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타이토 (문단 편집) === 초창기 === 창업주는 [[소련]]내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오데사]] 출신 유대계 [[우크라이나]]인(일본으로 건너온 이유는 [[복어계획]] 문서 참조) 사업가 미하엘 코건(1920~1984).[* 아들 에이브러햄 '아바' 코건은 70년대에 세워졌었던 타이토 브라질 지사(Taito do Brasil, 1972~1985)의 수장이었으며, 딸 리타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SFX 담당인 [[https://ko.wikipedia.org/wiki/%EB%A6%AC%EC%B2%98%EB%93%9C_%EC%97%90%EB%93%9C%EB%9F%B0%EB%93%9C|리처드 에드런드]]와 결혼하였다.] 1950년에 직접 세운 개인영업의 수입회사인 타이토양행(太東洋行)이 전신이며, 1953년에 주식회사 타이토무역(株式会社太東貿易)이란 회사를 다시 창업했다.[* 참고로 사명의 한자표기인 太東는 극'''동'''(極'''東''')의 유'''태'''인(猶'''太'''人) 회사를 뜻한다는 설이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본래 무역업을 하던 타이토에서는[* 일본에서 가장 처음으로 [[보드카]]를 양조, 판매하였으며, 메인상품인 보드카는 [[http://hamarepo.com/writer/story/images/images/chiku/2774/003.jpg|'트로이카']]라는 이름으로 각지 유명호텔에 팔렸다. 창업주가 동구권 출신 인물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56년에 순수 일본산 [[http://hamarepo.com/writer/story/images/images/chiku/2774/004.jpg|주크박스 1호기]]를, 1964년에는 [[1964 도쿄 올림픽]]에 맞춰서 오늘날의 [[파칭코|파치슬롯]]의 원형인 '올림피아 게임'을, 다음해 1965년에 최초의 [[인형뽑기]] [[https://pimg.togetter.com/cfcc6d0c03173b9fe35c214044e4bb57a131867f/687474703a2f2f747769747069632e636f6d2f73686f772f6c617267652f313933646f31|'클레인602']][* 사진은 1966년에 출시된 클레인603.] 등을 지속적으로 만들면서 유명해졌다. 1972년에 상표를 지금의 사명인 株式会社タイトー(주식회사 타이토)로 변경하였고, 다음해 1973년에 아타리의 PONG을 카피한 게임이자 최초의 일본산 게임 [[http://img17.imageshack.us/img17/875/elepong.jpg|'ELEPONG'(エレポン)]][* ELECTRONIC(전자)과 PING PONG(탁구)의 단어를 합친 준말.]을 해외에 출시하였다([[http://flyers.arcade-museum.com/flyers_video/taito/28016501.jpg|소개표지 앞면]] [[http://flyers.arcade-museum.com/flyers_video/taito/28145102.jpg|뒷면]]). 일본 내수판 제목은 심플하게 '축구'(Soccer). 1974년 11월에는 일본 최초의 레이싱 게임이자, 최초의 종스크롤 탑뷰 레이싱 게임인 스피드 레이스를 내놓았는데, 일본에서 종전의 아케이드 게임이 한판당 50엔 이었으나 스피드 레이스는 하드웨어의 복잡함으로 인하여 한판당 100엔으로 가격을 책정했음에도 상당한 인기를 끌게 되면서 수십년간 일본의 아케이드 게임이 한판당 100엔으로 책정되는 시발점이 되었으며, 스페이더 인베이더 등장 이전까지 일본서 가장 인기있는 아케이드 게임으로 자리잡았다. 1977년, 아타리의 브레이크 아웃(BREAKOUT)을 라이센스 받은 타이토에서는 독자적으로 개량하여 '[[벽돌깨기]]'(ブロックくずし)라는 제목으로 테이블식 캐비닛을 통해서 전국의 찻집에 널리 퍼트렸다.[* 당시는 [[오락실]] 업종이 자리잡기 이전이라 퐁을 비롯한 1970년대 아케이드가 주로 입하되는곳은 술집, 식당, 찻집, 카페등이었다. 벽돌깨기 게임은 이후 아이템 시스템과 SF적 감성을 더해 [[알카노이드]]로 발전했다.] 이 방식은 스페이스 인베이더로 이어졌는데, [[스페이스 인베이더]](1978)가 대박을 터트리면서 어마어마한 이득을 거머쥐게 되며 게임회사로 완전히 변모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만들어진 퍼시픽공업 주식회사는 본사에서 1963년 [[카나가와현]] [[요코하마]] 츠나시마(綱島) 시(市)에 설립한 개발부문의 자회사.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개발자, 니시카도 토모히로(당시 직책은 엔지니어)도 이곳의 소속으로 여러 전자(電子)기계 게임을 제작하였다. 이후 '中央硏究所(추오연구소/중앙연구소)'[* 고유명사라기 보다는 제1연구소 같은 의미로 '중앙'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로 명칭을 변경하였으며, 1995년 3월에 쿠마가야 연구소[* [[사이타마]] 현 쿠마가야 시(市)에 위치를 둔 부서로, 1980년대 말 '中央硏究所 能谷分室(츄오 연구소 쿠마가야 분실)'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부서가 있던 'タイトー熊谷ビル(타이토 쿠마가야 빌딩)'은 어뮤즈먼트 기기의 수리를 담당하는 필드서비스의 거점으로 남아있다.]와 오사카연구소를 흡수하였다. 이후 2001년에 요코하마에 있는 '海老名開発センター(에비나 개발센터)'에 기능이 이전되었다([[https://pbs.twimg.com/media/BzjhluHCMAArnTx.png|에비나 개발센터 전경]]). 이후, 에비나 개발센터도 2014년에 다른센터와 통합되면서 건물은 매각되어 폐쇄, 2015년에 전부 철거되었다. 이외에도 1972년부터 1985년까지, 브라질에 해외 지사를 세워서 1970년대 브라질의 아케이드 산업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http://gamelog.kr/698|참고 자료]] [[http://augustocampos.net/taito-brasil/|타이토 브라질 지사의 역사(포르투갈 語)]]). 1973년, 미국 일리노이주 엘크 크로브 빌리지에 타이토 미국 지사 (Taito America Corpation) 를 설립하여, 1996년까지 존속시켰다. 미국 지사는 타이토 본사의 게임 뿐만이 아니라, 해외 마케팅 능력이 부족했던 일본 게임회사들인 [[UPL(회사)|UPL]], [[카네코]], [[테크노스 재팬]], [[토아플랜]], [[유니버설 엔터테인먼트]] 등의 작품을 배급/보급시켰고, 자체적으로 게임을 제작하여 미국 뿐만 아니라 역으로 일본에 배급/보급 시키기도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