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튀르크어족 (문단 편집) == 역사 == || [youtube(LL7BSW4CT-E)] || [[몽골어족]]과 튀르크어족이 기원전 1000년 무렵에 공통 조상에서 갈라졌다는 설이 있으나[* Jahunen Juha (2013) Personal pronouns in Core Altaic] 널리 받아들여질 정도로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현재 유라시아 내륙의 여러 교착어들을 같은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것들로 보는, 이른바 [[알타이 제어|알타이어족]] 학설은 사실상 사장되었으나, 그나마 아직 남아 있는 떡밥이 튀르크어족과 몽골어족의 관계이다[* 애초에 [[알타이 제어|알타이어족]] 가설부터가 [[몽골어족]]과 튀르크어족이 동계라는 전제에서 시작했다.]. 아직까지 두 어족의 관계를 규명하기 위한 여러 시도가 있으나 결정적인 결론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일단 [[형질인류학]] 연구 결과에 의하면, [[튀르크|원시 튀르크인]]은 오늘날의 [[만주]] 서부에서 기원하여 [[몽골]] 지역으로 이주한 [[동아시아인]] 계통의 민족이, [[중앙아시아]]에서 기원한 [[인도아리아인]] 계통의 [[유목|유목민]], [[시베리아]]에서 남하한 [[시베리아 원주민]]들과 매우 복합적으로 혼혈을 이루어서 형성되었음이 밝혀졌기 때문에, 몽골어족과 튀르크어족이 최소한 [[언어동조대]] 이상의 관계는 있으리라는 점은 주류 학계에서도 동의를 하고 있다[* [[몽골어족]]의 원향도 [[만주]] 서부로 비정되는 만큼, 튀르크어족과 모종의 연관성이 있다고 추정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튀르크어족 계통 언어로 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8세기경 제작된 [[오르혼 강]][* 이 유적은 현대 [[몽골]]에 있다.] 비문이다. 이 비석은 [[룬 문자]]와 [[돌궐 문자|비슷한 모양의 글자]]로 새겨져 있었는데, 당시 이 지역을 지배하던 [[돌궐]] 제국에 의해 제작된 것이다. 8세기 이후 튀르크어는 주로 [[위구르]]인에 의해 기록되었다. 이들은 [[아랍 문자]]를 변형시킨 위구르 문자로 글을 썼으며, 이 시기의 튀르크어는 아직 분열되기 이전으로 통일된 형태가 있었다. 튀르크어의 분열은 11~12세기경 각 부족들이 이주하면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이들이 이주한 지역에서 사용되던 언어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되었다. 가령 보통 '서부 튀르크어'로 분류되는 현대 튀르키예어는 [[페르시아어]]와 [[아랍어]]의 영향을 받았으며 문법 자체가 페르시아어에 동화되는 양상을 띠었다. 반면 '동부 튀르크어'로 분류되는 우즈베크어나 카자흐어는 페르시아어 영향 외에도 몽골어족의 영향도 짙게 나타난다. 러시아어의 영향을 받아 현대어에 러시아어의 차용어가 존재한다. '시베리아 튀르크어'에 속하는 [[사하어]]나 [[투바어]] 등은 오히려 [[몽골어]]와 비슷하며 [[러시아어]]의 영향을 상당히 받은데다 외따로 변한 부분도 많아서 모르는 사람도 나머지 튀르키예어와 구분이 가능할 정도다. 튀르크어의 분화시기는 10세기쯤으로 굉장히 늦은 편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튀르크제어들은 서로 유사한 특징들을 여전히 공유하고 있다. 7-8세기에 기록된 오르혼 강 비문 중 퀼 티긴(Kül Tigin)의 비문[* 참고로 [[https://gokturkanitlari.appspot.com/kultigin.html|여기서]] 돌궐 문자로 적힌 비문의 전체를 볼 수 있다.] 