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타타르 (문단 편집) === 광의의 타타르 === 엄밀히 말해 [[서양]]([[서유럽]]/ [[동유럽]]과 [[러시아]]. 특히 접촉이 잦았던 [[러시아인]]들)이 말하는 "타타르"는 [[중앙아시아]]의 [[몽골]]계와 [[튀르크]]계 유목민족을 모두 통칭하는 말이다. "몽골리아"라는 말이 정착되기 전까지 "타르타리"라고 불렀을 정도다. '''서유럽 및 동유럽에서 '타타르'란 단어를 본다면 그냥 [[몽골]]계와 [[튀르크]]계가 혼합된 [[중앙아시아]]의 유목민들 전부를 일컫는 것이 된다'''. 따라서 근대 이전 서유럽 문헌의 '타타르'란 그냥 '중앙아시아 여러 유목민족들'을 통칭하는 말이었지, 엄밀한 의미에서 '타타르 부족'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었다. [[튀르키예]]의 타타르인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지내다가 [[크림 칸국]]의 멸망으로 쫓겨난 이들이 망명한 것이다. 이들이 바로 '''크림 타타르인'''으로 원래는 [[크림 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이다. 비슷하게 다른 [[튀르크]]계 부족들도 [[훌레구 칸]]의 [[바그다드]] 원정 때 선봉대로 끌려온 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에 눌러 앉아 '''[[하자라인]]'''이 되었다. [[몽골 제국]]의 유럽 진출 이후 [[킵차크 칸국]]이 내부적으로 붕괴하면서 [[카잔 칸국]], [[크림 칸국]], [[아스트라한 칸국]], [[노가이 칸국]] 등의 여러 [[튀르크]]화된 유목 국가로 나누어져 서로 반목하다가 결국 하나 둘씩 [[러시아 제국]]이나 [[오스만 제국]]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었는데, [[유럽]], 특히 이들과 본격적으로 역사적 접점이 많았던 [[러시아]]에서 이런 [[이슬람]]을 믿는 [[몽골]]-[[튀르크]]계 유목민들을 모두 뭉뚱그려 '타타르'라 불렀기 때문에 이 단어가 널리 퍼졌다. 러시아가 몽골의 지배를 받았던 기간(1230년대~1480년을 일컬어 소위 '''[[몽골-타타르의 멍에]]'''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확히는 [[바투]]의 러시아 원정부터 1480년 [[모스크바]] 대공 이반 3세와 킵차크 칸국의 칸 아흐마드가 맞붙어 승패없이 끝나버린 우그라 강 전투까지. 1220년대에 칭기즈 칸의 부장 베수드 제베 노얀이 지휘했던 일시적인 러시아 스텝 지역 원정기간은 제외한다. 따라서 유럽에서는 대충 [[흑해]]에서 현 러시아령 [[연해주]]까지 펼쳐진 광활한 스텝 평원 전체를 그냥 뭉뚱그려 '타타르족의 땅'이란 뜻인 '''타타리아''', 영어로는 '''타타리'''(Tartaria, Tartary)라고 불렀고, 유럽에서 나온 역사적 지도를 보면 [[청나라]] 치하 동투르키스탄을 두고 '''중국령 타타리''', 만주를 두고 '''극동 타타리''', [[크림 칸국]]이 한창 주름잡았던 우크라이나 남부 지방은 '''소(작은) 타타리''', 러시아령 시베리아는 '''러시아령 타타리'''라고 표시되어 있다. 16세기~17세기 [[루스 차르국]]에서 나온 문서를 보면 '''불구대천의 원수'''인 [[카잔 칸국]]과 [[크림 반도]]의 무슬림 타타르들에게 대항하여 동시대 한창 청나라에게 밀려나 서쪽으로 도망치던 [[오이라트]]계 토르구트 부족, 즉 러시아 현지에서는 [[칼미크인]]이라고 불리는 불교 타타르들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식의 표현이 많다. 그리고 [[청나라]]는 [[튀르크]]나 [[몽골]]과 근연 관계에 있는 같은 [[알타이 제어]] 계통인 [[퉁구스]]인, 즉 [[만주족]]이 세웠고, [[내몽골]]의 [[차하르]] [[몽골인]]들도 여기 동조해 가담했다. 일반적으로 [[만주]] 및 [[몽골]]은 '''[[불교]] 타타르''', [[티무르 제국]]이나 [[킵차크 칸국]], [[오스만 제국]] 등 [[튀르크]]계는 '''[[이슬람]] 타타르'''로 서로 구분했으며, [[만주족]] 내지 [[여진족]]의 근원지 중 하나인 [[연해주]]와 [[사할린]]의 사이 바다는 '''타타르 해협'''으로 불렀다. 심지어 [[인도]]의 [[몽골]]계 국가로 [[티무르]]의 후예들인 [[무굴 제국]](구르카니)의 경우 '''인도 타타르'''라고 불렀다. 이러한 인식은 19세기까지 이어졌다. 심지어 [[중국]] 역시 [[청나라]] 정부를 놓고 '[[중국]]은 현재 타타르족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묘사했을 정도였다. [[하멜 표류기]]에서 [[얀 야너스 벨테브레]]와 [[헨드릭 하멜]]은 청을 일관적으로 타타르로 칭한다. 