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태일이 (문단 편집) == 줄거리 == [include(틀:스포일러)] 대구 낙동강에서 동생들과 물고기를 잡으며 노는 태일의 유년 시절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린아이답게 동생들과 놀기도 하고, 가족들 모두가 재단사인 아버지 일을 도와드리는 평화롭고 즐거운 날들이 이어지는 듯하지만, 어느 날 아버지가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전 재산과 살림살이 등 모든 걸 몰수당한다. 그 이후 술에 취해 모든 걸 놓아버린 아버지, 돈을 벌기 위해 몰래 집을 나간 어머니, 너무 어려 보살핌이 필요한 막내 등 많은 일들이 겹쳐 태일의 삶이 더욱 힘들어진다. 아버지는 알코올의존증에 빠져 폭력성을 보이거나 태일의 교과서를 태워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등 가정을 돌보지 않는 행보를 보인다. 결국 태일은 막내 순덕과 함께 집을 떠나 서울 한복판을 떠돌아다니며 [[거지|아주 힘들게 생활한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아이를 잘 돌볼 수 없는 것을 깨달아 순덕이를 보육원에 보내고, 가족을 위한 돈을 벌기 위해 구두닦이와 신문팔이, 뒤밀이[* 지금은 사라진 일자리이다. 무거운 수레 뒤를 밀어주는 고된 일.] 등을 하며 고되게 생활한다. 또래 아이들은 교복을 입고 등하교 하는데 자신은 길거리에서 빗물에 머리를 감거나, 일을 하던 중 [[6.3 항쟁|시위에 휘말려]] 경찰에게 쫒기는 등 청소년이 견디기 힘들 정도. 하지만 힘든 일들을 견디며 서울 남대문 부근에서 계속 생활했던 덕분에 어머니와 극적으로 재회하게 된다. 그렇게 어머니와 재회한 뒤로는 어머니 지인의 집 마루 아래에 거적데기를 깔고 누워 함께 지낸다. 당시 그 이웃의 집도 단칸방에 온 가족이 모여 잘 정도로 풍족하지 못했던 상황이었기 때문.[* 남의 집 마루 아래 땅바닥에 고작 거적데기 한 장 깔아 잠을 청했지만, 전태일 열사는 그 당시를 어머니와 단둘이 도란도란 대화를 나눴던 아늑했던 공간, 행복했던 시간으로 추억하고 있다.] 계속 서울에서 지내는 시간이 흐르고, 다행히 가족 모두가 다시 모이게 된다.[* 만화책에 더욱 자세히 서술되는데, 태일의 가족 모두가 피복과 관련된 기술이 있었던 덕분에 서울에서 생활할 수 있는 반경이 비슷했던 덕분이다. 아직 어려서 기술이 없었던 순덕은 태일이 보육원에 보내둔 상황이라 다시 데려올 수 있었다.] 이후 성장한 태일은 옷을 잘 차려입고 가방까지 멘 채 평화시장에 면접을 보러 오는 모습을 비춘다. 서울에 지내면서 친해진 듯한 재단사 친구 수환과 밝게 장난을 치는 둥, 힘들었던 청소년기 때와는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는 태일. 비좁긴 해도 여섯 가족들과 같이 지낼 수 있는 단칸방 집에서 전보다는 안정된 하루하루를 보낸다. 아버지가 가르쳐 줬던 피복 기술 덕분에 동대문 평화시장에 취직한 뒤 재단사 자리에 오를 수 있는 루트인 재단 보조 자리 이직에까지 성공한다.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다가 새로이 취직한 공장에 새벽같이 출근한 첫날, 태일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며 청소를 하다가 공장 한구석에서 자고 있는 어린 시다공[* 애벌 바느질이나 단추 달기, 상표 달기, 나르기 등 보조적인 일을 도맡아 하는 직책. 일본어 '시다바리'에서 앞 두 글자만 따와 쓰던 용어.] 용순, 혜경, 은옥과 마주한다. 그 셋은 시다공들 중 집안 사정이 가장 어려웠는지 늘 공장에서 잠을 청하거나 점심시간엔 물로 배를 채우는, 태일보다 어렵게 사는 아이들이었다. 태일은 시다 아이들이 눈에 밟혀 자신의 도시락을 나눠주거나 자신의 버스비를 털어 풀빵을 사주는 등 다른 재단 보조와는 다르게 어린 시다공들에게 따뜻하게 대해준다. 하지만 정작 태일도 가족 여섯 명과 단칸방에 사는 데다 여동생의 학비까지 대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결국 버스비가 없어 동대문에서 창동까지 걸어가다가(네이버 지도 기준 약 12km. 당시에는 지금처럼 길이 정리되지 않아 훨씬 멀고 힘들었을 것이다.) 