일부를 돌궐어와 현대 튀르키예어로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Oksuz Kök Türk ança olurur ermiş. Bilge kagan ermiş, alp kagan ermiş. Buyrukı yime bilge ermiş erinç, alp ermiş erinç. Begleri yime bodunı yime tüz ermiş. Anı üçün ilig ança tutmış erinç. İlig tutıp törüg itmiş. Özi ança > >''Teşkilâtsız Gök Türk öylece oturuyormuş. Bilgili kağan imiş, cesur kağan imiş. Buyruku yine bügili imiş tabiî, cesur imiş tabiî. Beyleri de milleti de doğru imiş. Onun için ili öylece tutmuş tabiî. İli tutup töreyi düzenlemiş. Kendisi öylece'' > >나라도 없이 돌궐인들은 그렇게 있었다. (그는) 지혜로운 카간이었으며, 용맹한 카간이다. 그의 명령 또한 지혜롭고 용맹했다. 베이들도 부족도 올발랐다. 그를 위해 땅을 그렇게 가졌다. 땅을 나누어 가진 후 의식을 진행했다. 그는 그렇게 >kergek bolmış. Yugçı sıgıtçı öŋre kün togsıkda [[고구려|Böküli]] Čölüg el [[당나라|Tabgaç]] [[토번 제국|Tüpüt]] [[유연 제국|Apar]] [[동로마 제국|Purum]] [[키르기스|Kırkız]] [[골리간|Üçkurıkan]] Otuztatar [[거란|Kıtayn]] [[해족|Tatabı]] bunça budon kelipen sıgtamış yuglamış. Antag külüg kagan ermiş. Anda kisre inisi kagan > >''vefat etmiş. Yasçı, ağlayıcı, doğuda gün doğusundan Böküli Çöllü halk, Çin, Tibet, Avar, Bizans, Kırgız, Üç Kurıkan, Otuz Tatar, Kıtay, Tatabı, bunca millet gelip ağlamış, yas tutmuş. Öyle ünlü kağan imiş. Ondan sonra küçük kardeşi kağan'' > >사망했다. 눈물 흘리는 자, 우는 자, 동쪽에서부터 [[고구려|뵈퀼리]], 최뤼그 이르, [[당나라|타브가츠]], [[토번 제국|튀퓌트]], [[유연 제국|아파르]], [[동로마 제국|푸룸]], [[키르기스|키르키즈]], [[골리간|우츠 쿠리칸]], 오투즈 타타르, [[거란|키타인]], [[해족|타타비]], 이와 같은 민족들이 와서 울고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유명한 카간이었다. 그의 뒤를 이어 동생인 카간 근현대에 들어 튀르크어족의 문자 체계에는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 1920년대에 [[소련]]과 [[튀르키예]] 공화국에서 튀르크어에 [[라틴 문자]]를 보급하였다. 소련에서는 1926년에, 튀르키예에서는 1928년에 본격적으로 튀르크어의 라틴 문자 도입이 실시되었다. 소련에서 영토 내 튀르크계 민족들이 쓰는 튀르크어족 언어들에 라틴 문자를 도입하였는데, 이것이 튀르키예에도 자극을 주어 [[튀르키예어]]의 라틴 문자 보급을 도왔고,[*참고 Zürcher, Erik Jan. Turkey: a modern history, p. 188. I.B.Tauris, 2004. ISBN 978-1-85043-399-6] 튀르키예 역시 소련의 라틴 문자 보급에 영향을 주었다([[https://books.google.co.kr/books?id=uolxBgAAQBAJ&pg=PA111&redir_esc=y#v=onepage&q&f=false|참고 자료]]). 튀르키예어의 라틴 문자 표기는 현재까지 그대로 계속 사용되고 있다. 반면 소련에서는 1940년대 [[이오시프 스탈린]] 집권 시기에 튀르크어 표기가 [[키릴 문자]]로 대체되었고,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아제르바이잔어]]([[남아제르바이잔]] 제외), [[투르크멘어]], [[우즈베크어]]에는 라틴 문자 표기를 재도입하였지만, [[카자흐어]], [[키르기스어]], 기타 [[러시아]] 영토 내 [[튀르크]]계 소수민족들의 언어에는 여전히 키릴 문자가 쓰인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튀르키예어, version=493, paragraph=2.1)]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