남아 [[메리 1세]] 시절 잠깐 그녀의 남편감으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플랜테저넷 왕가의 혈통인지라 유력한 남편감 후보가 되었고, [[교황청]]의 특별허가를 얻으면 [[환속]]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메리가 레지널드 폴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크랜머가 화형되자 마지막 가톨릭 캔터베리 대주교가 된다. [[메리 1세]]가 죽은 지 12시간 후에 죽어서 목이 달아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 프란시스 브라이언 [[앤 불린]]의 사촌 오빠. 애꾸눈의 강력한 포스를 지닌 인물로, 시즌3에서 등장. 헨리 곁에서 여러 일을 하긴 하는데 완전 난봉꾼에 이쪽도 정상은 아니다. 극중 스파이에 암호해독가로 활약하면서 [[메리 1세|메리 튜더]]에게 폭언을 퍼부으며 성공회로의 개종을 강요하는가 하면, 제인의 시녀인 우르슐라 미쉘든, 에드워드 시무어의 아내인 앤과 불륜을 저지른다거나, 레지날드 폴을 잡으러 동분서주하거나, [[캐서린 하워드]]를 발견해 데려오는 등 여러가지 활약상이 나온다. 원래 크롬웰과 사이가 나빴는지, 크롬웰에 의해 좌천되기도 했었으며, 그 때문인지 망나니에게 술을 먹여서 다음날 숙취 때문에 크롬웰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데 한 몫한다. 이후 드라마에서는 등장이 없으나 역사 기록에서는 스스로를 '검은 교황'이라 불렀으며, 크롬웰이 참수된 후엔 함대 부함장이 되어 궁을 떠난 후 나중에 되돌아와서 [[에드워드 6세]] 시절에 사망. * [[바오로 3세]] 시즌 1에서는 언급만 되다가 시즌 2에 등장. 로마 [[교황]]으로서 헨리와 대립한다, 시즌 2에 특별 게스트로 대배우 [[피터 오툴]]이 출연해 우리에겐 군대가 없으나 다른힘이 있다며 유럽 군주들 사이의 틈을 이용하여 교황권 강화에 힘을 쏟는다. 프랑수아 1세가 로마 방문시 이단들 때려잡을거지?! 하며 등떠 밀었지만 본국가서 쌩깐건 함정... 더군다나 무슬림인 터키와 손을 잡아버린다. 한편으로는 미켈란젤로에게 성화를 그리게 하는 장면에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아주 짤막하게 지나간다. 회의 와중에 손자인 알렉산드로 파르세네[* 4명의 사생아가 있어서 [[추기경]] 시절에 공격받았다. 떳떳한 것은 아니었으나 [[교황]]은 되었다. 그러나 후에 16살, 14살짜리 손자를 추기경으로 임명하고 사생아에게 파르마와 피아첸차 통치자로 꽂아주려고 전쟁을 벌여서 훗날 [[바오로 4세]]가 되는 카라파 추기경에게 대놓고 욕을 먹었다. 다만 직권남용 친족등용은 중세와 르네상스시기 일반적인 일이었다.]가 방문하자 무척 반가워하면서 다른 [[추기경]]들에게 손자가 좋은 추기경이 될 것이라 말한다. 실제로 그의 손자 둘은 모두 추기경이 되었다. 또한 반종교개혁의 일환으로서 [[예수회]]를 지원한다. * 폰 발트부르크 추기경 시즌 3에 등장. [[교황청]]의 뜻대로 영국 국교회를 해산하고 [[헨리 8세]]를 예속시켜, 자신들의 세력권 안에 두고 영국의 신앙 회복을 추구한다. 영국과 꾸준히 연락하는 레지널드 폴 신부를 추기경으로 임명하고 영국 내에서 활약하도록 한다. 실제 역사에서도 이 인물은 [[신성로마제국]]의 [[고문관]]이었고 신교도에 몹시 반대하는 인물이었다. 종교개혁에 반대할 만한 개인사를 가진 인물로 설정되었다.[* 자신의 누이가 루터파 농민 반란군에게 잔인하게 겁탈, 살해당했다고 한다.] 극중 시기로 따지면 실제 역사에서는 나이가 훨씬 어렸다고 하는데, 이 드라마에선 나이든 노인으로 설정하였다.(배우가 직접 자신의 이름을 sydov로 발음하도록 표기했다고 한다. 엑소시스트로 유명한 명배우) 결국 그가 원하던대로 심복이나 다름없었던 폴 신부는 레지널드 폴 추기경이 되었고, 메리 1세 시절 영국으로 귀환하여 켄터베리 대주교가 된다. 다만 메리와는 종교정책으로 갈등을 빚었으며 별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폴 추기경은 헨리 8세 시기 영국 교회에서 자라난 복음주의 세력과 타협하고 온건한 정책을 펴길 원했으나 거부당했고, 켄터베리 대주교 자리만 지킨 채 국내 기반도 없는 상황에서 메리나 국정에서의 영향력이 거의 없었다.[* 윈체스터의 주교 스티븐 가드너가 실제로 영국교회를 좌지우지 했는데, 메리에 온정적이며 변호적인 평가는 강경파 스티브 가드너에 메리가 휘둘렸다고 보는 측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