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택뱅리쌍 (문단 편집) == 균열의 조짐 == 2011년 중반, [[이영호]]가 택뱅리쌍 중 최고 커리어인 '''양대 개인리그 6회 [[우승]]'''을 달성했고, 연이어 프로리그 결승전에서만 2승하여 팀 또한 우승시킴으로써 서서히 '택뱅리쌍의 일원'이 아니라 '원탑'으로 인정 받아가는 분위기였다. 실제로 당시 스갤 등지에서는 이영호를 '''역대 최강인가 아닌가'''를 놓고 따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미 커리어에서 최고를 기록했으며, 4년이 넘는 선수 생활의 공식 기록 총합 승률 7할을 기록하면서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기록을 쌓고 있는 중이었다. 다만 [[브루드 워]] 종반부에 [[진에어 스타리그]] 8강에서 1:2로 [[허영무]]에게 패해 탈락했지만, 선수 인생의 중대한 위기였던 손목 부상을 치료하고 비 시즌을 거쳐 돌아온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시즌 1]]에서 14전 전승를 기록하였다. 비록 [[백동준]]과 [[손석희]]에게 지면서 15승 2패로 마감했으나 다승 1위를 굳건히 지켰다는 점에서 더욱 견고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도 여전히 SK플래닛 프로리그 시즌 1에서는 뱅리쌍이 다승 1위 (이제동은 공동 다승 1위), 그리고 김택용이 공동이긴 했지만 2위를 수성하면서 이영호 외에도 탑 클래스의 위엄을 보여주고 있었고 김택용은 프로리그 결승전에서 에이스 결정전에 출전해 이영호를 완벽한 컨트롤로 제압, 소위 택신의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정규 리그와 포스트 시즌을 통틀어서 보면 더 이상 택뱅리쌍은 예전의 극강의 모습을 보여주진 못하였는데, 물론 가끔씩 상대에게 밀려서 지는 경우나 당연히 나올 수 있고 여전히 뛰어나지만 점차 다른 선수들과 차별된 무언가를 보기엔 더 이상 힘든 편이었다. 여기에 더해서, 이제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브루드 워]] 자체가 어느 정도 [[시한부 인생]]으로 접어들면서 추가적인 커리어를 쌓는 것이 예전보다 훨씬 어려워졌고, 신인 선수의 유입 또한 사실상 멎었기 때문에 슬슬 택뱅리쌍이 브루드 워의 '''최후의 실력자'''로 남게 되는것이 아닌가 하는 목소리가 서서히 나오고 있었다. 앞서 언급된, 택뱅리쌍을 대체할 만한 잠재력이 있는 선수들에게 비록 실력은 있다지만 '''이젠 시간이 없다'''는 분위기였다. 우선 [[MSL]]이 [[MBC M|없어졌고]], [[온게임넷 스타리그|스타리그]]도 [[진에어 스타리그 2011]] 이후 2011년에는 스타리그가 열리지 않은 것도 모자라 프로리그 개막 이전까지 3달 가까이 공식전이 치러지지도 않았으며, 2011년 말 겨우 다시 시작된 SK플래닛 프로리그에서 경기 수도 많이 줄어 버렸다. 즉 실력이 충분하다 하더라도 그 실력을 발휘할 경기가 부족하다는 뜻. 한편으로 '택뱅리쌍' 싸움의 퇴조에 스타판의 유지를 위해 보다 재미있는 경기와 방송이 나와야 한다는 여론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시즌 1]] 들어서면서 선수 인터뷰, 배경 음악 등으로 선수들의 소위 '예능감'을 선보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자 이러한 예능감을 뽐내는 선수들이 성적을 막론하고 보다 호평을 받게 되었다. 다시 말해, 스타판의 위기감이 고조된 상황에서 '''더 이상 1인자 싸움은 무의미할 뿐, 스타판을 살려내지 못한다'''는 의식이 널리 퍼져 있는 셈이었다. 따라서 이에 따라 [[스갤]] 등지에서는 선수의 실력을 놓고 벌어지는 말다툼을 [[병림픽]]으로 배척하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스타판을 살릴 예능감'을 찾는, 택뱅리쌍 순위 논쟁은 무의미하다는 추세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