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태조(조선)/생애 (문단 편집) === 원나라 군벌 [[나하추]] 격파 === 그뿐만이 아니다. 여진족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고, 1362년 당대에 이름을 날리던 [[나하추]]를 격파했다. 당시 나하추는 휘하의 가장 뛰어난 장수에게 붉은 기를 주고 이성계에 맞서게 했으나 전사하고 패하였다. 이에 열 받은 나하추는 다음 날 장수 5명을 한꺼번에 출진시켜서 이성계를 공격했는데, 5명 모두 전사했다. '''이는 [[원사(역사책)|원사]]에도 나오는 내용이다.''' 나하추의 부인이 나하추에게 이르기를 '''"공(公)이 세상에 두루 다닌 지가 오랜 세월이지만 저런 장수를 본 적이 있습니까? 어서 피하여 속히 돌아오십시오."''' 하였으나 나하추가 듣지 않았다. 나하추는 모든 병력을 함흥 평야로 이끌고 나왔으나, 이성계는 군을 삼군(三軍)으로 나누어 좌군(左軍), 우군(右軍)은 매복시키고, 자신은 중군(中軍)을 이끌고 나아가 나하추의 군대를 매복지로 유인하여 끌어들이니 나하추의 군대는 포위되어 완패한다. 결국 나하추는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나면서, 공민왕과 이성계에게 좋은 말(馬)을 각각 선물하며 예를 차렸다. 더하여 이성계에게는 '비고'라는 진군할 때 울리는 북을 선물하였다. 진중에서 이성계의 무공을 지켜본 나하추의 누이까지도 "이 사람은 세상에 둘도 없겠다"며 감탄하였다고 한다. 1376년 우왕이 나하추에게 개성부윤 황숙경을 사신으로 보내었는데, 나하추가 말하길 당시 공민왕이 이성계를 보내어 거의 죽을 뻔했다며, 이성계는 군사를 부리는 재주가 신(神)과 같다면서 안부를 물으며 이성계는 장차 큰일을 할 것이라고 하였다. 엄연히 적장이었는데도 말이다![* 사신을 통해 임금 앞에서 이렇게 일개 장수에 대한 극찬을 한다는 게 꼭 선의라 보긴 어렵다. 임금 입장에서 보면 타국까지 명성을 떨친 구국영웅의 존재는 지극히 껄끄러운 요소기 때문.]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