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태음태양력 (문단 편집) ==== 바빌로니아 ==== 바빌로니아 달력은 슐기(기원전 21세기)의 움마 력에서 기초한 것으로, 한 달의 시작을 해가 지고 초승달이 뜰 때를 기준점으로 삼았다. 한 해는 봄에서 시작해 시작, 중간, 마지막으로 삼분되었다. 달의 이름은 아륵수(아락스)였으며 아시리아가 아닌 바빌니아에 근원이 있고 아시리아의 주신이 윤달에 할당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현대 아시리아인들은 독자적인 역법을 따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일월日([[우투]])月([[난나]])과 사람이 망원경 없이 관측할 수 있는 행성인 수성, 금성([[이슈타르]]), 화성, 목성, 토성은 각자의 수호신이 있었고, 이들을 위해 일곱 개의 층대로 구성된 칠층 신전 탑 에지다 신전을 보면 개별적인 숭배가 가능하도록 일곱 제단으로 성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852년 프랑스의 아시리아 학문을 연구하던 오베르(1825~1905)가 동료 고고학자들과 함께 프랑스 발굴조사단을 지휘하면서 바빌론 성 폐구 주변의 세 개의 언덕을 탐사하던 도중 “색칠한 기와들, 글 쓴 벽돌들, 둥근 흙 비석들”을 발굴해 자신의 보고서에서 판독한 [[쐐기 문자]]로 된 한 점토판 조각에서 일월과 다섯 행성의 이름들이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일주일과 똑같은 이름이 수록되었음을 보고하였다. 오베르의 보고서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 독일 베를린 대학의 슈라이더(1836~1908) 교수는 주일의 명칭이 바빌론에서 기원함을 확인하고 1873년 동 대학교 학회지에 “칠요인의 바빌론 기원”이라는 논문을 발표해 학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는 이 논문에서 주장하기를, 오베르가 발굴하고 판독한 수메르 언어로 된 쐐기 문자의 각 성신星神의 이름은 오늘날 사회에서 통용되는 칠요일 명칭과 같다고 하였다. >“[[샤마쉬]]는 태양신이고 [[난나|신]]은 월신이었으며, [[네르갈]]은 Anglo-Saxon 족의 지비/Tix 곧 화성신이고 네보는 로마인의 메르쿠리 신이요, Anglo-Saxon 족의 워단 신으로서 그 별은 곧 수성의 신이며, [[마르두크]] 신은 Anglo-Saxon 족의 더오 신으로서 그 별은 목성의 신이고, [[이슈타르]]는 로마인의 [[베누스]]요, [[북유럽 신화|게르마니아]]의 [[프레이야]] 여신은 곧 금성의 신이요, 아달 또는 닌-이브는 로마인의 [[크로노스|사투르누스]] 곧 토성의 신이었다.” 슈라이더 교수의 논문을 읽고 그의 주장에 동조한 학자들이 나타났는데 그중에서 영국의 동방학자 세이스(1845~1933)는 영국 퀸 대학에서 1875년 11월 22일 쓴 서한에서 이리 썼다. >“처음에 오베르가 발견한 이래 현재로서는 슈라이더 교수가 보다 더 충분히 칠요일이 바빌론 기원임을 명확히 지적해냈다. 아카드 사람들 사이에는 칠은 성스러운 숫자였다. 그리고 또 그들의 태음력은 초창기에는 각각 칠일 간의 기간으로 구분되었다. 그 칠일은 일월과 다섯 행성(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에게 봉헌되었다. 그래서 그 날들을 각자 관장했던 것이다.(중략) >근자에 발굴된 단편들 중 하나는 칼데아인의 창조설에 관한 소견서로 간주되는 것인데 거기에 ‘주일의 주역들’이라고 불리어진 별들의 관직이 명확하게 언급된 문서였다.” 그 후 오베르가 발견한지 30년 뒤 미국 유니온 대학 신학대학 원장 브라운 박사가 1882년 10우러 장로교 기관지에 기고한 “쇄기 문자에 나타난 안식일”이라는 논문에서 이 주제를 다시 다루었다. 그는 여기서 “오베르는 천문학과 연관된 한 점토판에서 일월과 다섯 행성들과 주일의 날들과의 사이에 어떠한 연관성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리하여 주일의 일곱 날들의 명칭이 바빌로니아 사람들에 의해 기원되었음을 드디어 슈라이더 교수가 논증하였던 것이다.