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탄창 (문단 편집) === 분리형 탄창의 등장 === 최초의 분리형 탄창을 도입한 소총은 [[리-엔필드]]의 전신인 [[https://en.wikipedia.org/wiki/Lee%E2%80%93Metford|리-메트포드 소총]]으로, 1888년에 제작되었다. 기본 설계자인 제임스 페리스 리는 분리형 대용량 탄창을 도입함으로써 재장전 속도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많은 탄약을 특유의 빠른 발사속도로 퍼부을 수 있는 총을 만들고자 하였다. 문제는 당시 가공기술의 한계로 탄창의 생산비용은 비싸서 병사들이 여러 개 가지고 다니면서 소모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1차대전 이후에도 여전히 탄 클립이 대세가 되었으며, 당사자인 리-메트포드 또한 SMLE로 개조되며 클립 장전구조가 추가되었고 탄창이 분리 가능함에도 정비할 때나 뽑아서 청소하는 정도로나 쓰였다.[* 하지만 이 덕에 저격용인 L42A1으로 전환된 후, 1985년에 L96A1([[Arctic Warfare|PM]]의 영국 제식명)으로 대체되기 전까지 다른 볼트 액션 소총보다 더 오랫동안 쓰였는데, 분리가 간단하지 않은 내부 탄창을 적용한 소총은 스코프가 클립과 간섭하기 때문에 한 발씩 넣어야 했고, [[M1 개런드]]처럼 클립 째로 탄창에 넣어야 할 경우 스코프를 측면에 달아야 해서 조준에 불편함이 있었으나, L42A1은 탄창이 분리형이기 때문에 재장전이 편리했다.] 기관총으로 가면 이야기가 달라지는데, 현대 기관총의 효시인 [[개틀링 기관총|개틀링]]의 경우 당연히 연발 화기라 일일이 장전하는 게 불가능했고 처음 도입된 19세기 중반부터 이미 분리형 탄창이 달려 있었다. 별다른 것 없이 단순히 탄약을 재어 놓은 통으로서 중력에 의해 그냥 탄이 떨어져서 급탄되는 방식이라서 신뢰성에는 문제가 있었다. 이후 [[맥심 기관총]]을 발명한 맥심에 의해 개발된 탄띠는 획기적인 물건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건 아니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한 여러 시도가 있었고, 그 중 [[호치키스 기관총]]으로 대표되는 [[보탄판]]과 [[마드센 경기관총]]으로 대표되는 분리형 탄창이 성공적이었다.[* 맥심 기관총 탄띠의 특허 때문에 보탄판이 개발되었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졌지만, 사실과 다르다. 자세한 내용은 [[보탄판]] 문서 참조.] 실질적으로 리-메트포드와는 관계가 없었다. 또한 많은 경량 기관총[* 당시에는 경기관총 개념이 없었고 그냥 경량 기관총이라 불렀다.]이 분리형 탄창을 채택해 사용했는데, 연발총의 많은 장탄량을 클립으로 감당하기는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때 채택한 탄창의 형태가 각기 달랐는데, 이 덕에 특허 면에서는 딱히 별 문제가 없었다. 한편 1차대전 중반에 개발된 [[기관단총]]에도 분리형 탄창이 적용되어 대세가 되었다. 또한 분리형 탄창은 전혀 다른 곳에서 대세가 되었는데, 바로 [[자동권총]]이었다. 리볼버를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동권총은 기존의 리볼버식 탄창이나 내장식 탄창을 사용하기에는 너무 불편했다. 이때 [[보르하르트 C93]]이 최초로 분리형 탄창을 도입하였고, [[루거 P08]]로 개조되면서 비로소 대세가 되었으며, 미국의 총기 개발의 천재 [[존 브라우닝]] 또한 탈착식 탄창을 장착한 콜트 M1900[* 콜트 M1911의 오리지널로 이 설계가 발전하면서 여러 FN과 콜트의 브라우닝 계열 권총이 만들어진다.]를 제작하여 그 설계를 발전시킨다. 여전히 [[슈타이어 M1912]]와 같은 내장식 탄창을 사용하는 권총도 개발되었지만, 편의성 차이가 워낙에 컸기에 결국 분리형 탄창이 대세가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