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탐라 (문단 편집) == 명칭 == 명칭에 대해 여러가지 설이 분분하다. 우선, 당시 발음되던 한자의 재구음과 남아있는 한국어 어휘와 비교하는 방식으로 접근해보자면, "耽羅"의 [[중고한어|중고 한어]] 재구음은 "tʌm lɑ"이며, "耽(tʌm)"과 대응되는 한국어 어휘는 '[[두엄]]'(풀, 짚 또는 가축의 배설물 따위를 썩힌 [[거름]])이다. 두엄의 옛말은 "두험"인데, "耽"의 Baxter-Sagart [[상고한어|상고 한어]] 재구음은 "t-qˤəm"으로 서로 음상사한다. 중국의 기록인 《[[수서]]》 <백제전>에는 [[백제]]의 부용국(큰 나라에 딸려 지배를 받는 작은 나라)인 탐모라(耽牟羅)라고 기록되었는데, "牟羅(모라)"는 '마을'을 뜻하는 [[일본어]] "무라(村)"에 대응되는 발음이며, 중국의 기록인 《[[양서(역사책)|양서]]》에는 신라인들이 [[서라벌|왕성]]을 "건모라(健[* '큰']牟羅)"라고 부른다고 기록되어있다. "탐라(耽羅)"는 "탐모라(耽牟羅)"의 축약이다. 즉, 이에 따르면, "탐라(耽羅)"의 의미는 '두엄(거름) 마을', 혹은 '밭(논) 마을'이 된다. 또, 《탐라국 왕세기》에 따르면 [[삼국시대]] [[신라]] [[문무왕]] 때 고을나의 15대손인 [[고후(탐라국)|고후]] 형제가 원래 복속하였던 [[백제]]의 멸망 이후 신라에 탐라국을 대표해 입조할 때 [[전라남도]] [[강진군]]의 옛 지명인 '탐진'의 탐(둥그렇다는 뜻으로 추정된다)과 '라'를 합쳐서 붙여준 것이란 설이 있다. 그러나 신라 [[진흥왕]] 대에 [[황룡사]]를 제작할 당시, 여러 나라들의 이름을 각 층에 올릴 때 백제에 복속되어 있던 탐라국은 이때 이미 '탁라'라는 이름으로 등재되어 있었다. 게다가 탐라국에서 신라에 입조한 문무왕 때보다 훨씬 앞서는 것은 물론, 진흥왕 때보다 앞서는 476년 백제 [[문주왕]] 때 이미 탐라국에서 조공했다는 기사가 [[삼국사기]]에 나온다. 따라서 위의 설화와 달리 탐라라는 국호는 백제나 신라가 붙여준 게 아닌 자생적인 국호로 원래부터 쓰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탐라라는 명칭에서 '라' 부분의 경우 ~라/야[* 이는 같은 말의 방언상의 차이로 추정된다.]는 한반도 남부에서 국호로 자주 쓰인 말이므로 탐라에서도 자생적인 국호에 쓰였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다.[* 비슷한 음가의 '나'는 고구려에서 땅을 가리키는 의미로 쓰였는데 ~라/야 계통의 국호는 땅에서 나라라는 의미로 파생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종합하면 탐진이 먼저인가 탐라가 먼저인가의 선후관계가 꽤 어지러운 편인데 기록을 따져보면 탐라가 자생적인 명칭으로 먼저 발생한 것으로 보이므로 탐라로 건너가는 나루라는 의미에서 탐진이 파생되었다고 보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 한편으로 한치윤(韓致奫)의 《해동역사》에서 동국방음(東國方音)에 '도'(島)를 '섬'[剡]이라 하고, '국'(國)을 '나라'[羅羅]라 하며 '탐, 섭, 담' 이 세 음은 모두 섬과 비슷하다고 풀이한 바 있다. 즉, 이 풀이를 따른다면 '탐라'는 말 그대로 '섬나라'가 되는 셈이다.[* 비슷하게 [[가야]] [[금관국]]이 '소(쇠)나라'라고 불린 바 있다.] ㅅ이 어떻게 ㄷ, ㅌ이 되느냐를 의문을 갖는 경우도 있는데, ㅅ이 ㄷ, ㅌ로 변한 것이 아니라 ㄷ, ㅌ에서 ㅅ로 바뀐 것으로 보는 게 적절하다.[* 어린아이의 혀짧은 소리를 생각하면 된다. 사과->타과. ㄷ, ㅌ에서 혀만 떼면 ㅅ가 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양서]]》 〈백제전〉에 따르면 [[백제어]]로 '읍'(邑)을 '[[담로]]'(擔魯)라고 부르고, 《[[신당서]]》에서 탐라가 '담라'(儋羅)로 쓰여져 있기 때문에 탐라는 '''고을'''을 뜻하는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제주란 건널 '제'(濟) 자를 쓰는데, [[고려]] 무렵에 쓰이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탐라와 제주란 이름은 조선 시대까지는 어느 정도 혼용되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 시대 제주 목사 등이 편찬한 〈탐라순력도〉 등을 보면 지명인 제주도 섬 자체는 탐라, 행정구역인 제주목(현 [[제주시]]) 지방은 제주라 칭하는 형태를 찾을 수 있다. 이외에도 알렉산더 보빈은 [[반도 일본어설]]을 주장하면서 탐라가 '타미'(民 - 백성)+'무라'(村 - 마을), 혹은 '타'(田 - 밭)+'무라'(村 - 마을)랑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반도 일본어설은 나름대로 근거가 있는 가설로 평가받으며 제주어 이전에 존재했을 수도 있다고 추정되는 [[주호국]]의 토착어인 탐라어와도 관련이 있었다고 보기도 있지만 탐라라는 명칭의 유래가 되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반론이 많은 편이다. 게다가 고대 일본에서는 '토라'(度羅, トラ)라는 명칭으로도 불려졌다는 상반되는 증거도 있다. 일본의 전통 궁중 음악 [[가가쿠]](아악)의 탐라 음악도 이를 따라 '토라가쿠'(度羅楽)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