(중략) 오베르는 숫자상 일곱이고 그 각각이 신과 관련이 있는 행성들의 목록 표 즉 그 전체목록이 그 신들과 일치 또는 상응하는데 그 신들의 이름들이 오늘날 우리 시대에도 통용되고 있는 목록이 포함된 쐐기 문자 점토판에 대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환기시킨 그 첫 번째 사람이 되었다.” 사용하고 있는 요일은 칠층탑의 아래부터 토성의 이브, 목성의 마르두크, 화성의 네르갈, 태양의 샤마쉬, 금성의 이슈타르, 수성의 네보, 7층에 안치된 달의 신 순서로 배열되어 있으며 이는 칼데아 점성술사가 믿은 천동설에 입각한 태양계이기도 하다. 이 칠층탑에서 각 신들에게 각 날에 맞춰 숭배했는데 이 사제들이 칼데아의 점성술사이자 천문학자였다. 이들이 정한 제일祭日이 현대까지 계절의 순번으로 남아 내려온 것이다. >“달빛은 고대인의 생활에 있어 중요한 것이었으나 이 달빛이 정확한 주기를 지키면서 차오르고 기우는 것은 고대인에게 있어 용이하게 알 수 있었다. 이 주기가 29일 반을 가지고 정확히 되풀이되는 것은 고대인에게 우주가 법칙에 의하여 지배되는 것을 알리는 단서가 되었고 이밖에 천문현상에도 몇 가지 법칙이 있음을 쉽사리 알 수 있었다.” 또 태양이 한 해의 주기로 반복되는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천문현상의 법칙이었다. 이를 하나둘씩 표기하는 과정에서 천문학은 과학과 수학으로 발현되었다. 처음에는 1년을 254일 12월로, 한 달은 29일과 30일로 했다. 하루를 12시간, 1시간은 30분으로 환산했다. 이 역법을 바빌로니아의 태음력이라고 한다. 오스트리아 수학자 노이게바우에르(1899~?) 교수는 이리 말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바빌로니아 사람들의 역법은 전기 동안 순수한 태음력이었다. 다시 말해 달은 일몰 직후 새로운 초승달이 처음 보일 때의 저녁부터 시작되었다. 따라서 바빌로니아 인들의 달은 저녁에서 시작되었고 한 달의 첫날은 처음 볼 수 있던 그 날에서 시작되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한 달의 시작은 직접 관찰한 결과에 순응하는 자연현상에 따라 이루어졌다.” 이 태음력은 하루가 히브리인처럼 일몰부터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로 하여 “하나의 태양” 즉 일일一日이라 했고 “연수年首를 추분秋分에 월초月初를 초승달이 보일 때, 하루의 처음을 해가 지는 때로 하였다.” 하지만 순수 태음력의 특성상 천문의 1회귀년 즉 추분에서 추분까지의 주기가 맞지 않아 다음의 연수가 추분에 미치기 약 11~12일 전에 시작되는 모순이 생겼다. 그래서 그를 채우기 위해 [[윤달]]을 개발하였는데 “BC 6세기에는 8년 법이 행해지고 그 후에 19년법이 사용되었다.” 이 개정 역법이 소위 바빌로니아의 태음태양력으로 19년 7윤법을 개정하면서 이들은 연수年首를 추분에서 춘분春分으로 옮겼다. 해의 시작이 가을에서 봄으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 하루를 12시간에서 24시간으로, 1시간을 60분으로, 1분을 60초로 환산했다. 이는 셈 족의 칼데아인이 바빌로니아 문명을 최고도로 꽃피우던 때였다. 칼데아인은 수메르인이 물려준 점성술적 종교와 그를 바탕으로 한 천문지식을 이어받아 셈 어로 고쳐 하나의 점성술로 승화 발전시켰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의 수치는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10진법이고 다른 것은 60진법이었다. 이들은 이를 혼용해 사용했다. 이들은 우주를 그들의 성스러운 숫자인 6으로 60도씩 나누어 360도(6x60=360)로, 1시간을 60분으로, 1분을 60초로 환산했다. 그리고 하루를 24시간으로 환산한 것은 그들이 천문사상 최초로 발견한 “황도 12궁”을 근거로 하여 밤 12지시와 낮 12지시를 셈하여 합 24지시라 생각하고 하루를 24시간으로 정한 것이다. 그리하여 24시간 동안에 일곱 성신들이 제1시부터 차례로 한 시간씩 그 서열(토성, 목성, 화성, 태양, 금성, 수성, 달)에 따라 우주와 제국의 판도를 지배하는 것으로 점성술사는 백성들로 하여금 믿게 하였다. 