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태백산맥(조정래) (문단 편집) === 벌교의 진실? === 한편 [[2006년]] [[세명대학교]] 미디어창작학과 대학생 4명이 소설의 진위여부를 검증하는 [[다큐멘터리]]를 찍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원래 지도교수가 던져준 과제에서 시작되었지만, 학생들이 생존자들을 인터뷰할수록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고 한다. 의기투합한 이들은 지난 6㎜ 캠코더 하나만 달랑 챙겨서 다큐멘터리를 찍었다고 한다. [[http://www.thinkpool.com/MiniBbs/ViewPost.do?action=read&hid=greenhill&cid=mini&ctg=0&viewType=1&sn=640315|#]] 저자 조정래 씨는 인터뷰에서 “작가는 진실만을 말해야 하는 존재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허구이지만 역사적 사실들은 모두 진실이며 독자들은 그것을 전부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학생 4명은 발품을 팔아 이를 검증했는데 검증 무대는 소설 1부의 주요 무대가 된 벌교읍과 율어면 등으로 한정했다. 이들이 취재한 생존자 10여 명의 인터뷰에는 소설과는 사뭇 다른 증언이 여럿 담겨 있다. 아래는 이하 다큐멘터리 내용의 일부. ||소설에서 주인공인 염상진 일행이 군경 진압군에 밀려 사흘 만에 벌교를 포기하고 율어면을 점령하는 대목. 빨치산들은 이 지역에서 [[토지개혁]]을 실시하고 율어면을 '해방구'로 선포해 주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는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주민 임태희(83)씨는 1949년 율어면 인근 자모마을에서 빨치산들에 의해 이루어진 참극을 증언한다. "밤중에 젊은 사람들이 총을 메고 와서 주민들 모으라고 소리를 쳐. 그래 가지고 우리 집 마당에다가 남자는 남자, 여자는 여자끼리 줄을 세웠다 이 말이여. 그래 놓고 뒤에서 빵빵 쏴 버려. 그날 열다섯 명이 죽었어. 내 동생은 거기서 즉사했고, 내 처는 다음날 죽었어요."|| ||소설에서 주민들이 친일파 출신 우익들의 횡포를 못 이겨 자발적으로 입산해 빨치산이 된다는 내용도 생존자들의 증언과는 차이가 있다. "(약탈한) 식량을 주민들한테 지게에다 지고 산속까지 져다 달라고 해. 거기까지 가서 다행히 살아 나온 사람도 있고, 거기까지 끌고 가서 좌익들이 죽여버린 사람들도 있고..."(김영돈·85)|| 다큐멘터리에는 영문도 모른채 좌•우익 양쪽에게 번갈아 수난을 당하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에 대한 목격자들의 증언이 이어진다. 조정래는 이에 대해 “마음대로 해석하라, 해석은 독자의 몫”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옹호자들은 "역사전공도 아닌 아마추어 대학생 네명이 찍은 다큐멘터리를 언론에서 띄우고 있다. 화제가 된 게 아니라 화제가 되게 한거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비판론자들은 연구 주체가 역사학자건 아마추어 대학생이건 실제 사건을 겪었던 산 증인들이 버젓이 있고, 그들이 증언을 한 것만은 숨길 수 없음을 지적한다. '''판단은 각자 알아서 할 것'''. 일단 제대로 된 지식을 원한다면 조정래 소설이든 아마추어 UCC든 볼 게 아니라 현대사 연구자들의 서적을 보는 것도 추천한다. 어쨌건 다큐멘터리를 만든 대학생은“생존자들의 증언에는 공통적인 부분이 많았다”며, 일부 주민들은 반란군들의 약탈과 함께 산으로 끌려갔으며 사살당하거나 반란군에 합세하게 되었다고 회상했다. 소설 속에서 많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입산한 것과는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761|#]][[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6/12/09/2006120900024.html|#]]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