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튀링겐 (문단 편집) == 역사 == 지금의 튀링겐 지방은 고대부터 게르만족의 왕국 투링기(Thuringii)가 있던 곳이다. 투링기는 게르만족의 일파인 헤르문두리(Hermunduri)의 후손들이란 뜻으로, 헤르문두리의 어미인 'duri'에서 시간이 지나 변형된 'thuri'와 후손을 뜻하는 '-ing'가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로 추정된다. 6세기 프랑크 왕국에게 복속된 후 프랑크 왕국은 그 지방을 그대로 이어 튀링겐 변경백령을 만든다. 튀링겐 변경백은 동프랑크에 속하게 되면서 공작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공작의 대우를 받게 되었으나, 엄밀히 말해 온전한 공작령은 아니였기 때문에 독일의 [[부족 공국|5대 공국(부족 공국)]](작센, 바이에른, 슈바벤, 프랑켄, 로트링겐)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908년 튀링겐의 마지막 공작이 마자르족과의 전투에서 죽으면서 작센 공작령으로 흡수된다. 이후 튀링겐은 변경백들의 분할 통치를 받게 되었다. 이후 4백년간 수많은 후작과 다른 지역에서 옮겨운 귀족들에 의해 각축장을 벌였다. 11세기에 들어서면서 루도빙거(Ludowinger) 가문이 튀링겐 전역을 지배하였으나 1247년 하인리히 라스페(Heinrich Raspe)[* [[콘라트 4세]]의 대립 [[독일왕]]이기도 했다.]가 후사 없이 사망하며 공백이 생겼고, 하인리히 라스페의 조카인 브라반트 공작부인 튀링겐의 조피(Sophie von Thüringen)[* 하인리히 라스페의 형 루트비히 4세의 딸.]와 [[베틴 가문]] 출신의 마이센 변경백 하인리히 3세(Heinrich der Erlauchte)[* 하인리히 라스페의 누나 유타의 아들.]의 17년간의 튀링겐 계승 전쟁 끝에 튀링겐은 마이센 변경백 하인리히 3세가 상속하고, 튀링겐 동부의 일부를 헤센으로 분리하여 튀링겐의 조피의 아들 하인리히가 상속하며 [[헤센]] 방백국이 탄생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면서 튀링겐은 베틴 가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베틴 가문은 마이센과 튀링겐을 분할상속했지만 1440년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2세, 1482년 작센 선제후 에른스트에 의해 베틴 가문의 모든 영지가 통합되었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2세의 둘째 아들이자 에른스트의 동생 알브레히트가 분할 상속을 요구하자 이를 못이긴 에른스트는 1485년 [[라이프치히]] 조약을 체결하여 본인은 [[작센 선제후국|작센 선제후]] 자리와 작센-비텐베르크 공작령, 남부 튀링겐을 가져갔고, 알브레히트에게는 작센 공작위와 마이센 변경백령, 북부 튀링겐을 나누어주면서 베틴 가문은 다시 분열되었다. 16세기 [[종교 개혁]]이 일어나며 에른스트 계열은 [[개신교]]로 개종하고 신교도들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1547년 [[슈말칼덴 전쟁]]에서 신교도인 작센 선제후 [[요한 프리드리히 1세]]가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에 사로잡히자 폐위당해 베틴 가문 본가인 에른스트 계열의 [[선제후]]직은 방계인 알브레히트 계열로 이전되었고 1806년 [[작센 왕국]]이 된 후 지금의 [[작센]] 주가 된다. 에른스트가 상속받은 남부 튀링겐은 4대를 거친 1554년, 요한 프리드리히 1세의 세 아들이 분할 상속하여 '''에른스트 대공국들'''(Ernestinische Herzogtümer) 또는 '''작센 공작령들'''의 시초가 되었다. 이들 영토의 경계는 1572년에 에어푸르트 분할로 재조정되었고, 그 이후의 변화상은 한 공작령의 제후의 대가 끊기면 그 영토를 다른 공작령들이 나눠먹는 과정이 되풀이되면서 영토가 이합집산을 거듭하는고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1826년에 작센-고타-알텐부르크 공작령의 대가 끊기면서 영토 재조정을 한 것을 마지막으로 1개 대공국, 3개 공국으로 확정되었다. 작센 공작령들 말고도 튀링겐 지역에는 슈바르츠부르크 가문의 영토들, 로이스 가문의 영토들이 분립해 있었다. 슈바르츠부르크 가문의 영토들은 1599년에 2개로 나뉘어진 영토가 20세기까지 이어졌고, 로이스 후작령들은 1678년경에는 9개로 분립되다가, 1806년에 2개로 정리되었다. 이상의 '''튀링겐 제국(諸國)'''이라는 이들 소공국들은 1826년에 8개로 정리되었다. [[북독일 연방]]을 거쳐 1871년 [[독일 제국]]의 일부가 되었고, 1910년 당시 총면적 12,325 km2에 159만 명의 인구가 있었다. * 1개 대공국 :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국]] (1903년 이후 작센 대공국) * 3개 공국 :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작센-코부르크-고타]], [[작센마이닝겐 공국|작센-마이닝겐]], [[작센알텐부르크 공국|작센-알텐부르크]] * 4개 후국 : [[로이스게라 후국]], [[로이스그라이츠 후국]], [[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 후국]], [[슈바르츠부르크존더샤우젠 후국]]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761px-THUERINGEN.png]] 20세기 초 튀링겐의 분할도. ~~[[월경지]]투성이~~[* 거기다가 작센왕국이 나폴레옹 전쟁 패배 후에 프로이센왕국에게 영토를 할양하는 바람에 튀링겐 지역엔 프로이센왕국의 영토도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말기인 1918년에 발생한 킬 군항의 반란의 영향으로 일어난 혁명으로 일곱 제후[* 1909년 슈바르츠부르크-존더샤우젠의 대가 끊기면서, 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와 [[동군연합]] 상태가 되었다.]들이 모두 퇴위하면서 각 소국들은 자유주로 개편되었다가[* 이들 중 작센코부르크고타는 1919년에 코부르크 자유주와 고타 자유주로 분할되었고, 로이스게라 자유주와 로이스그라이츠 자유주는 같은 해에 로이스 인민주로 통합되었다.], 1920년에 이들 자유주를 모두 통합해(단, 코부르크 자유주는 주민투표 결과에 따라 [[바이에른]]으로 편입되었다) 현재의 명칭인 튀링겐 자유주로 바꾸어 [[제2차 세계 대전]]이 끌날때까지 유지한다. 1945년 [[미군]]이 점령했으나 종전 이후 [[소련군]] 관할 지역이 되었고, 오늘날의 주도인 [[에어푸르트]][* 2차 대전 이전에는 [[프로이센]]의 작센 주에 속함]를 비롯한 노르트하우젠, 뮐하우젠 근교 지방을 흡수하면서 튀링겐 주의 경계가 이때 대략 확정되었다. 1952년에 이르러 [[동독]] 중앙정부가 주정부들을 해체하자, [[에어푸르트]] 관구와 [[게라]] 관구와 [[줄(독일)|줄]] 관구로 나뉘어졌으나, 1990년에 이르러 동서독 양국의 평화통일을 실행하기 직전에 주정부가 부활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