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태종(조선)/대중매체 (문단 편집) ==== 용의 눈물 ==== 지금까지 태종을 가장 잘 표현한 [[한국]] 사극으로는 1996년 [[KBS]]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 배우 [[유동근]]이 연기한 [[이방원(용의 눈물)|이방원]]이 꼽히고 있다. 사실 <용의 눈물>이라는 드라마 자체가 원작[* 월탄 [[박종화]]의 <세종대왕>. 하지만 사람 사는건 똑같아서 태종이 훨씬 [[드라마]]틱하기 때문에 제목만 <세종대왕>이고 대부분의 내용은 태종에 대한 이야기이다.]에서 태종 부분을 들어내서 만든 것이니 진짜 [[주인공]]이며 <용의 눈물>이라는 제목 자체가 태종을 말하는 것이다. 배우 [[김무생]]이 주인공인 [[이성계(용의 눈물)|이성계]] 파트부터 조용하지만 강력한 [[카리스마]]를 잘 표현하였으며 본격적으로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는 후반부에 와서는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의 연기를 보여줬다. 특히 [[고증]]에 많은 신경을 써서 아버지 이성계와의 갈등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내용과 매우 유사하였다. 그 절정은 이른바 벼루샷이라고 불리는 장면. 분노한 이성계가 방원에게 [[벼루]]를 투척하여 머리에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장면이다. 이후에도 태종과 이성계의 갈등 장면에서는 꼭 나오는 장면이 되었다 이성계가 개성에서 한양으로의 재천도 이후[* 즉위식은 개성에서 했지만 이후 한양으로 천도를 했다가 2대 [[정종(조선)]]시절 다시 개성으로 천도를 했다가 태종이 왕위에 오르고 조사의의 난 이후 돌아온다] 한 동안 궁밖을 유람하다가 [[궁]]으로 돌아오자 그 앞에서 "아바마마! 소자의 춤을 보시옵소서!"라며 어린애처럼 [[춤]]을 추다가 아버지 품에 안기며 화해하는 장면은 최고의 [[명장면]]. 이후 이성계가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를 떠올리며 용상 앞에서 "아바마마! 소자가 잘못했사옵니다!"하며 오열한 연기도 일품. 이성계의 [[죽음]] 이후 태종 집권기 내용 또한 볼만한데 [[이숙번(용의 눈물)|이숙번]]을 쥐락펴락하는 모습, 가만히 지켜보다가 [[양위]] 소동을 일으켜 민씨 형제를 그물망 속으로 빠뜨리는 모습 등에서는 노회한 책략가의 모습 그 자체. 이숙번이 민씨 형제를 경계하라고 진언하니 되려 이숙번더러 "사람이 변했다. 제 몸보신을 위해 남을 헐뜯는 법도 배웠는가"라며 힐난하고는 듣는 척도 안하더니 이후에는 천연덕스럽게 민씨 형제를 장남과 차남, 그 뒤에는 삼남과 사남까지 사지로 밀어넣는다. 이 과정에서 [[원경왕후(용의 눈물)|원경왕후 민씨]]와 엄청난 갈등을 벌이면서도 태연하게 이숙번을 방패로 내세우는 장면에서는 소름이 끼칠 지경. 이숙번은 민씨 형제의 세력을 가볍게 견제하고 위축시킬 생각이었을 뿐인데 태종이 강경하게 박살을 내려고 하자 당황한다. 그래서 이숙번은 민씨 형제를 추궁하라는 태종의 명을 사양하는데 태종은 그런 그를 보며 "또 사람이 변했다"면서 핀잔을 준다. 표적이 된 자들은 철저히 몰아붙이는 것도 모자라서 반대편에 있는 [[신하]]들조차 오들오들 떨게 만드는 모습이 백미. 노련하고 냉정한 [[정치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면서도 아들 [[양녕대군]]을 눈물겹게 위하는 아버지로서의 면모도 유감없이 묘사되었다. 양녕대군이 엇나가기 시작하자 호통을 치거나 매를 들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제발 정신 좀 차려라. 네가 원한다면 당장 내 목숨을 내놓을 수도 있다"며 빌기도 하며 [[경회루]]가 완공되고 양녕대군이 현판을 쓰는 장면에서는 호들갑을 떨며 [[관료]]들에게 아들을 자랑하는 아버지로서의 모습도 보였다. 이후 충녕대군의 사저로 잠행을 나왔을 때 "나는 재목이 아니니 일부러 미친 척을 하며 충녕에게 세자위를 넘기련다"라는 양녕대군의 본심을 엿듣게 되자 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땅바닥에 주저앉아 "이것이 지난 죄업에 대한 벌이냐"고 독백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으며 "폐세자하라"는 어명을 받든 [[도승지]]가 대전에서 나가자 울기도 했다.[* 어명을 내릴 때도 [[목소리]]가 떨리고 눈물이 떨어지기 직전이였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왕]]으로서의 위엄을 잃지 않다가 도승지가 나가고 나서야 참았던 눈물을 쏟고 말았다.] 양녕대군의 폐세자 이후 새로 [[세자]]로 책봉된 [[세종(조선)|충녕대군]]에게 양위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표면적으로는 군왕의 자리에 앉혀두고 태종 자신은 군권만 쥔 채로 군왕의 수업을 직접 시키고자 한다는 이유로 신하들을 설득시킨다. 양위 전날에는 군권을 쥔 상태로 [[왕실]]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남아있는 인척이 누가 있는가를 곰곰히 생각하다가 충녕대군의 [[장인어른|장인]]인 [[심온]]과 그 [[파벌]]을 지목하고 보위를 넘겨준 직후에 바로 심온 일파를 소탕하는 기염을 선보인다.[* 작중 원경왕후는 "야차나 귀신 그 자체다"라는 폭언을 퍼부을 정도.] "모든 악업은 내가 지고 갈 터이니 주상께서는 [[성군]]이 되시오."라는 불후의 [[명대사]]를 남겼는데 태종의 [[성격]]과 [[군주]]관을 잘 나타내는 [[명언]]이 되고 있다.[* 이 말은 실제 태종이 [[상왕]]으로 물러나고 새로운 왕으로 즉위한 세종에게 한 말이다.] 그리고 그는 [[세종(조선)|세종]] 4년 나라에 가뭄이 극심하자 임금의 대례복인 구장복을 입고 [[기우제]]를 지내다가 쏟아져 내리는 비를 보고 승하한다. 이는 '태종우'라는 전설을 모티브로 각색한 것이다. 교묘한 [[정치]]술을 발휘하여 신하들을 가차없이 [[숙청]]해버리는 '심술의 군주'로서의 면은 물론 술자리를 벌이거나 사냥을 나가는 모습을 종종 묘사함으로써 '[[사냥]] 애호가'로서의 모습도 묘사되었으며 [[후궁]] 문제로 원경왕후와 지지고 볶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여성]] 편력'도 그려졌고 양녕대군과의 관계에서 '[[아들]] 바보'였던 측면도 충분히 소개되었다. 나오지 않은 것은 '[[부엉이]] 공포증'과 '관대한 면모'[* 이마저도 [[정몽주]]를 [[영의정]]에 추증한다거나 [[정도전(용의 눈물)|정도전]]과 그 일파를 멸족시키지 않은 점 등을 소개하면서 보여주었다. 특히 정도전 숙청 당시 그를 "아저씨"라 부르며 안타까워하는 모습은 관대함의 편린을 보여주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정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