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태백산맥(조정래) (문단 편집) == 특징 == 1945년 [[8.15 광복]] 후부터 1953년 [[정전 협정(6.25 전쟁)|휴전협정]]으로 끝맺음하기까지,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을 주된 무대로 하여[* 이게 사전 지식이 없이 보면 매우 헷갈리는데, [[벌교읍]] 문서를 봐도 나오겠지만 일제 시대 이전에는 보성과 벌교는 서로 다른 행정구역이었다. 1908년에 일제가 [[낙안군]]과 보성군을 억지로 합치면서 생겨난게 현재의 보성군이며 이 때문에 생활권 자체가 워낙 달라 1955년까지도 보성경찰서와 벌교경찰서로 서로 분리되어 있었다. 1999년에 벌교등기소가 없어진 것을 끝으로 벌교는 보성군과 행정부분에서 동화되는데, 문제는 소설에서는 이런 시대적 배경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이 보성경찰서와 벌교경찰서가 교차하면서 나와 독자들은 매우 혼란스럽다. 한 개인 군인데도 경찰서가 2개씩 있는 것은 요즘와서 보면 말이 안 되기 때문.] 한국 근현대사를 본격적으로 조명한 소설이다. 벌교를 배경으로 한 소설답게 등장인물 대다수가 벌교 출신이며, 대부분의 사건이 벌교서 벌어진다. 원래 설정은 [[여수·순천 10.19 사건|여순사건]]에서 [[5.18 민주화운동]] 혹은 [[제14대 대통령 선거|92년 대선]]까지였지만, 작품을 둘러싼 각종 논란과 법적 소송 및 작가 개인의 체력 문제를 비롯한 수많은 사정으로 인해 한국전쟁 직후 결말을 맺는 것으로 끝났다. 그렇게 사용되지 못한 구상의 일부는 제 3공화국을 주 시대 배경으로 한 [[한강(소설)]]으로 공개되었다. >[[1945년]] 8월부터 [[1953년]] 8월까지와, 그 다음의 세월이 시대적 특성으로 보아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앞의 8년이 '민족자주독립국가 수립 노력의 시대'라면, 그 뒤의 세월은 '민족통일 추진의 시대'인 것이다. 이렇듯 특성이 다른 시대를 한 작품으로 엮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무리였다. ─ 태백산맥 8권, 작가의 말 어쨌거나 대단한 히트를 기록해서 1천 3백만 부 이상이 팔리고[* 이는 조정래 대하시리즈 전부를 합친 판매량이고 태백산맥만으로 따지면 800만부 넘게 팔렸다.] 200쇄 이상 인쇄, '''470만 세트'''가 팔린 20세기 후반 최고의 베스트셀러이다.[* 판매량 1위는 [[이문열]]의 [[이문열 삼국지]]로, 139쇄가 인쇄되었다.][[http://superich.heraldcorp.com/superich/view.php?ud=20130927000356&sec=01-73-01&jeh=179&pos=|출처]] 주인공이 좌익이라는 점[* 염상진이 남로당의 중요 요인으로 나온다고 인식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지역당인 보성군당 간부일 뿐 남로당 전체적으로 보면 미미한 존재다.] 외에 온갖 빨치산 활동이 극히 사실적으로 묘사되는 등 군사정권 당시부터 터부시되던 점들을 집중 조명해 문민정부 시절인 1994년부터 11년간 이념시비 문제로 법적 분쟁까지 간 작품. 용두사미라 하여 까이고 있기도 하다. 이건 개인적 취향에 따른 문제이나, 마무리를 후다닥한 감은 있다. 이는 당초 계획이 좀 더 길었으나(가장 밑의 '하대치' 부분 참조), 결국 작가 개인이 겪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과 창작력의 문제 때문에 '빨치산' 이야기로 소설의 주제가 한정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소설을 통해 말할 수 있는 범위가 한계를 맞이할 수 밖에 없었다. [[1980년대]] 한국 문학에서 가장 인지도 있는 [[대하소설]]로 평해진다. 작가 조정래는 이후 [[아리랑]], [[한강]]도 집필했으나, 최대 히트작품은 태백산맥으로 남았다. 배경이 되는 벌교에 작품 관련 물품들을 전시해 놓은 태백산맥 문학관이 있다. 제목은 태백산맥이지만 정작 [[태백산맥]]은 나오지 않으며 주 배경은 [[지리산]]이다. 작가는 후에 '태백산맥은 민족의 등뼈로, 끊겨진 등뼈를 다시 잇는다는 심정'으로 제목을 지었다고 밝혔다. 참고로 [[이병주]]의 대하 소설 지리산도 동시기의 좌익·빨치산을 다룬 책인데 배경은 경상도 일대의 태백산맥(...)이다. 해방정국의 좌익 계열에 대해 우호적이고 우익 계열에 대해 비판적인 양상을 보이는데, 이로인해 1994년에 우익 단체인 구국민족동맹 등 8개 단체의 고발로 검찰에서 [[국가보안법]]에 의거하여 태백산맥의 이적성 여부 조사를 진행한 적이 있었으나,[* 조정래 본인의 회고로는 이때 우익 단체들이 댄 고발 사유가 무려 '''500여 개'''. 검찰에서 중복되는 것이나 이건 좀 억지다 싶은 것만 빼고 간추려낸 혐의가 '''150여 개'''였고, 이 150여 가지의 혐의에 대해서 조정래에게 '''국가기록물'''(국회 증언록이나 행정 관청의 발간물 등) 아니면 '''국가에서 납본필증을 내준 책'''(즉 정부 기관에서 [[검열]]을 거쳐 출판을 허가한 서적)에 한해서만 근거 자료를 제출하게 했다고 한다. 당연히 혐의 가운데 하나라도 검찰이 납득할 수 있는 근거 자료를 내놓지 못하면 국가보안법 처분이 확정될 판이었다고. 여담인데 검찰이 요구한 자료들을 추려서 담당 검사에게 가지고 가던 날 '''검사실 앞까지 조정래와 동행한''' 유일한 사람이 [[김훈(소설가)|김훈]]이었다고 한다(출처: <황홀한 글감옥>).] 수사 단계에서 난항을 겪으며 장기화되더니 2000년대 들어서 '검찰 역사상 최장기 미제사건'이란 오명을 들었다. 특히 2004년 9월부터 '4대 개혁 입법'이란 이름으로 국가보안법 폐지가 거론되면서 국보법 폐지 시 수사가 불가능할 것이란 이유로 검찰에서 걱정을 했으나, 그해 11월에 재수사를 거쳐 2005년 2월에 [[불기소처분]]을 받고 3월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9&aid=0000431910|무혐의 처분]]을 받는 것으로 사건이 종결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