새벽 통금에 걸려 이를 '바보 같다'며 안쓰럽게 여긴 오 형사에게 명함까지 받을 정도. 그런 피곤한 생활 루틴으로 지내면서도 직속 사수인 재단사 신씨가 자리를 비운 날에 묵묵히 일하거나, 물량이 많이 쌓였을 때 각성제를 먹어가며 일하는 어린 시다공이 안쓰러워 시다공의 애벌 바느질을 굳이 도와주는 등 남들이 '바보 같다'라고 생각하는 행보를 이어나간다. 성실하게 열심히 일 한 덕이었는지, 태일은 공장 사장의 눈에 들어 재단사 자리까지 초고속 승진까지 하게 된다. 마침 재단사 신씨가 사장과 마찰을 빚어 공장에서 나가버리는 바람에 생긴 기회이기도 했지만, 다른 경력직 재단사를 새로 뽑지 않고 바로 태일을 승진시켜준 것. 심지어 사장 자신이 고향에 내려갔다 올 동안 태일은 사장의 집에 머물면서 사장 처제와 함께 가게 장사[* 옷을 만드는 공장 층이 따로 있고, 그 옷을 판매하는 상가 층이 따로 있다.]를 해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장사하는 시간 동안엔 옷을 보러 온 손님에게 청산유수로 말을 건네면서, 사장의 처제인 금화 앞에서는 어버버하는 태일의 청년스러운 모습이 엿보인다. ~~하지만 금화는 이미 약혼자가 있었지~~ 그렇게 모든 게 잘 풀릴 것 같은 하루하루가 이어지지만, 사장은 오히려 월급을 줄여 노동자끼리의 갈등을 심화시킨다. 당시 월급 제도는 사장이 노동자 개개인에게 지급하는 것이 아닌, 사장에게 넘겨받은 돈을 재단사가 직접 셈하여 재단 보조나 미싱사에게 나눠주고, 미싱사는 또 알아서 미싱 보조나 시다에게 나눠주는 형태였다. 월급이 줄면 미싱 보조는 미싱사를, 미싱사는 재단사를 의심하게 되는 시스템. 월급은 줄었음에도 일은 많아지고, 나중 가서는 공장의 열악한 환경 때문에 미싱사 영미는 미싱질 중 피까지 토하며 쓰러지게 된다. 태일은 사장에게 병원비 지급에 대한 의견을 꺼내보지만, 오히려 사장에게 반감을 사고 영미가 해고되었다는 소식까지 통보받는다. 이때까지만 해도 태일을 맘에 들어했던 사장은 '자네 대신에 내가 해고해 줬다'라며 생색을 내는데, 공장 노동자까지 자기 손으로 직접 해고할 수 있었던 재단사의 권한을 알 수 있는 대사이다. 이후 영미의 병원비 모금 문제로 사장과 또 한 번의 갈등을 일으킨 후, 집에 와서 심경을 토로하다 아버지 덕분에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게 된다. {{{#!folding [ 이후 내용 펼치기 · 접기 ] 태일은 친구들과 바보회를 결성해 본격적인 노동운동을 시작한다. 노동청은 이들이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항의하는것을 무시하고 태일은 근로감독관을 찾아가지만 욕만 먹고 그여파로 직장에서 해고된다. 태일은 김목사의 추천으로 막노동을 하다가 1970년 다시 돌아오게 된다. 영미는 폐병이 나아 다시 일할 수 있게 됐고 신씨 아저시도 태일을 도와준다. 태일과 친구들은 많은 동료들을 모아 삼동회라는 노동운동 단체를 결성한다. 더이상 통하지 않자 시위를 계획하게 된다. 오형사가 시위를 도와준다고 하였고 그날 시위현장 에서 수많은 동료들이 시위를 하기위해 모였지만 오형사의 배신으로 시위는 무산 되었다. 오형사에게 항의했지만 형사는 변명만 하고 노동청도 거짓말만 한다. 다시한번 시위를 계획한다. 태일은 영미에게 이번 시위에 꼭 나와달라 한다. 그러나 시위당일 몇명의 동료들이 모였지만 시위를 못하게 문을 막아놓은 상태에서 재단사 신씨는 전태일 일행을 위해 막고있는 전투경찰들에게 달려들어 몸싸움을 버리지만 오히려 경찰들이 내려친 곤봉에 폭행당하고 시위를 하려는 사람들과 경찰들 간에 몸싸움이 벌어지고 결국엔 동료 몇몇만 뛰쳐나와 시위를 벌인다. 영미도 사장때문에 시위에 못나가고 있었지만 가까스로 빠져나오고 시위를 벌이던 사람들을 전투경찰들이 계속해서 탄압하고 시위가 실패할 위기에 시위도 경찰들에 폭력진압에 짓밟히고 있던 상황에서 [[파일:태일이 명장면.jpg]]태일이 자신의 몸에 불을 붇혀 분신하고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다 결국 쓰러진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그광경을 보고 충격 받거나 통곡한다. 병원으로 옮겨진 태일이는 친구들과 어머니에게 작별인사를 하며 숨을 거두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