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튀김 (문단 편집) == 역사 == 요리의 역사를 잘 살펴보면 튀김 요리는 대부분 음식에 대한 금기가 있는 종교에서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일본]] [[덴푸라]]의 원조인 [[포르투갈]]의 콩깍지 튀김 '템포라(페이시뉴스 다 오르타)'도 본래는 [[가톨릭]]의 [[수도자]]들이 [[고기]]를 먹을 수 없는 [[금요일]]에 대신 먹는 요리 문화에서 기인했다. 대부분 그런 종교들은 육식을 금하는 경우가 많은데, 고기를 먹지 못해 부족해지기 쉬운 [[지방(화학)|지방]]을 튀김으로 보충하려 하다 보니 이러한 발전이 생기는 것. 같은 맥락에서 [[사찰 요리]]에는 고기가 들어가지 않으니 몸에 좋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곳의 숨은 복병이 바로 이 '''튀김'''이다. 영양소가 부족했던 전근대의 관습으로 [[추석]]이나 [[설날]]에 기름진 [[전(한국 요리)|전]]을 잔뜩 부치는 풍습이 남아 있는 이유와 비슷하다. 또한 그 시대에 [[기름]]을 쉽게 구할 수 있냐 없냐에 따라 대접이 극과 극을 달린다. 기름을 쉽게 구할 수 없는 시대에는 귀한 음식이지만, 기름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경우엔 대량조리에 유리한 튀김 요리법의 특성상 아무거나 막 튀길 수 있다 보니 그야말로 싸구려 음식 취급을 받는 것. 근대 이전까지 식용 기름은 동식물성 모두를 막론하고 고가의 식재료 중 하나였다. 동물성 기름은 근대 이후 포경, 즉 [[고래잡이]]를 통한 [[고래기름]] 외엔 오직 수렵한 동물에서 얻어낸 동물성 지방과 동물 [[젖]]을 가공한 [[버터]] 정도 밖에 없었고, 식물성 기름 역시 주재료가 되는 [[깨]]나 [[콩]]을 주식용 작물인 [[쌀]], [[밀]], [[보리]] 등을 경작할 땅에 재배해서 얻어야 했기 때문에 상업이 발달되는 [[중세]] 후기에나 튀김 요리가 가능했다. [[흥부전]]에서 [[흥부]]의 아이들이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얘기할 때, [[밥]]에 [[참기름]] 한 숟가락 친 것이 언급되는 이유가 이것이다. 반대로 [[중국]]의 경우에는 [[송나라]] 시대에 [[석탄]]을 연료용으로 많이 쓰기 시작하면서 그 이전까지 불을 지피는데 쓰였던 동물성 기름을 식용으로 쓰게 되어 튀김 요리가 저렴해져 대중화되었고[* 추가로 중국은 한국, 일본에 비해 깨끗한 물을 전 지역에서 상시 대량으로 구하기가 좀 더 어렵다. 특히 중국은 지리상 하류로 갈수록 민물의 오염도가 높아진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조리법 중에서도 [[찜]], [[볶음]]과 함께 튀김 요리가 발전할만했다. 세 조리법 모두 삶기 같은 조리법에 비해 물을 덜 쓰고, 식재료를 빠르게 대량으로 익힐 수 있다.] [[일본]]도 [[에도 막부]] 시기부터 [[유채꽃]]을 대량으로 재배하게 되면서 이를 통해 얻게 되는 유채 기름의 가격이 저렴해졌고, 이를 이용한 튀김 요리가 발달하며 가격도 저렴해져 대표적 서민 요리가 되었다. 다만, 일본 집들은 예나 지금이나 목조 가옥이 많아서 튀김하다 화재가 발생하곤 했기 때문에, 집 밖에서만 튀길 수 있게끔 법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 때문에 발달한 것이 바로 포장마차. [[미국 흑인]] 요리를 가리키는 [[소울푸드]] 중 대표적으로 [[프라이드 치킨]]이 꼽히는 이유도 [[고래기름]], [[면실유]] 같은 것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면서 백인들이 안 먹는 닭 부위를 튀겨 먹은 데에서 유래한 것이고, [[영국 요리]]에서 [[피시 앤 칩스]]라는 길거리 서민 음식이 생겨난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기름이 저렴하게 남아돌며 생겨난 것이다. 한국은 근대 이전까지 튀김 요리가 귀했다. [[감자튀김]], [[덴푸라]], [[탕수육]], [[프라이드치킨]], [[야채튀김]] 같은 흔히 즐겨먹는 튀김 요리들은 대부분 서양, 중국, 일본을 통해 들여놓은것이고, 요리책에서도 튀김이라 하면 부각과 튀각, 과자 정도가 나오는 수준이며 식재료를 튀기는 요리 기구도 나온게 없다. 그나마 튀김 요리라고 할 수 있는 건 튀김이라기보다는 기름에 데쳐낸 수준인 [[부각]]과 [[튀각]] 정도이고 [[약과]]와 [[유과]]처럼 기름에 튀겨 만드는 과자가 있었지만 재료값이 만만치 않고 만드는 것도 번거롭기 그지없어 양반이나 부자들이나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산가요록]]에 [[세종(조선)|세종]]이 즐겼다고 알려진 [[포계]]라는 치킨 비슷한 요리가 하나 기록되어 있긴 한데, 닭지짐에 가까워 본격적인 튀김이라고 하긴 민망한 수준. 양 옆에 튀김 요리가 일찍부터 발달한 중국과 일본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선의 기름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알 수 있었던 부분이다. 이는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개고기]] 같은 육류가 비싸서 소기름, 돼지기름, 양기름, 닭기름같은 동물성 기름을 대량으로 수급하기 힘들었고, 땅이 넓어 남쪽으로도 퍼져 있는 중국이나 전반적으로 남쪽에 있는 일본과 달리 [[한반도]]의 위치상 유채꽃을 재배하기 적절한 곳이 없었고, 참기름이나 들기름, 같은 다른 기름으로 튀기기에는 당대의 공업력이 좋지 않았던지라 식물성 튀김도 수급하기가 쉽지 않았던 영향이었다. 기껏해야 [[제주도]] 정도인데 [[조선시대]] 당시 [[조선시대 제주도의 진상품 고난|다른 거 진상하기에도 허리가 휠 정도였다]]. 가끔 [[고려시대]]에는 튀김이 발달했는데 조선시대에 비주류로 밀렸다는 주장이 있는데 근거 없는 설이다. 고려시대 식문화에 대한 기록이 그렇게 단정할 정도로 풍족하지도 못하다. 또한 기름에 튀겨 조청에 담그는 [[유밀과]]까지 튀김 취급해서 고려시대에 튀김 문화가 발달했다고 호도한 것이다. 정작 조선시대도 제수, 잔치용으로 유밀과가 성행해서 기근 등이 발생했을 때 유밀과 금지령이 내려지는 등의 기록이 있을 정도. 어쨌든 기름을 대량으로 수급하기 쉽지 않았던 당대 환경상 튀김을 할 여유가 없었고, 그나마 기름을 덜 쓰는 [[전(한국 요리)|전]]이 발달되었다고 할수있다. 충격적이게도 인간이 튀김을 선호하는 이유가 선사 시절부터 [[곤충]]을 먹어왔던 [[충식|습성]]이 유전자에 남아 그때의 식감을 즐겼던 것처럼 튀김의 바삭바삭함에 끌려서 그런 것일 수 있다는 [[https://www.yna.co.kr/view/AKR20130121183900005|가설]]이 제시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