사실 근대적 의미에서 언어, 문화, 역사적 경험과 집단적 기억 등에 기반한 체계적인 [[인류학]]적 구분과 이를 뒷받침할만한 국제적 대학 체계와 학계라는 게 생기기 전에 이러한 문화적 교류와 각종 집단간의 상호 이해 과정은 주로 정치적, 경제적 이익과 직결된 지극히 현실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졌으니 저렇게 눈으로 딱 보이고 대충 보면 비슷무리해 보이는 생활 습관과 종교적 차이로 민족간 구분을 지었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러한 편견과 고정관념의 형태는 어떻게 보면 현대에도 어느 정도는 잔재가 남아 있는 편이다. ~~미국에서 다른 나라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떠올리면 이해가 빠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약간의 '[[오해]]'도 큰 역할을 했다. 바로 공교롭게도 '''[[그리스 신화]]에서 지하세계를 뜻하는 '[[타르타로스]]'가 '타타르'와 매우 발음이 비슷했던 것이다.''' '타르타로스'라는 것이 널리 알려져 있다보니, '몽골족'보다는 '타타르'라는 명칭이 더욱 깊이 와닿게 되었고, 그 때문에 중세 시기부터 서유럽에서는 [[몽골인]]이나 [[튀르크]]인이 '''"[[카프카스]] 산맥 지하의 타르타로스(Tartaros)에서 인류를 멸망시키기 위해서 기어나왔다."'''는 황당한 전설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타르타로스'에서 나왔으니까 '타타르'라는 이름을 그럴듯하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실제로 [[튀르크]]는 [[훈족]] 시절부터 [[유럽]]을 공격했고, 악몽 같은 기세로 진격하던 [[칭기즈 칸]]의 손자 바투의 [[킵차크 칸국]] 군대도 [[튀르크]] 기병들이 주축이었으며 [[오스만 제국]]은 말이 필요없는 "유럽의 악몽" 이었으므로 이런 전설이 통했다. 그리고 서방의 [[튀르크]]인은 [[서돌궐]]에서 유래했는데 그 서돌궐이 차지한 영역이 바로 [[캅카스]]와 [[카스피 해]], [[우즈베키스탄]] 부근이었다. 이런 유럽인의 민간 전설에서 타타르에 대한 인식은 딱 '''[[모르도르]]에서 몰려나오는 [[오크]] 내지는 [[우르크하이]]'''다. 현재도 러시아에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나오는 '때거지, 군중, 군락' 등을 의미하는 '[[호드]]'의 러시아 단어인 'Орда'(오르다)란 단어를 아무런 접두사 없이 쓰면 역사 속의 [[킵차크 칸국]]을 의미할 정도로 이때의 충격이 깊게 각인되었다. 애당초 '호드'(Horde)라는 단어 자체가 영어에서 보통 킵차크 칸국을 의미하는 [[황금씨족|Golden Horde]]에서 유래한 단어다. 이 만큼 '[[몽골-타타르의 멍에]]'의 시기가 러시아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그래서 이후 러시아의 지배자들은 온전히 살아 남아 끊임없이 수많은 [[슬라브]]인들을 억압, 수탈하고 러시아를 지속적으로 괴롭히던 [[칭기즈 칸]]과 [[주치(몽골 제국)|주치]]의 후예들인 [[카자흐]], [[키르기즈]], [[우즈벡]], 그리고 더 나아가 [[티무르 제국]] 및 [[오스만 제국]] 의 각종 [[튀르크]]계 부족들을 적대하면서도 내부적으로 복속된 타타르족 앞에서는 [[칭기즈 칸]]의 후예를 자처하며 '''하얀 대칸''' (белый хан)으로서의 권위를 내세웠다. 러시아가 [[우랄 산맥]]을 넘어서 [[중앙아시아]]의 대평원을 물리적으로 평정하고, 직접적인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건 일러도 19세기 중엽이었고, [[오스만 제국]]에 대한 공세적 우위도 같은 세기 초에야 본격적인 기술력, 행정력의 차이로 굳혀졌다. 애초에 무전도, 기관총도, 철조망도 없었던 시절에 유목민 습격 하나 하나 다 파악하고 막을 수 있을 만큼의 국경 통제란 불가능했고, 지역도 그 거대한 러시아인 만큼 동유럽의 [[슬라브]] 중심 제국들에게 튀르크계 유목민족들의 노예 사냥은 비교적 근대까지 실존했던 큰 위협이었다. 민담 설화 같은 자료들을 보면 [[벨라루스]], [[러시아]], [[우크라이나]] 측에서 타타르의 습격은 딱 한국에서의 '''말 안 들으면 호랑이가 물어간다''' 정도의 존재감을 풍긴다. 물론 유일하게 살아남은 킵차크계 국가인 [[크림 칸국]]은 같은 튀르크계에 [[이슬람 국가]]인 [[오스만 제국]]에 알아서 복속되어 영주국이 되었다. 이후 카잔이나 아스트라한 등 다른 타타르와 이 크림 타타르는 여러모로 달라져서 카잔, 아스트라한, 시베리아 타타르는 러시아 영향을 짙게 받았지만, 크림 칸국은 튀르크인의 몽골적인 유목민 전통을 잘 보존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