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탑건 (문단 편집) == 역사 == [[미사일]]이 개발되면서 '[[미사일 만능주의|알아서 적기를 쫓아가 박살내는 미사일이 있으니 이제 근접전 같은 노가다는 필요없다!]]'라고 생각했던 미군은 [[공군]]이고 해군이고 할 것 없이 [[베트남 전쟁]], 특히 [[롤링썬더 작전]]에서 미사일이 자주 빗나간 데다 접근전 상황이 되자 성능상 명백하게 허접한 북베트남군 소속 [[미그기]]들에게 예상밖의 졸전을 기록하면서 [[한국전쟁]] 당시 12:1이던 교환비[* 세월이 흐른 뒤 양측의 기록을 교차 검증한 결과는 5.8:1 수준이었지만 이것이 밝혀진 건 21세기 들어서다.]가 베트남에서는 3.7:1로 떨어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 항공기가 '발렸다'고 알려져 있으나 교전비를 보면 알겠지만 승률 자체는 여전히 미군이 우세였다. 하지만 당대 최강의 성능을 자랑하는 F-4 팬텀II를 비롯하여 북베트남 측의 미그기보다 월등한 성능을 가진 항공기들을 가지고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는 것이니 미군에게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러한 실망스런 교환비는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합쳐진 결과였는데, 당시 사용된 초기형 공대공 유도 미사일들의 성능이 워낙 참담했던 점, 중거리 유도 미사일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 기체를 육안으로 확인한 뒤 교전하라'는 괴상한 교전지침에 묶여있던 점, 그리고 미사일 만능주의에 빠진 미 공군/해군 항공대에서 전 투조종사의 공중전투기동 훈련을 등한시한 점 등이 대표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미 해군참모총장 토머스 무어러(Thomas Moorer) 제독의 지시를 받아 롤링썬더 작전간 공대공 전투 분석 보고서를 작성한 프랭크 올트(Frank Ault) 대령은 이 가운데 세 번째 요인이 가장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파일럿들에게 근접 공중전투 기술을 전문적으로 가르쳐야겠다고 판단한 미 해군은 1969년 [[캘리포니아]] 주 미라마(Miramar) 해군기지에 Navy Fighter Weapons School이라는 훈련 기관을 조직한다. 그러나 이곳에 배치된 교관조종사들은 교육생들이 열의를 갖고 훈련에 임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에 보다 경쟁지향적인 별칭을 붙이기로 했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탑건(TOPGUN)'''이다. 각 해군 비행대에서 차출돼 이곳에서 연수를 받은 파일럿들은 원대복귀 후 자대의 파일럿들에게 여기서 배운 지식과 경험을 가르치는 조교 역할을 하게 되었고, 그 결과 [[라인배커 작전]] 기간 미 해군의 격추교환비는 크게 개선된다. 교육 내용은 실전적인 공중전 이론을 지상에서 학습하고, 직접 전투기에 탑승해서 좀 전에 배운 이론을 토대로 상황을 재현하여 모의전을 치르고, 다시 지상에서 방금전의 모의전을 통해 얻은 교훈과 실수를 되짚어보며 토론하는 등 이론과 실기 양면으로 종합적인 교육을 실시했다. 또한 비행특성이 다른 적기에 대응하는 요령을 습득시키기 위해 노련한 교관조종사들이 모는 [[가상적기]]를 상대로 한 이기종간 공중전투훈련(Dissimilar Air Combat Training)이 커리큘럼에 포함되어 있었다. [[MiG-17]] 역의 가상적기는 [[A-4 스카이호크]]가 맡았고, 초기에는 [[F-8 크루세이더]]와 [[F-106]] 델타다트가 [[MiG-21]] 역할을 맡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는 [[T-38]]과 [[F-5]]가 그 자리를 이어받게 되었다. 교육생들은 8-9주의 교육기간 동안 200회에 달하는 고강도 공대공 전투 훈련비행을 실시하면서 수료 시점에서는 적기의 기동에 본능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야만 했다. 이후 1996년 [[미합중국 해병대]]의 공중전 훈련부대 및 기타 교육 코스가 여기에 통합되어 [[네바다]] 주 팰런에 있는 Naval Strike and Air Warfare Center(NSAWC)로 개편되면서 미라마 기지의 Navy Fighter Weapons School은 공식적으로는 해산했다. 그러나 탑건 교육과정의 명맥은 타격전투기 전술교관 프로그램(Strike Fighter Tactics Instructor Program, SFTI Program)이란 이름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베트남전 항공전에서 실망스러운 전과를 거둔 것은 [[미 공군]]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그 결론은 미 해군과 전혀 달랐다. 미 공군은 대부분의 공대공 전투 손실이 적기의 접근을 모르는 상태에서 기습받았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판단하고 발전된 지상 및 항공 기반 레이더를 일선에 배치하여 적시에 조기경보를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여기 더해 F-4E에 기관포를 탑재하고 신형 사이드와인더를 개발하는 등 미 공군의 대책은 기본적으로 매우 기술중심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라인배커 작전]]에서 미 공군의 공대공 격추교환비와 손실률은 여전히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미 공군이 내렸던 기술만능주의적 결론이 잘못됐다는 뜻이었다. 성과가 크게 개선된 미 해군항공대와 비교해 볼 때 어느 쪽의 대응이 옳았는지는 더없이 분명했다. 결국 미 공군도 1970년대 초 인적/전술적 요소를 강조하는 미 해군항공대의 접근법을 수용했다. 다만 미 공군은 별도의 신규 교육기관을 만드는 대신 [[한국전쟁]] 이래 전투기 교관조종사 양성을 위해 존재하던 전투기 전술무기학교(Fighter Weapons School)의 공대공 전투 교육 비중을 늘리고 학교 예하 [[어그레서]] 비행대를 창설, 이들과의 강도 높은 이기종간 공중전투훈련(DACT)를 교육과정에 포함시키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곳에서 운영한 전투기 전술무기교관과정(Fighter Weapons Instructor Course) 수료생들은 미 공군 전투기 조종사들 사이에서 미 해군의 탑건 스쿨 수료생과 유사한 높은 위상을 가지고 있다. 여기 더해 1975년부터 도입된 [[레드 플래그]] 같은 실전적인 종합 항공작전 훈련은 조종사들이 기량을 더욱 갈고닦을 수 있도록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