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태자 (문단 편집) == 유럽 == 유럽의 왕위 계승자들은 거의 Crown Prince라고 한다. 예외적으로 근대 이후 [[프랑스 제1제국]], [[프랑스 제2제국]], [[브라질 제국]]의 황태자를 Prince Imperial이라고 한 적이 있지만[* 이들은 근대의 혁명이나 전쟁으로 인해 탄생한 황제들로서 그 이전의 봉건적인 군주들과는 차이가 있다.] 이 역시 Crown Prince의 한 종류였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이전까지 [[서유럽]]의 유일한 제국이었던 [[신성 로마 제국]]의 경우 형식상 [[선거군주제]]였기 때문에 황태자라는 자리 자체가 없었다. 제위 계승자를 미리 선출시켜 [[로마왕]]이라는 칭호를 받게 하였으나 엄밀히 따지면 황태자는 아니었다. 비슷하게 로마 제국은 프린키파투스(원수정) 아래에서는 프린켑스 유벤투티스, 카이사르 칭호 중 하나 혹은 두 개 모두를 수여했다. 이는 2세기 후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시대 이후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를 차례로 수여하는 방식으로 바뀌지만 보통 공동황제로 삼거나 차기황제로 공인할 경우 내린 칭호는 카이사르와 프린켑스 유벤투티스였다.[* 다만 제정을 연 아우구스투스의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시대에는 가문의 개인 성씨 자체가 카이사르였기 때문에 굳이 카이사르 칭호를 부여하지 않았다. 따라서 아우구스투스의 직계혈육들(가이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카이사르, 게르마니쿠스, 드루수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티베리우스 게멜루스)과 양자 티베리우스, 아우구스투스의 증손자 가이우스(칼리굴라)의 경우에는 공화정 전통에 따라 이를 유언장과 원로원을 통한 특권 수여 특별법을 통해 부여됐으며, 굳이 하나를 명시적으로 줄 경우에는 프린켑스 유벤투티스나 호민관 특권, 집정관 대행권한 등을 수여했다. 티베리우스 게멜루스는 가이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카이사르와 마찬가지로 프린켑스 유벤투티스를 수여받았다.] 이런 전통을 계승한 [[동로마 제국]]에서도 카이사르라는 칭호를 내렸다. 다만 동로마 제국의 경우에는 프린키파투스 체제 이후인 사두정치 시기의 부제 칭호인 카이사르에서 유래한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근대]] 이전의 [[유럽]]에서는 왕위를 이을 후계자에게 [[웨일스 공]]([[영국]])이나 [[아스투리아스 공]]([[스페인]]) 등 별도의 작위에 책봉했다. [[유럽]]의 경우 확정상속인(Heir apparent)과 추정상속인(Heir presumptive)의 구분이 있다.[* 덴마크에선 확정 상속인에겐 Kronprins til Danmark(Crown Prince of Denmark) 작위를, 추정 상속인에겐 Arveprins til Danmark(Hereditary Prince of Denmark) 작위를 주었다. 이는 아주 먼 방계 친척이 아닌, 군주의 친동생이라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최근에 Arveprins til Danmark 작위를 받은 이는 現 덴마크 군주인 [[마르그레테 2세]]의 숙부이자 [[프레데리크 9세]]의 남동생인 크누드 왕자였다. 이후 프레데리크 9세가 왕위 계승법을 수정하면서 마르그레테 2세가 왕위를 잇게 되었다.] 확정상속인은 그 자신이 확실한 후계자로, 본인이 사망하지 않는 이상 무조건 작위를 이어받는 확정된 지위이다. 예컨대 영국 왕 [[찰스 3세]]는 영국 왕실이 아들 우선 상속법을 시행할 때 선왕 [[엘리자베스 2세]]의 맏아들로 태어나 확정상속인으로서 웨일스 공이 되었다.[* 이후 2015년 계승 법칙이 아들딸 가리지 않고 절대적 맏이 상속법으로 바뀌지만, 그 전에 태어난 찰스의 장남 [[윌리엄 왕세자]]의 항렬까지는 구법이 적용된다. 다만 찰스 3세 본인과 윌리엄 왕세자, 윌리엄의 장남 [[조지 알렉산더 루이]]까지도 큰아들이자 모든 자녀들 중 맏이인지라 별일이라도 생기지 않는 한 조지 왕세손 세대까지는 구법으로도 신법으로도 확정상속인 지위에 흔들림이 없게 된다.] 반대로 추정상속인은 계승법칙 상 1순위인 후계자가 존재하지 않을 때 주어지는 자리로, '일단은' 후계자이지만 우선권이 높은 상속자가 태어날 경우 후계자 자리를 넘겨주게 된다. 순전히 법률적인 의미이기 때문에 우선권이 높은 상속자가 탄생할 실질적인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아들 우선 상속법 기준으로 [[남자]] [[형제]]가 없는 [[군주]]의 [[장녀]]는 잠재적으로 군주의 후계자이다. 그러나 후에 [[남동생]]이 태어난다면 남동생이 군주의 새로운 후계자가 된다. 유럽에서 지금까지 대부분의 [[여왕]]들은 추정상속인 위치에서 왕위를 이어받았다. [[엘리자베스 2세]] 또한 마찬가지로 즉위 전까지 Princess of Wales[* 이 단어는 [[왕세녀]]가 아니라 [[왕세자비]]의 칭호로 쓰인다. 