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튀르키예인 (문단 편집) == 특성 == [[파일:attachment/Safranbolu_traditional_houses.jpg|width=600]] 튀르키예인의 전통 주택, 한국 관광객들도 꽤 다녀가는 [[사프란볼루]](Safranbolu) 마을의 사진으로 튀르키예 전통집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파일:attachment/mehmetbey.jpg]] 이전까지 [[페르시아어]]를 공용어로 하던 튀르크 사회에서 튀르키예어를 공용어로 지정한 카라만오을루 메흐메트 베이(Karamanoğlu Mehmet Bey)의 동상.[* [[룸 술탄국]]이 멸망하고 그 영토에 수립된 여러 튀르크계 공국 가운데 하나인 카라만 공국의 군주(재위기간은 1261~1277년). 카라만 공국은 1250년에 창건되어 튀르크계 공국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세력을 자랑했으나, 그보다 반세기 가량 후에 역시 룸 술탄국에서 독립해 나온 초창기 [[오스만 제국]]에게 점차 밀리기 시작하더니 1483년에 오스만에 의해 멸망하고 만다.] 동상에 쓰여진 문구는 "오늘 이후로 궁정에서, 데르갸흐(수피 수도사들의 숙소)에서, 집에서, 의회에서, 그리고 광장에서도 튀르키예어 이외의 다른 언어를 사용할 수 없다. 1277년 5월 13일"(Bugünden sonra Divanda, Dergâh da, Bargâh da, Mecliste ve Meydanda türkçeden başka dil kullanılmayacakdır.)라는 당시의 칙령을 적은것이다. [[파일:attachment/634px-Karagoz_figures.jpg]] 튀르키예의 전통 그림자 인형극인 '카라괴즈(Karagöz)'의 두 등장인물인 카라괴즈(오른쪽)와 하지바트(왼쪽)[* 튀르키예의 상징 인형극이라던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그리스인]]이라고 한다. 그리스인 노동자인 두 사람은 웃기는 말을 너무나도 잘해서 사람들을 웃겼는데 하루는 [[술탄]]의 명령으로 거대한 공사를 하던 도중 사람들이 지쳐 힘을 못쓰자 이 둘이 열심히 웃기는 이야기를 하여 사람들이 웃으며 즐겨했는데 술탄이 지나가다가 이걸 봤는데 그는 그만 오해하고 "이놈들이 하라는 일은 안하고 놀고 있는거냐?" 분노하여 두 사람을 죽이게 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도로 울적해하며 두 사람을 안타깝게 여겼고 신하들이 뒤늦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술탄도 경솔함을 후회하고 둘을 기리는 놀이를 하도록 했는데 그중 인기를 끌던게 바로 이 인형극이라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리스인들은 이걸 가지고 비아냥거리기도 하지만 튀르키예에선 그만큼 다양한 인종들을 품어왔고 그리스인도 추모하며 이렇게 문화로 남기는 것 아니냐며 콧방귀를 뀐다. 사실인즉 이 인형극은 16세기 초. 이르면 15세기 초에 상연되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시기라면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고 무슬림이냐 기독교도냐만 문제삼던 시절이다.]의 모습. 튀르키예인의 대다수는 인종적으로 [[코카소이드]]이다. 원래 원시 튀르크 자체가 유적에서 장두형 두개골이 발견되는 투라니드 인종이다. 유럽과 중동의 중앙에 있는 [[아나톨리아]]의 특성상 고대부터 여러 민족들의 유입이 많았고 튀르크인의 유입, 3대륙에 걸친 [[오스만 제국]] 시기를 거치면서 현 튀르키예 주변 유럽과 중동의 여러 민족들이 튀르키예로 유입되었다. 현재도 러시아, 우크라이나 여성과 튀르키예 남성간의 국제결혼이 상당히 많다.