그리고 그 날의 첫째 시간을 지배하는 별의 신이 그 날의 주신이라 가르치고 그 신의 이름을 따라 그 날의 이름을 지었다. 그리고 그 날의 주인이 되는 성신에게 사제들은 그 칠층탑에 안치된 제단에서 제사를 올렸다. 제1시에는 토성의 신 닌 - 이브 제2시에는 목성의 신 마르두크 제3시에는 화성의 신 네르갈 제4시에는 태양신 샤마쉬 제5시에는 금성의 여신 이슈타르 제6시에는 수성의 신 네보 제7시에는 월신 신이 온 세상을 지배한다고 믿고 숭배하게 했다. 그리고 제8시에는 다시 토성의 신이 제국을 보호했다. 이런 식으로 하루 24시간을 차례로 서열에 따라 배치하면 제24시에는 화성의 신 네르갈에 이르고 그 다음날은 태양신 샤마쉬가 주관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 날의 첫 시간을 주관하고 지배하는 주신의 이름에 따라 그 날의 명칭을 명명하고 그 신을 그날의 주신으로 섬겼다. 하지만 샤마쉬의 날은 일요일, 곧 태양신의 날이라고 하여 성대히 제사를 지냈을 뿐만 아니라 “이날은 길일로 생각하는 반면에 토성의 신 닌 - 이브 신의 날은 토요일로 불길한 날로 생각하였다.” 이런 식으로 해서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의 주일의 명칭이 지어졌다. 그리고 각각 그에 해당하는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이 바빌로니아의 19년 7윤법은 고대 그리스에서 [[메톤 주기]]라 불렀다. BC 433년 고대 그리스의 역법이 실제와 맞지 않아 만월 125 휴일 110을 포함한 295삭망월(=19년)을 도입해 1년을 365.236일로 정하고 이를 올림피아 제전에서 천문학자 메톤이 반포하였기 때문에 붙었다. 바빌로니아에서는 이미 1세기 전부터 사용하던 것으로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가 新 바빌로니아를 멸망시켰을 때 칼데아 첨성학자들이 아나톨리아와 그리스로 망명하면서 전파된 것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춘추전국시대]]에 독자적으로 발견하여 장법이라 불렀다. 이후에도 칼데아 점성술사에 의해 천문학은 계속 발달하였고 “BC 383년 바빌로니아의 천문학자 키데나스는 1삭망월을 29.530594로 1회귀년을 365.276일”로 산출할 만큼 발전하였다. 이러한 바빌로니아의 역법은 알렉산드리아 천문학에 영향을 미쳐 당시 그리스인이 자랑하던 프톨레마이오스라는 천문학의 대가가 여기서 나타난다. 그 후 로마에서는 BC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로마의 망가진 역법을 바로잡고자 알렉산드리아의 소시게네스의 도움으로 1년 12월 365.25일로 개정한 뒤 율리우스력을 반포하고 로마인이 고대부터 사용한 8일 제도를 폐기하고 칠요일로 바꿔 사용한 것이 전 세계로 퍼지게 된다. 평년 12개월, 윤년 13개월로 하였는데 기원전 529년부터 8년 3윤법을 썼다가 기원전 504년 이후에는 27년 10윤법으로 바뀌었고, 기원전 383년부터 19년 7윤법이 되었다. 19년 7윤법에서는 3, 6, 8, 11, 14, 17, 19번째 해에 윤달을 집어넣었다. 이들은 열두 번째 달인 아달에다가 윤달을 집어넣었는데, 윤달을 넣을 때는 윤달을 첫째 아달이라고 해서 아달 알레트라 했고 본래 12월을 둘째 아달이라는 뜻의 아달 베트라고 불렀다. 당시 기록을 보면 이들은 계산 실력은 뛰어났지만, 절대군주의 신정국가다 보니 왕의 뜻에 따라 멀쩡한 달력이 꼬이거나 한 달의 선포가 미루어지거나 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또 이들의 기록을 통해 [[바빌론 유수]]의 시기를 측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천문과 점성술에 능했던 이들은 초고대문명 시절부터 서아시아에 구전되던 천문학을 이어받아 [[황도 12궁]]과 주나라 [[3원 27수]]의 기원이 되는 별자리들을 정하기도 했다. 처음 제정했던 시절에는 [[황소자리]]가 춘분점에 속했다. [[바빌론 유수]] 이후 [[히브리인]]들은 고대 바빌로니아 달력을 그대로 받아들여 현대까지 사용하고 있다. 단 기준이 춘분에서 추분으로 바뀌어 성서시대 달력과 거의 유사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