다만 [[찰스 3세]]의 배우자 [[카밀라 파커 보울스]]는 사용하지 않았다.]가 아니라 추정상속인(일반적인 공주)이었다. 유럽의 확정상속인들은 이에 걸맞는 작위를 부여받는데, 예컨대 유명한 [[영국]] 왕위계승자는 [[프린스 오브 웨일스]] 작위[* [[잉글랜드 왕국|잉글랜드]] 왕위 후계자의 작위.]와 콘월 [[공작(작위)|공작]] 작위[* 잉글랜드 국왕의 장남의 작위.] 및 로스시 공작 작위[* [[스코틀랜드 왕국|스코틀랜드]] 왕위 후계자의 작위.]를 받는다. 만약 왕세자가 왕세손을 낳은 채 왕보다 먼저 사망하면 왕세손은 왕세자의 뒤를 이어 웨일스 공에 책봉되지만, 콘월 공작 작위와 로스시 공작 작위는 받지 못한다. [[스페인]]은 [[프린시페 데 아스투리아스|아스투리아스 공]][* 스페인의 경우 추정상속인도 이 칭호를 받는다. 따라서 역대 아스투리아스 공이 매우 많다.]과 히로나 공작[* [[아라곤 왕국]]의 후계자 작위.], 비아나 공작[* [[나바라 왕국]] 후계자 작위.], 몽블랑 공작 작위 등을 받고, [[벨기에]]는 브라반트 공작, [[네덜란드]]는 오라녀 공 작위를 받는다. [[스웨덴]]과 [[덴마크]][* [[덴마크-노르웨이 왕국|덴마크가 노르웨이를 속주로 두던 시절]]에는 왕세자를 노르웨이 공(Prins til Norge)으로 책봉했었다.], [[노르웨이]]는 별다른 작위 없이 왕세자(Kronprins)에 책봉한다. 사라진 군주정의 예를 보자면 [[브라질 제국]]은 그랑 파라 공작 작위를 황태자에게 주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프랑스 제국]]은 황태자에게 [[로마왕]] 작위를 주었다. [[이탈리아 왕국]]은 [[사보이아 공국]]과 [[사르데냐 왕국]] 시절에는 피에몬테 공(Principe di Piemonte)[* 대립교황 펠릭스 5세로 알려진 [[아메데오 8세]]가 [[사보이아 가문]]의 후계자들을 위해 만든 유서 깊은 칭호이다.]을 주다가 통일 이탈리아 왕국 수립 후엔 피에몬테 공 혹은 나폴리 공[* [[움베르토 1세]]와 [[움베르토 2세]]는 피에몬테 공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나폴리 공(Principe di Napoli)을 받았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만 예외적으로 나폴리 공 칭호를 받은 것은 [[나폴리]]에서 태어나서 그렇다. 할아버지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가 남부 이탈리아인들의 민심을 사로잡고자 수여했다. 여담으로 현재 이탈리아 왕위 요구자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는 나폴리 공을 칭하고 있으며 그의 아들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는 베네치아 공(Principe di Venezia)을 칭하고 있다. 이들과 별도로 이탈리아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는 분파인 아오스타 공작가의 경우, 현 6대 공작 아이모네의 장남 움베르토는 전통적으로 사보이아 가문 후계자들이 사용하던 피에몬테 공을, 차남 아메데오는 5대 공작이 생전에 (명목상)수여한 아브루치 공작(Duca degli Abruzzi)을 칭하고 있다.]을 주었다. [[나폴리 왕국]]과 [[시칠리아 왕국]]의 후계자들은 칼라브리아 공작위를 받았다. [[포르투갈 왕국]]은 1822년에 [[브라질 제국|브라질]]이 독립하기 전까지 상속자의 작위가 브라질 공(Principe do Brasil)이었고 브라질 독립 후엔 알가르브 공작을 줬다. 포르투갈 상속자의 장자에게는 베이라 공작이 주어졌다. [[불가리아 왕국|불가리아]]는 [[벨리코 터르노보|터르노보]] 공작, [[루마니아 왕국|루마니아]]는 [[알바이울리아]][* 원래 이 도시는 [[헝가리 왕국]]이 [[오스만 제국]]의 침공으로 [[모하치 전투]]에서 패전해 [[합스부르크 제국|삼]][[오스만 헝가리|분]][[트란실바니아 공국|할]]당해 오스만 제국 치하에서 [[헝가리인]]의 문화를 보존하게 해준 [[트란실바니아 공국]]의 수도였던 곳이다. [[페르디난드 1세]]는 이곳에서 [[트란실바니아]]와 [[루마니아 왕국]]의 합병 선언을 했는데 헝가리를 엿먹이고 과거 트란실바니아에서 [[농노]]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던 [[루마니아인]]의 복수를 한 셈이다.] 대공이라는 작위를 줬다. 근대 [[그리스 왕국]]의 왕세자는 디아도코스(Διάδοχος)라고 불렸는데 그냥 상속자라는 뜻이며, [[디아도코이]]의 단수형이다. [[요르요스 1세]]가 세자 [[콘스탄티노스 1세]]에게 스파르타 공작이라는 [[작위]]를 만들어주었지만 귀족 작위를 허용하지 않는 헌법과 충돌된다는 이유로 의회가 반발하였다. 나중에 의회의 승인을 받기는 했지만 이후 사용이 중단되었다. 그래서 스파르타 공작이라는 칭호를 쓴 왕세자는 콘스탄티노스 1세 딱 한 사람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