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탱켓 (문단 편집) == 역사 == [[제1차 세계 대전]]의 악명 높은 [[참호전]]을 극복하기 위해 투입된 최초의 전차는 분명 전선 돌파라는 역할을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으나 그 뒤를 따르는 [[보병]]들은 여전히 상대방의 자동화기에 노출되어 있었다. 또한 당시의 전차는 [[육상전함]]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육중하고 느릴뿐더러 비싸고 대량생산이 어려워서 보병들을 전부 엄호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따라서 연합군은 전차의 뒤, 그리고 보병의 선두에 '움직이는 방탄 기관총 진지'를 내세워 보병들을 엄호할 목적으로 탱켓을 구상하였다. 하지만 이 구상안은 실현되지 못했고, 대신 작고 빠른 2인승 정찰용 장갑차량을 개발하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이 최초 구상안의 아이디어는 [[병력수송장갑차|APC]]로 이어진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pansarmuseet.se/CL6-4.jpg|width=100%]]}}} || || '''카든 로이드 탱켓''' || 탱켓의 개발과 시작은 [[영국]]이 최초이다. 영국 육군의 공병이자, 전차 전략가인 지파드 르퀴슨 마르텔(Giffard LeQuesne Martel) [[소령]]은 개인 프로젝트로 시작한, '''1인용 전차'''를 자기 집 차고에서 자동차 부품과 각종 기계부품들을 이용해 만들었다. 그리고 이 1인용 전차를 1920년대 중반에 영국 전쟁성에 보여줬다. 이 작품을 본 다른 군수 회사들은 자신들이 생각한 아이디어를 집어넣고 다양한 1인용 전차를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그중에서 이 1인용 전차 아이디어를 가장 눈여겨본 곳은 존 카든 경(Sir John Carden)과 비비안 로이드(Vivian Loyd)가 합작해 세운 카든-로이드 트랙터 [[유한회사|Ltd]]였다. 이 트랙터 회사는 훗날 빅커스-암스트롱(Vickers-Armstrong) 군수회사에 팔리게 된다. 그리고, 카든과 로이드는 1인용 전차보다는 2인용 전차가 더 효율성이 좋다는 것을 알고, 빅커스-암스트롱 회사와 카든 로이드 회사는 이 탱켓을 2인용 전차로 개발을 완전히 잡아 무기 시장에 내놓게 된다. 이름은 [[브렌건 캐리어#s-2.1|카든-로이드 탱켓]]으로 정하였다. 마크 6(Mark VI) 버전이 카든-로이드 탱켓의 최종판이다. 이후 영국은 이를 전투용이었던 탱켓보다는 수송용 장갑차에 더 가까운 [[브렌건 캐리어|유니버셜 캐리어]]로 발전시켰고(수송에 유용하도록 상부 장갑이 없다), 대공황시기의 다른 국가들은 탱켓의 저렴함을 토대로 중기관총, 대전차소총, 유탄발사기 등을 장착하며 전투용도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탱켓은 그 체급의 한계상, 갓 출현한 당시에도 본격적인 전쟁용이 아닌 내부치안용이나 식민지용으로 보았을 정도로 화력과 방어력이 빈약할 수밖에 없었다. 운용 방식도 다르고 종류도 많아 일반화하기는 힘들지만, 전체적으로 탱켓을 '''전차로 쓰려던 국가는 실패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대전차 소총]]은 1차대전 말기에 이미 나온 상태였으며, 보병이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는 소형 [[대전차포]] 같은 대전차 화기 또한 전간기에 속속 등장했고, 거기에 이후 전차 성능까지 발달함에 따라 탱켓의 입지는 빠르게 좁아졌다. 보병의 입장에서도 중기관총을 사용하거나 [[바주카]]같은 물건을 쓰면 탱켓은 픽픽 터져나가기 마련이었기에, 결국 2차 세계 대전 이후 '탱켓'이라는 분류의 병기는 사라진다. 현대에 존재하는 탱켓급의 병기는 [[ASU-57]]과 [[비젤 장갑차]]가 있다. 크기와 무장, 장갑 등에서 상당히 유사하지만 공수용으로 개발된 장갑차라서 어쩔 수 없이 크기가 작아진 것이고 탱켓과는 개념이 다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