[* 생각의외로 문화적 코드가 은근히 맞다. 연애문화는 좀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가정문화는 정말로 비슷하다 [[정교회]]권 동유럽국가와 튀르키예의 경우 사회적으로 남성이라면 남들에게 틈을 보여서는 안되고 전적으로 가정을 책임져야하며 때로는 맞서서 싸울 줄 알아야 하는 마초문화가 있으며 여성의 경우 자녀들과 남편을 위해 전적으로 가정일에 손을 놓지 말아야하는 희생정신과 생활력이 요구된다. 그래서 러시아, 우크라이나, 튀르키예 모두 남성들이 바깥일에만 오로지 전념하고 집안일은 물론 심지어 잠자리 마저 여성들의 고유의 권한이라고 생각하는 등 절대로 딴지걸거나 잔소리 하는 모습은 보기가 힘들다. 즉 기독교와 이슬람인 고유의 문화적인 부분만 벗겨내면 상당히 비슷한 부분.] 트라키아, 에게해 연안 등 서부 지역과 흑해 연안은 역사적, 지리적으로 그리스, 발칸 반도, 조지아등과 가깝기 때문에 유럽 혈통 튀르키예인들도 살고 있으며 가장 최근 유럽에서 대규모로 유입된 인구 집단은 1990년대 유고 내전을 피해 튀르키예로 이주한 [[보슈냐크인|보슈냐크계]]들이다. 소수이긴 하지만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튀르키예에 정착한 이탈리아인 등 남유럽 출신 이주민의 후손들이 현대에도 이스탄불과 이즈미르 등 서부 지역에 터를 잡고 살고 있다. 그 외에도 서부 도시들은 건축 양식부터 유럽 스타일에 가깝다. 한편 [[가지안테프]] 등 [[튀르키예]] 남동부 지역은 [[시리아]] 등 아랍 국가들과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아랍의 영량을 많이 받아 튀르키예의 다른 도시들과는 다른 아랍풍 분위기가 난다. 해당 지역 주민들 중에서는 아랍인의 후손도 보이는 편. 남동부 지역 등지에서는 아랍풍 복장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특히 아랍인들이 즐겨 쓰는 두건 모자인 [[쿠피야]]를 쓴 주민들도 볼 수 있다. 동부 지역에는 [[타타르]](Tatar)라 불리는 몽골-튀르크계 소수민족들까지 거주하기 때문에 동아시아인처럼 생긴 튀르키예인도 극소수 존재한다. 튀르키예에서도 이 점 때문에 오래 전부터 여러 우스개가 많으며 소설이나 드라마에서도 이런 걸 많이 언급한다. 한 서구적 복장 차림의 백인 여성과 히잡을 쓴 아랍계 여성이 [[이스탄불]]에서 우연히 만나 영어로 서로 대화를 하며 친하게 지냈다. 그리고 해가 저물 무렵에서야 서로 국적을 묻자 서로 똑같이 튀르키예인이라고 말하면서 둘 다 멍을 때렸다는 일이라든지 길거리 농구장에서 유달리 농구를 잘해보이는 아랍계 남성을 보며 백인계 남성이 환호하면서 "아랍에서 온 건가요? 잘하는데요!" 라고 묻자 그 아랍계 남성은 멈추더니 "그런 댁은 북미요? 유럽 다른 곳에서 오셨소? (튀르키예에선 스스로를 유럽으로 여긴다.[* 오스만 제국 쇠퇴기 시절 별명이 [[유럽의 환자]]였다.])" 질문하였다. 그리고 둘 다 서로 튀르키예인이라고 답변하고 잠깐 멍때렸다는 일도 오래 전부터 실화라고 전해진다.[* [[https://www.segye.com/newsView/20141113005445?|#]]] 원래 이슬람 국가 특징 자체가 인종의 구분보다는 종교적 동질감이 중요하였고 오스만 제국을 튀르크인들만이 건국한 국가라고 볼 수 없는 것이 튀르크가 이슬람화하면서 이슬람 종교 제국 내에서 인종적 구분이 확실한 것은 아니였다. 아타튀르크의 경우 서양 열강의 위기로 인해 주위에서 민족주의적인 독립 국가들이 계속 나타나는 상황이였고 튀르크인의 민족적 독립을 추구하면서 건국을 진행하였기 때문에 아랍인들의 국가들이 차례 차례 영국의 지원으로 떨어져 나가는 상황에서 아타튀르크는 튀르키예어를 쓰면 튀르크예인으로 단정지었다. >'''"튀르키예인이란 [[튀르키예어]]를 쓰고 [[튀르키예]]에서 살아가면 누구나 튀르키예인이다. 