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툴루즈 (문단 편집) === 프랑스 왕실령 ~ 프랑스 혁명 === 14세기에 들어 툴루즈는 프랑스 왕실의 지원아래 프랑스 제 4의 도시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1337년에 [[백년 전쟁]]이 시작되고, 1348년과 1361년, 게다가 15세기에도 [[흑사병]]이 창궐하면서 도시는 약탈과 강도질을 비롯한 위험에 시달렸다. 15세기 말부터 16세기까지의 르네상스 시기동안에 툴루즈는 [[파스텔]] 제조산업이 발달하면서 호황을 누렸다. 장 베르누이 저택이나 아세자트 저택같은 고급 건축물이 많이 지어진것도 이 시기였다. 그러나 16세기 말인 1560년에는 [[위그노]]들과 [[천주교]]도들 간의 큰 분쟁이 일어났고, 1562년에는 여왕 칙령으로 [[위그노]]들이 도시 밖으로 추방당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학살당했고, 그들의 집 또한 약탈당했다. 17세기에는 [[가톨릭]]이 대단히 번성하여, 현존하는 교회중 대다수도 이때에 건설된 것이다. 특히 이 시기에는 퐁 뇌프(Pont neuf)와 꺄날 뒤 미디(Canal du Midi)등 현재에도 툴루즈의 명물로 남아있는 사적들이 지어지기도 했고, 또한 [[오를레앙]]의 가스통과 함께 내란음모를 꾸미던 몽모렁시의 앙리 2세(Henri II de Montmorency)가 툴루즈의 꺄피톨 광장에서 처형된것도 이 시기인 1632년이기도 하다. 1762년에는 프로테스탄트가 광장에서 수레바퀴형으로 잔혹하고 정당치 못한 방법으로 처형된 칼라 사건(Affaire Calas)이 일어났다. [[볼테르]]가 이 사건을 두고 "Pièces originales concernant la mort des Srs Calas"라는 문서를 작성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프랑스 혁명]]기간동안 툴루즈는 몇 번의 작은 약탈사건이나 성벽 공격을 제외하고는 그리 심각한 손실을 입지 않았다. 이 시기에 시의회가 다시 힘을 얻기 시작하기도 했다. 1799년에는 2016년의 레지옹 변경 전까지 쓰이게 되는 "오뜨-갸론"레지옹이 처음으로 구성되어졌고, 툴루즈는 이 레지옹의 수도(chef-lieu)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