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쿠데타/사례 (문단 편집) === 아프리카 ===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냐]], [[나미비아]], [[지부티]], [[탄자니아]], [[말라위]], [[앙골라]], [[모잠비크]], [[세네갈]], [[보츠와나]], [[잠비아]], [[모로코]]처럼 쿠데타가 없었던 [[국가]]들도 있긴 하다.[* 다만 상술한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은 국가들이라고 평화로웠거나 처음부터 민주주의가 정착되었던 것은 절대 아니다. [[앙골라]]와 [[모잠비크]]는 사회주의 [[일당제]]를 실시해 이에 반발하는 세력의 내전을 겪었고, [[세네갈]], [[잠비아]], [[케냐]], [[탄자니아]], [[말라위]] 등의 국가들도 일인 독재 또는 [[일당제]]를 시행했으며 이들이 군부를 통제하는 능력이 강했기에 쿠데타가 성공하지 않았거나 쿠데타 시도를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보츠와나]]는 [[보츠와나 민주당]]의 [[일당 우위 정당제]]하에 초대 대통령 세레체 카마와 2대 대통령 퀘트 마시레가 장기집권하였으나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에 비하면 평화로웠고 민주적이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아파르트헤이트]]시절 [[국민당(남아프리카 공화국)|국민당]]의 사실상 [[일당제]] 시절이었고 [[지부티]]는 여전히 세습 독재국가이다. 다만 상술한 국가들은 [[지부티]]를 제외하면 현재 민주주의가 나름 안정적으로 정착된 편이다.] 하지만 그 외에는 대부분 쿠데타가 매일같이 일어났다. 그리고 일어나는 국가들에서는 허구한날 일어나서 [[내전]]까지 벌인다는 특징도 있다. 1957년 [[가나]]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독립한 이래 70번이 넘는 쿠데타가 성공했고 그것을 넘어서는 숫자들의 쿠데타 실패 사례가 있었다. 아프리카의 수많은 국가들에서 군부 쿠데타가 발생했던 원인들을 분석하자면, (일반화시키기는 어렵지만) 식민지 이전 아프리카의 국가와 사회는 군과 군사주의 정신을 중요하게 여겼다. 서유럽에서 군부는 시간이 지나면서 비정치적이고 전문적인 집단으로 변했고 [[문민통제]]가 확립되면서 자연스럽게 정치 결정 과정에서 군부의 역할이 축소되었으나 식민지 이전의 아프리카 사회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북아프리카]]를 막론하고 대게 군사와 정치를 결합하고 있었고 둘의 구분이 불가능했으며 대부분의 정치 지도자들이 군인들이었다. 성공적인 통치자가 되기 위해서는 몸소 전투에 나가서 훌륭하게 지휘를 해야 했고, 무훈담을 널리 퍼뜨리는 등의 행위가 지도자의 정통성을 유지시키는 기반이 됐다. 또한 대부분의 아프리카 사회가 [[정규군]] 또는 [[상비군]]의 개념이 없었다. 군인들은 대다수가 시간제 민병대원들이었으며 특정 지도자와 씨족의 족장, 유복한 특정인을 따른다는 측면에서만 보면, 공공의 목적을 위해서 싸우는 정규군이라기보다는 사병에 가까웠다. 따라서 정치와 분리된 오로지 국가를 위해서만 봉사하는 군대라는 개념은 아프리카인들에게는 매우 낯선 것이었다. 따라서 유럽 식민 당국이 도입한 전문적이고 독립적인 집단으로서 군의 지위는 아프리카인들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었으며 식민지 군대는 내부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또한 식민지 시절의 군대가 아프리카 대륙에 빈발하는 쿠데타에 큰 영향을 끼치는데 독립을 전후하여 창설된 아프리카 국가들의 정규군들은 대체로 식민지 군대에서 기원을 두었다. 따라서 군의 뿌리는 1890년대와 1900년대까지 아프리카 내지를 활발하게 정복하던 정복군의 성격을 벗어 던질 수가 없었으며 정복군들은 같은 아프리카인들을 정복하고 통제하던 집단들이었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이 휩쓸고 간 것을 제외하면 식민지 군대들은 국토방위와 같은 '외부'에 대한 '방위'가 아닌 '내부'에 대한 '통제'가 모든 기능을 했다. 