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태화백화점 (문단 편집) == 몰락과 파산 == 부산에서 최고의 백화점이라는 지위에도 불구하고 부산의 납품 업자들을 제대로 배려하지 않고 아주 홀대하였다. 이로 인해 '''"너희들 계속 이러다 보면 나중에 서울 백화점들 내려오기 시작할 때 큰일 날 줄 알아"''' 라는 욕을 납품 업체들로부터 계속 먹었다. 이 말이 현실이 된 건지 실제로 1995년 8월 [[범일동]]에 [[현대백화점 부산점]]이 개점하였고 같은 해 12월에는 옛 부산상고 부지에 [[롯데백화점 부산본점]]이 개점하면서 위기를 맞게 된다. 롯데백화점이 개점하기 전부터 동래구 [[세원백화점]], 광안리 [[신세화백화점]], 해운대 리베라백화점 등의 개점으로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가 무너지며 쇠락에 있었으므로, 가구 전문 백화점 이미지가 강한 부산백화점과 달랐던 범일동 현대백화점의 개점이 태화쇼핑에게 결정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와중에 1996년 8월 고객층 이탈을 막기 위해 연면적 13,200여평, 매장면적 4,480평에 달하는 신관을 건설, 본관은 명품관으로 / 신관은 패션관으로 변화시킨 후 태화쇼핑에서 태화백화점으로 점포명을 변경하였다.[* 당시 신관 4층에는 [[타워 레코드]] 2호점도 입점했다.] 그러나 이전과 같은 매출에도 미치지 못하는 채산성의 급격한 악화로 그 해에 무려 146억원의 적자를 기록하였다. 이 같은 위기임에도 불구하고 1천억원을 들여 연면적 19,000여평, 매장면적 7,040평 규모의 덕천점의 신규 개점을 무리하게 추진한데다 1994년에는 흥아타이어[* 현재 주식회사 넥센.]와 합작하여 자동차부품업체인 태흥산업[* 현재 넥센테크.]을 설립하여 사업다각화에도 나섰던 것이 독이 되었고 덕분에 광고선전비, 관리비에 대한 부담이 고스란히 본점에 넘겨져 1997년 6월 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되었다. 거기다가 안 그래도 1997년 7월 10일, 김갑진 회장의 2세였던 김정태 사장이 회사의 경영난을 비관하여 자신이 거주하던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자살하는 사건까지 발생하였고 이후 1998년 3월 법정관리 인가를 받은 후 범시민적인 태화쇼핑 살리기 운동을 전개하였고 2000년 11월에는 인터넷 쇼핑몰 "쇼핑투데이"를 오픈하는 등으로 돌파구를 찾으려 하였으나 이미 쌓인 큰 부채액과 대형 백화점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약한 경쟁력, 매출액의 급격한 감소등의 이유로 좌절되었으며 결국 2001년 5월 28일 법정관리 폐지 이후 같은해 8월 27일 파산선고를 받아 9월 22일 상장폐지에 이어 10월 28일 고별전을 끝으로 폐점하였고 법인 자체는 2006년 6월 30일자로 소멸처리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