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테오티우아칸 (문단 편집) == 역사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pyramid-of-the-sun-teotihuacan-mexico-wallpaper-preview.jpg|width=100%]]}}} || || '''{{{#fff 테오티우아칸의 전경}}}''' || 당대의 문자기록이 단편적인 단어 이외엔 남아있지 않은 테오티우아칸의 특성상 발굴된 유물 만으로 역사를 추측해야 되기때문에 여러가지 이설이 많다. 고고학 및 과학적 분석으로 밝혀진 사실을 뼈대로, 탄생과 번영, 그리고 쇠락 등의 커다란 기조는 거의 정립됐다고 할 수 있으나 구체적으로 그 시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학계에서 이견이 분분하다. 그래서 확실한 신뢰성은 보장할 수 없다. 지속적인 연구와 발굴 성과에 따라 미래에 학설이 뒤바뀔 수도 있다. 테오티우아칸의 역사는 크게 4개의 단계로 구분한다. 기원전 600년부터 이미 사람이 살았으나 기원전 200년까지는 도시가 아니라 여러 마을의 집합체에 불과했기에 도시 '테오티우아칸'의 진정한 역사는 기원전 200년부터 시작된다. Phase I은 기원전 200년부터 1년 사이의 기간을 의미, 테오티우아칸의 수원지 중심으로 농부들이 모여 산재한 마을들을 하나로 합치고 도시의 기틀을 잡는 시기를 의미한다. Phase II는 1년부터 350년 사이의 기간으로, 이 시기의 테오티우아칸은 그야말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고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거대한 대도시였다. 테오티우아칸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태양의 피라미드, 달의 피라미드, 죽은 자의 거리도 전부 다 이 시기에 조성되었다. 주목할만한 점은 이 시기에 정치 권력의 이동이 발생했다는 것. 원래 테오티우아칸의 초기 중심지는 '깃털달린 뱀의 신전'이었는데, 250년과 300년 경 사이 어느 시점에 정치 권력이 죽은 자의 거리로 이동했다. 1인 군주를 위해 사용되던 깃털달린 뱀의 신전이 몰락하고 귀족정 중심의 죽은 자의 거리로 권력이 이동했다는 것으로 즉 테오티우아칸의 정치 체제가 왕정에서 귀족정으로 변모했다는 걸 의미한다. 기존 깃털달린 뱀의 신전은 크게 더럽혀졌고, 테오티우아칸의 석조 건축물들은 1명의 군주를 위해서보다는 공공이나 주민들을 위해서 지어지는 쪽으로 변화한다. Phase III는 Phase II부터 시작된 도시화와 권력 증대의 정점을 찍은 시기다. 서기 350년부터 650년까지 약 300여년 동안이나 지속됐고 그 영향력도 절정에 이르렀다. 이 시기의 테오티우아칸 인구는 무려 20만 명. 고대 세계에서도 가장 거대한 도시였으며 2천 여개에 달하는 석조 건물들이 세워져 있었다. 심지어 후대의 [[아즈텍 제국]]의 수도 [[테노치티틀란]]마저도 이정도 수준의 대도시는 아니었다. 테오티우아칸은 멕시코 전체 인구의 절반을 차지했으며 인구 밀도가 낮은 멕시코 고원 지대에서 기형적일 정도로 거대한 도시였다. 건물들도 대대적으로 개축되었고, 더럽혀졌던 깃털달린 뱀의 신전 역시 화려한 조각으로 다시 뒤덮였다. 이렇게 번성하던 테오티우아칸도 Phase IV에 들어서 쇠퇴한다. 이 시기에 죽은 자의 거리, 태양의 피라미드, 귀족들의 저택에 불에 탄 흔적들이 만들어졌다. 즉 도시가 외부에게 약탈당하거나 내부 반란으로 신음하고 있었다는 것.[* 다만 과거에는 전자인 외부의 약탈로 봤으나 현재는 내부 반란이 더 유력하게 여겨지고 있는데 자세한 건 쇠퇴와 멸망 문단 참고.] 인구는 감소했고 끊임없이 인근 세력들에게 침략당하며 비참한 속국으로 전락했다. 물론 사람들은 여전히 거주하고 있었지만 그 수는 몇 백여명에 불과할 정도로 굉장히 적었고 사람들은 옛 유적에 기생하다시피 살았다. 이후 콩키스타도르들이 쳐들어오며 테오티우아칸에서 연명하던 사람들도 완전히 사라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