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태종(조선) (문단 편집) == 직접 쓴 글과 시 == > {{{+1 '''명나라 [[영락제|영락 황제]]에게 바치는 시'''}}} > 자줏빛 봉황 편지 물고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 먼 지방의 기쁜 기분 노래로 감응하네 > 오랫동안 숨어 있던 용과 범은 소리로 응대하고 > 죽지 않은 고래들은 기세 오히려 씩씩하네 > 만 리 강산에 정통성이 돌아왔고 > 백 년 인생이 맑은 조정을 보네 > 노안에 황제의 명령으로 새로운 변화 보게 되니 > 백발에 너그럽지 않음을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 >[[열성어제]][* 강진숙 번역본] >{{{+1 '''[[참성단|마니산 제단]]'''}}} > 외진 지역 인적 드문 곳에서 > 깨끗한 마음으로 밤낮 재계한다 > 국화꽃은 우물물을 내려다보고 > 흰 이슬은 섬돌 이끼에 스며든다 > 장수 기원함이 얼마나 절실한가 > 샛별 응당 자연히 배열하리라 > 봄가을 제사 기일 어기지 않아 > 임금의 덕 또한 생각나는구나 >---- >[[열성어제]][* 강인숙 번역본] >---- >{{{+1 '''[[참성단|마니산 제단]]'''}}} > 왕명 받들고 이 재궁에 다다르니 > 눈에 가득한 가을 산 비단에 붉은 수놓았다 > 소나무 창가 꿇어앉아 하는 일 하나 없는데 > 휘영청 달빛 성 동쪽에 빠져있구나 >---- >[[열성어제]][* 강진숙 번역본] 1390년(공양왕2)에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에서 쓴 시 두 편이다. >{{{+1 '''[[회안대군|회안대군 방간]]에게 내려준 글'''}}} > 의정부에서 아뢰기를, "백형 부자가 순천으로 옮기던 날에 말을 달려서 피하려고 한 일이 있었습니다."라고 하였는데, 내가 경진년(1400년, 정종 2년) 봄[* 2차 왕자의 난을 뜻한다.]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백형을 보전하려고 하는 마음이 날로 두터웠습니다. 근래에 김여생과 중 묘봉 등이 망령되게 "백형이 난을 꾸몄다."라고 일컬었으므로 이미 조사하여 밝혀서 반좌율[* 무고죄를 처벌하는 법 정도 된다.]에 처하였고, 또 일전에 [[조사의]]가 동북면에서 군대를 일으키자 백관들이 대궐에 나아와 백형을 [[제주특별자치도|제주]]로 내치자고 청하였는데, 내가 제주는 바다를 사이로 너무 멀리 있기 때문에 청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백형께서는 의혹을 품지 마시기 바랍니다. >---- >[[열성어제]][* 강진숙 번역본] 1402년 음력 12월 2일 형인 [[회안대군|회안대군 방간]]에게 보낸 글이다. 이방간은 2차 왕자의 난을 일으킨 인물로 태종 이방원과 마찰이 있었다. 글을 보면 태종 이방원은 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난 다음부터 이방간을 잘 보호하려고 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