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태종(조선)/생애 (문단 편집) === 인재 등용 ===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1/12/18/BWZQ6GIXAREGLBYFRXUGKWKSAA/|개국공신, 처가식구도 쳐내… ‘태종 리더십’에 국가경영 답있다]] 태종은 철저하게 능력 위주로 사람을 평가해 적재적소에 썼다. 정적(政敵)의 혈친이라도 필요하면 중용했다. [[정몽주]]의 두 아들에게 벼슬길을 열어줬고, [[정도전]]의 아들 정진은 판서까지 올렸다. 태종실록에 나주목 판사 임명을 앞두고 두 사람을 고민하다가 좌의정 [[성석린]]에게 의견을 구하는 대목이 나온다. 성석린이 ‘일을 처리하는 재주는 정진이 낫다’고 하자 태종은 곧바로 그를 임명했다. ‘[[정도전]]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조선 개국을 반대한 [[이색(고려)|목은 이색]]의 자식과 문인들도 품어 안았다. 태종이 인재를 쓰는 안목은 세종·세조 시대까지 영향을 미친다. 세종 시대 주역인 [[황희(조선)|황희]], [[맹사성]], [[조말생]], [[장영실]]은 모두 태종이 발탁해 키운 사람이고, 세조 때 정승이 된 [[정인지]]는 태종이 장원급제자로 직접 뽑았다. 태종실록엔 “내가 전라도 절제사를 했다고 해서 전라도 사람만 등용해야 되느냐”고 신하들에게 따져 묻는 태종의 육성이 나온다.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사람을 보는 눈. 태종은 사람을 판별할 때 ‘곧음[直]’ 여부를 잣대로 삼았다. 곧음이란 스스로의 원칙에 입각해 덕(德)을 기르고 의(義)에 따라 행동하는 자세를 말한다. 이한우 경제사회연구원 사회문화센터장에 따르면 “태종이 ‘직’을 말한 사례를 전부 검색했더니 강직(剛直), 공직(公直), 충직(忠直), 눌직(訥直·말은 어눌하지만 마음속은 곧음) 등 열세 유형이 나왔다”고 한다. 이중에서도 최고의 ‘직’은 순직(純直)으로 이는 마음속에 간사함이 조금도 섞이지 않고 곧다는 뜻으로, 아들 세종의 품성을 이렇게 평했다. 태종 18년(1418) 세자 충녕에게 전위(傳位)할 뜻을 밝히며 “세자는 순직하니 임금을 맡을 만하다”고 말하였다. 측근인 [[하륜]]과 [[조영무]]를 중용한 것도 ‘질직(質直·바탕이 곧음)’하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신하들이 하륜에 대해 불평하자 태종은 “하륜이 다질소문(多質少文)하다”고 달랜다. 바탕은 곧은데, 그걸 부드럽게 잘 표현해내지 못하는 성미이니 이해하라고 편을 들어준 것이다. 이렇듯 태종은 사람보는 눈이 뛰어났고 인재 등용에 있어서도 매우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군주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