인종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라는 정의를 내렸다. 튀르키예에서 교과서로 쓰는 그의 어록집에서 찾아볼 수 있다.그래서 튀르키예는 오랫동안 소수민족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분리 독립 문제로 튀르키예 정부와 갈등을 겪는 [[쿠르드족]]도 오랫동안 정식 명칭은 '''산악 튀르키예인'''(Dağ Türkler)이'''었'''다. 유목민이 기원인 만큼 접대의 관습에도 충실해서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기념품 가게에 방문할 경우 가게 주인은 으레 튀르키예 특유의 달콤한 [[차이(음료)|차이]]라는 튀르키예식 홍차를 권하곤 한다. 심지어 주인이 식사 중일 때는 음식까지 함께 권하는 일도 종종 있다. 한국인이 여행 도중에 만난 튀르키예인과 친구가 되어서, 한국에 돌아와서도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는 경우도 흔하다. 또한 매우 외향적이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쉽게 말을 건낸다. 원래 오늘날 튀르키예인들의 선조라는 [[튀르크]]는 [[아나톨리아]] 출신이 아닌 외부에서 유입된 민족이었고, 아나톨리아는 어마어마하게 긴 역사속에서 오만 민족들이 각축을 벌이던 땅이었기 때문에 이 지역의 다문화는 필연적인 일이었다. 튀르크족이 밀려오던 시절에는 이곳에 이주 [[그리스인]]과 그리스화한 아나톨리아인, [[페르시아인]], [[쿠르드족]], [[아랍인]] 등의 민족들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이들 모두가 [[오스만 제국]]의 통치기를 거쳐서 튀르키예화되거나 혹은 튀르키예인들이 이들의 문화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튀르키예인의 문화는 유럽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시아적이다. 괜히 유럽과 아시아의 다리라고 부르는게 아니다. 2010년에 [[이스탄불]]시는 [[유럽연합]]으로부터 유럽 문화의 중심지(Avrupa kültürün başkenti)로 지정되었는데, 그때의 이유는 "동서 문화의 교차점"으로서의 이국적이고도 다채로운 문화를 인정받았기 때문이었다. 가령 [[이슬람교]]는 튀르키예인의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는 가장 중요한 사회, 문화적 장치라 할 수 있는데 98%의 튀르키예인이 이슬람교를 믿지만, 나머지 2% 정도는 [[정교회]]나 [[가톨릭]]을 믿는 튀르키예인이며, 이슬람교 내에서도 비록 [[수니파]]가 주류기는 하지만, [[시아파]]도 만만치 않은 비율을 차지하며, 이슬람 전체에서 봤을땐 시아파보다도 소수인 [[알레비파]]를 믿는 무슬림도 1,000여만 명[* 튀르키예 통계청에서는 소수민족, 소수종파에 대한 통계를 내지 않는다. 정부 공식 정책은 "튀르키예는 한 민족"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알레비나 쿠르드에 대한 통계는 매우 유연적이며, 주로 언론사나 CIA, 쿠르드정당등의 통계에 의존하는 추세이다. 위의 1000만명은 최소 통계로 최대 2,600만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으며, 알레비파는 박해를 피하기 위해서라면 거짓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으므로 2,600만이라는 수를 터무니없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참고로 1,000만 명이라면 튀르키예 인구의 1/7(14%)에 해당.]에 달할 만큼 많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