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토스카나 (문단 편집) === 로마 이전 === [[에트루리아]] 문명 이전의 청동기 및 철기 시대 토스카나의 역사는 초기 [[고대 그리스]]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대략 기원전 1350~1150년 사이에는 오늘날 아펜니노 문명[* 이탈리아 [[아펜니노 산맥]]으로부터 유래한 이름이다.]으로 명명된 공동체가 이 지역에 주거하면서 [[미노아 문명]]이나 [[미케네 문명]] 등 [[에게해]] 지역 문명과 교역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1100~700년에는 빌라노바 문명이 이 지역에 나타났고, 이들이 토스카나를 포함한 훗날의 [[에트루리아]]의 지배권역을 장악한다. 초기에는 부족국가였으나 후기로 접어들면서 도시국가들이 성립되기 시작한다. 그 후 드디어 이 지역의 최초의 주요 문명으로서 에트루리아 문명이 부상하게 된다.[* 영어로 아펜니노 문명이나 빌라노바 문명은 "문명"인 Civilization이 아니라 그보다는 하위 개념인 culture로 쓰인다. 따라서 영어권에서는 에트루리아 문명을 이 지역 최초의 "문명''civilization''"으로 본다.] 에트루리아 문명을 이 지역 최초의 문명으로 부르는 이유는 교통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컸고, 농업과 광업이 자리 잡았으며, 예술작품까지 남기는 등 총체적인 문명을 건설하였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선사시대의 에트루리아 문명은 매우 강력하게 성장했다. 기원전 8세기부터는 오늘날 [[피렌체]]를 지나는 아르노 강과 [[로마]]를 지나는 티베레 강 사이의 영토를 모두 지배하였다. 기원전 7-6세기에 국력은 정점을 찍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남부 이탈리아의 그리스계 국가들과 카트타고, 갈리아족 등에 의해 점차 영토를 뺏기며 쇠퇴하다가 기원전 1세기 파죽지세로 성장하는 도시국가 로마에 의해 결국 패배 당해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로마는 ~~다른 패자들에게도 그랬듯이~~ 에트루리아의 지배층을 자신들의 귀족으로 흡수하여 동화시키게 된다. 이로써 에트루리아 문명은 로마 문명에 흡수되어 갑자기 사라지게 되었다. 에트루리아 문명은 건축양식과 채광 및 제련기술로 특히 유명했다. 에트루리아의 채광 및 제련 기술은 에트루리아를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고대 국가로 군림하게 한 핵심기술이었으며, 에트루리아의 건축 양식은 그리스 양식을 자신들의 환경에 맞추어 적용함으로써 독자적으로 발전시켜 나간 양식이었는데[* 외관만 유사하고 나머지는 확연히 달랐다고 한다. 특히 로마양식의 상징이자, 오늘까지도 많이 쓰이는 [[아치]]와 [[볼트]] 공법이 에트루리아인들에 의해 처음 쓰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에트루리아의 [[아치]], [[볼트]](Vault) 공법 등은 [[고대 로마]]의 건축 양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