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크로마토그래피 (문단 편집) == 역사 == 크로마토그래피의 발명 이전 1850년대에 스위스의 Schönbein이 용액 속에서 부분적으로 물질을 분리하기 위해서 거름종이를 사용했는데, 용액이 거름종이를 타고 올라가면서 물질이 모두 같은 높이에 도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고 모세관 분석을 창안했다. 이후 1861년에 Schönbein의 제자인 Goppelsröder이 이를 발전시켜 종이를 타고 올라가는 용액의 높이와 화학 성분 사이에 관계가 있음을 발견하고, 특정 시약의 선택으로 염료 혼합물의 성분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탈리아 태생의 러시아 식물 생화학자 미하일 츠베트(Michael S. Tswett)[* 공교롭게도 미하일의 성인 츠베트(Цвет)는 러시아어로 '색'이라는 뜻이다.]가 1906년 잘게 빻은 탄산칼슘을 빽빽하게 채운 유리관에 [[엽록소]]를 석유 에테르에 녹여 통과시키자 탄산칼슘 층에서 [[엽록소|클로로필-a, 클로로필-b]], [[루테인]] 등의 물질이 분리되어 빨강, 주황, 노랑, 녹색 등의 색소 띠로 나타난 것을 발견[* 크로마토그래피에 의해 엽록소의 각 색소가 이동하는 속도는 카로틴 〉 크산토필 〉 엽록소 a 〉 엽록소 b의 순으로 빠르다. 이렇게 분리된 각 색소의 색깔은 카로틴-황적색, 크산토필-노란색, 엽록소 a-황록색, 엽록소 b-청록색이다.]하고 이 실험법을 크로마토그래피, 색이 나타난 층을 크로마토그램이라 명명하고 여러 논문을 통해 발표했다. 츠베트의 발명 이후로 잘 사용되지 않던 크로마토그래피는, 1931년 R. Kuhn 등이 이 방법을 사용해 카로티노이드의 분리에 성공한 이래 급속히 발전해 생물학에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1941년 아쳐 존 포터 마틴(Archer John Porter Martin)과 리처드 로렌스 밀링턴 싱(Richard Laurence Millington Synge)은 함수 실리카 겔을 채운 관에 [[아미노산]]의 혼합 용액을 흘리고, 이후 [[클로로포름]]을 흘리면 아미노산이 분리되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을 분배 크로마토그래피라 이름붙이고, 1940년대에 크로마토그래피 분리법의 이론체계를 확립하게 되어 이 공로로 1952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1944년에는 실리카 겔 대신 거름종이를 사용한 종이 분배 크로마토그래피를 창안했다. 이후로도 둘의 이론을 바탕으로 다양한 종류의 크로마토그래피가 개발되었다. 이 크로마토그래피를 이용한 연구로 많은 과학자들이 노벨상을 받았다. 단적인 예로 1937년부터 1972년 사이에 수여된 노벨상 중 12개가 크로마토그래피와 관련된 것이었을 정도. 1960년대까지 탄산 칼슘, 종이 그리고 실리카, 알루미나[* 이외에도 카올린, 활성탄 등이 고정상으로 쓰인다.] 등의 극성 작용기를 지닌 고체 입자를 고정상으로 주로 사용했다. 그러다가 고정상에 다양한 종류의 작용기를 화학적으로 결합시킨 결합형 정지상이 개발되고, 고정상으로 채운 칼럼에 액체를 밀어넣을 수 있는 고압력 펌프가 개발되면서, 1970년대부터 고성능 액체 크로마토그래피(HPLC)가 널리 사용되게 되어 다양한 유기 물질을 분리할 수 있게 되었다. 역상(reversed phase) HPLC 방법은 분리 효율도 높지만, 물을 이동상으로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친환경적이라는 장점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