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태조대왕 (문단 편집) === 학계의 정설 === 노태돈의 《고구려사 연구》에서 제기된 설을 토대로 하는 학설로, 동명성왕부터 모본왕까지의 왕가는 태조대왕 이후 왕가와 별개의 계통이었는데 모본왕 피살 후 긴 왕권 다툼이 발생해 최종적으로 태조대왕계로 왕가가 바뀌었고, 후대에 인위적으로 두 왕계를 연결시키면서 태조대왕의 수명과 재위 기간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9038|출처]] 단, 동명성왕계에서 태조대왕계로의 왕가 교체가 연노부(소노부)와 계루부 간에서 일어난 것인지, 아니면 계루부 내부에서 일어난 일인지는 논쟁이 있는 편이다. 노태돈은 이 왕가 교체가 소노부에서 계루부로의 왕가 교체와는 별개로 계루부 내부에서 일어났다고 보았다. 사실 연노부에서 계루부로의 왕가 교체부터가 이론이 많은데, 동명성왕 시기의 비류국 세력 귀순이 연노부와 계루부 간의 왕계교체라는 설(정설), 태조대왕으로의 왕가교체가 연노부와 계루부 간의 왕계교체라는 설[* 정설에 밀리긴 했지만 아직도 주장하는 학자가 있긴 하다. 대표적으로 권순홍이 자신의 2015년 논문 〈고구려 초기의 都城과 改都〉에서 주장했다.], 연노부와 계루부 간의 분화가 산상왕 시기에 일어났다는 설[* 〈고구려 초기 消奴部, 桂婁部의 형성과 卒本〉, 임기환, 2019]이 있다. 그렇다면 태조대왕은 언제 출생하고 언제 사망했을까? '''대부분의 학자들은 《후한서》의 121년 태조대왕 사망 기록을 신뢰한다'''[* 이 기록대로라면 태조대왕은 향년 '''74세'''로 사망한 것이 된다. 118세 기록보다는 40년 이상 짧지만 현실적인 동시에 당대에는 확실히 장수한 나이다.]. 이유는 《후한서》에 나타난 태조대왕 사망 소식 전달부터 고구려로 사신을 파견하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자세하다는 점, 태조대왕의 죽음을 알린 인물은 태조대왕과 여러번 싸운 인물로서 고구려에 대해 잘 알았으며 장례식에도 직접 참여했다는 점, 중국이 다른 나라의 왕계에 대해서는 종종 부정확하게 기록하지만 기년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기록한다는 점, 중국에서 굳이 죽지도 않고 장례식도 없었는데 조작할 이유가 없다는 점, 121년부터 146년까지 《삼국사기》 '태조대왕조' 후기 기사가 부자연스러우며 조작으로 보인다는 점 등이 있다. 또 출생년도의 경우 정확히 비정하기는 어렵지만 서기 98년 책성 순수 기사를 기준으로 서기 75~85년 사이로 비정하고 즉위년도는 80~90년 사이로 비정하는 견해가 많다. 중국에선 태조대왕과 전쟁할때 태조대왕이 '장성'했다고 표현했는데, 기존 생년대로라면 이 시점에서 나이가 무려 59세나 되어서 표현이 어색하기 때문.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