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쿠웨이트/역사 (문단 편집) === 독립으로의 길 === 이렇게 쿠웨이트는 오스만 제국의 [[자치령]]이 되었는데 19세기 후반 오스만 제국이 행정구역을 현대적으로 정비하면서 행정구획을 에얄레트(eyalet)에서 빌라예트(vilayet)로 바꾸면서 쿠웨이트도 바스라 빌라예트에 속하게 된다. 빌라예트에 대해 자세한 내용은 [[오스만 제국]] 문서 참고.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ubarak_Al-Sabah_of_Kuwait.jpg|width=300]] (독립한 쿠웨이트의 초대 국왕 무바라크 알사바) 그런데 비록 [[속령]]이었지만 자기네들끼리 살아온 쿠웨이트인들이 바스라령에 속하게 되니 당연히 불만이 없을리 없었는데, 이 때 등장한 것이 오늘날 쿠웨이트인들로부터 [[대왕]]이자 [[국부]]로 추앙받는 무바라크 알사바(الشيخ مبارك بن صباح الصباح)였다. 무바라크는 쿠웨이트의 유력 부족인 사바 가문 출신으로 통치자가 되기 전에는 오스만 제국의 [[기병]]장교로 공도 세워 작위도 받고 훈장도 받았다. 그러다가 1896년 계승 과정에서 이복형을 죽이고 쿠웨이트의 통치자가 된다. 무바라크는 1899년 이란에 주재하던 [[영국]] 대령에게 찾아가 영국의 보호령이 될 테니 독립을 보장해 달라고 했다.[* 지금은 석유로 먹고 사는걸로 유명하지만 쿠웨이트인들은 원래 유목민족이라 쿠웨이트에 정착하기 전부터 동서 교역로를 잇는 상업의 전통이 있어서, 18세기부터 이미 아라비아 반도의 상업 중심지가 되었다. 특히 영국의 [[영국 동인도 회사|동인도 회사]]와도 거래를 많이해 동인도회사의 인도-동아프리카-쿠웨이트의 삼각 무역거점이 되었다. 물론, 사막인 쿠웨이트에 뭐 털어먹을게 없었는지라 동인도회사도 나쁜짓 안하고 순수하게 교역만했다. 이렇게 쿠웨이트인에게 영국은 아주 먼나라는 아니었기 때문에 찾아갔을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영국 정부의 승인 없이 외국의 대표자를 받아들이거나 영토를 매도하지 않겠다고 했다. 영국은 원래 쿠웨이트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쿠웨이트에서 석유가 발견된건 1937년의 일이다.] 제 발로 보호령이 되겠다는데,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는지라 콜. 이 협정은 원래 비밀 협정이었으나 쿠웨이트에서 영국의 영향력이 높아지자 오스만 제국에서도 이 사실을 알아차렸고 괘씸해 했지만, 20세기 초의 오스만 제국에는 골치아픈 문제거리가 한 두가지가 아니라 그깟 변방의 조그만 속령 따위에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1913년 오스만 제국 - 영국 - 무바라크 3자간에 회담이 이루어졌는데 무바라크를 오스만 제국의 총독(kaymakam)으로 인정하고 쿠웨이트를 명목상으로는 오스만 제국의 영토로 보나 실질적으로 독립적인 지역으로 인정해주고 1899년 협정도 인정해주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협정으로 오스만 제국과 쿠웨이트의 영역이 획정되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이라크-쿠웨이트간의 국경이 된다.[* 단 이 때 정해진 국경선이 정식으로 쿠웨이트의 영역으로 획정되는 것은 1923년이며, 최종적으로 확정되는것은 독립한 이라크가 [[국제연맹]]에 가입하면서 이 국경선을 기준으로 이라크의 영토를 책정한 1932년이다.] 1914년 [[오스만 제국]]이 [[독일]]의 동맹국으로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게 되자, 영국은 아랍인들에게 "오스만 제국과 싸워라! 그럼 독립시켜줄께."하고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는 아랍인들의 반란을 유도했다. 무바라크도 여기에 적극 참여해 먼저 쿠웨이트의 국기부터 갈아치우고는[* 이때까지 쿠웨이트의 국기에는 커다랗게 [[튀르키예]] 상징이 있고 옆에 아랍어로 조그많게 쿠웨이트라 적혀있었는데, 1915년부터 튀르키예 상징을 지우고 아랍어로 크게 쿠웨이트라고만 써놨다. 이걸 계속 쓰다가 너무 밋밋했던 모양인지 1961년 완전 독립하면서 지금의 국기로 바꾼다.] 영국의 [[바스라]] 점령을 돕는다. 이 공로로 영국으로부터 '영국 보호하의 독립국'(Independent government under British protection)으로 인정받게 된다. 이게 중요한건 쿠웨이트는 영국의 우호국 대접을 받아서 영국 보호령이면서도 간섭을 거의 받지 않고 오히려 무기등을 지원 받는다. 영국이 전쟁때 이라크의 독립을 약속했으면서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질질끌다가 1932년 독립시켜주고 나서도, 이것저것 간섭하다 이라크인들의 반감이 높아져서 2차 세계대전 때 이라크가 [[추축국]]으로 참전한 것과 비교된다. [[파일:이라크 쿠웨이트.jpg|width=700]] 1932년 국경이 확정되기 이전의 쿠웨이트. 현재 면적의 3배로 걸프에서 나름 소국 신세는 아니었다. 1920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당시 네지드 토후국)가 쿠웨이트의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한 차례 전쟁을 치른 바 있다. 이 때문에 지금도 쿠웨이트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를 경계한다. 원래 사우디아라비아[* 이 때는 아직 네지드 토후국이었다. 1921년 네지드 술탄국이 되었고, 1925년에 네지드-헤자즈 왕국이 되었다가 1932년 최종적으로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이 된다. 1915년 다린조약에 의해 사우드 가문은 영국의 보호를 받고 영토를 확정했다. 그대신 영국보호령을 침범하지 않고 오스만 제국을 상대로 영국과 동맹을 맺기로 했다.]도 쿠웨이트도 영국의 보호령이었으니 처음에는 영국도 중립을 지켰다. 하지만 쿠웨이트가 사우디아라비아의 공격을 받는 입장이었으니 직접 영국군을 보내는 대신 많은 무기를 쿠웨이트에 지원했다. 덕분에 사우디아라비아의 군사력보다 크게 열세인 쿠웨이트가 대등히 싸울 수 있었고, 나중에는 영국이 전투기와 군함 세 척까지 보내자 결국 사우디아라비아도 공격을 중단했다. 이후 소강상태가 지속되다가 1922년 영국의 중재로 전쟁이 종결된다. 참고로 당시 네지드 토후국의 수장인 압둘 아지즈는 쿠웨이트와의 분쟁이 끝난 뒤에도 적극적으로 영토확장을 하려고 1924년 [[트란스요르단]](현 [[요르단]] 왕국)[* 이 때 아랍은 오스만 제국이 1차세계대전의 패배로 물러나고 영국 위임통치령 메소포타미아로 불리던 시절이라 요르단도 영국이 관할하는 지역이었다.]을 침공했다가 마침내 열받은 영국이 공군을 투입해 압둘 아지즈의 기병대가 박살났고 이후는 영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