이러한 이유로 독립 직후의 아프리카 국가들의 군대들은 전문적이고 독립적이며 훈련이 잘된 집단의 틀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많은 장교들이 1960년대에 유럽 군대의 장교로 복무하고 있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군사정부의 지도자들은 넓은 의미에서 대부분 식민 통치에 협조한 토착민들의 직계 후손이었으며 장교들은 식민지 군대가 국민국가의 정규군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분명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또한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독립 직후에 초대 지도자들이 집권하자마자 [[일당제]] 및 일인 독재를 실시하며 국정운영의 실패를 보이자 믾은 사람들에게 군부가 대안으로 떠올랐고 이에 따라 [[코트디부아르]]의 [[펠릭스 우푸에부아니]], [[케냐]]의 [[조모 케냐타]], [[세네갈]]의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기니]]의 [[아메드 세쿠 투레]]등의 소수의 케이스를 제외하면 상당수의 많은 문민 초대 대통령들이 군부에게 실각당했고 사람들의 호응을 받았다. 전반적으로 군사정권들은 그들이 축출한 [[문민독재]]정부보다는 덜 부패하고 잔인하고 유능했으나[* 물론 [[우간다]]의 [[이디 아민]]처럼 처음부터 무능하고 잔인한 케이스도 있기는 했다.] 점차 한계를 드러내면서 일부 국가에서는 내전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또한 1980년대 이르면 냉전이 끝나가는 여파가 아프리카 대륙에도 미쳐서 군부를 능가하는 무장세력들이 나오기 시작했으며 [[AK-47]] 같은 자동화기들이 아프리카 대륙 전역에 대규모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1960년대만 해도 반국가 투쟁을 벌일 때 2차 대전 때 사용하던 회기를 들고 싸우거나 심지어 시골 오지에서는 창과 칼로 싸우기도 하였으나 1980년대 들어서는 반정부 집단들조차 자동화기와 로켓포로 무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여파로 과거 1970년대까지 군사정부의 철권통치가 가능했던 것과 달리 1980년대 이후로는 아프리카 국가들은 과거와 달리 반정부군에 시달리며 행정력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많아졌다. 대표적으로 바로 [[라이베리아]]의 [[새뮤얼 케니언 도]][* 전두환 시대 때 방한한 적이 있으며, 이때 [[한국외국어대]]에서 명예 정치학 박사를 수여하자, 매우 자랑스러워했다는 일화가 있다. 새뮤얼 도는 원래는 군 [[하사]] 출신이다. 쿠데타 당시 계급은 상사.]와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우간다]]의 [[이디 아민]], [[콩고민주공화국]]의 [[모부투 세세 세코]],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장 베델 보카사]]와 [[앙드레 콜링바]] 및 [[프랑수아 보지제]], [[소말리아]]의 [[시아드 바레]], [[에티오피아]]의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말리]]의 [[무사 트라오레]]와 [[아시미 고이타]],[[알제리]]의 [[우아리 부메디엔]],[[적도 기니]]의 [[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 음바소고]],,[[수단 공화국]]의 [[가파르 니메이리]]와 [[오마르 알 바시르]],[[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와 [[압델 파타 엘 시시]],[[감비아]]의 [[야햐 잠미]],[[나이지리아]]의 [[야쿠부 고원]]와 [[모하마두 부하리]][* 2015년부터 2023년까지 [[나이지리아]]의 대통령를 역임했었다. 다만 2015년 이후에는 국민들의 직선으로 당선되었고 1983년 12월 31일에 나이지리아 최초의 민선 대통령을 쿠데타로 전복시켜서 본인도 쿠데타로 실각하기까지 2년 가까이 군사정부 수장으로서 집권한 바 있다.], [[토고]]의 [[냐싱베 에야데마]], [[베냉]]의 [[마티외 케레쿠]], [[가나]]의 [[제리 존 롤링스]],[[차드]]의 [[이센 아브레]]와 [[이드리스 데비]], [[콩고 공화국]]의 [[드니 사수 응게소]], [[르완다]]의 [[쥐베날 하뱌리마나]], [[기니]]의 [[마마디 둠부야]], [[부르키나파소]]의 [[토마 상카라]][* 다만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어도 다른 군사독재자들과 달리 개혁정책으로 지금도 많은 아프리카인들에게 높이 평가받고 있다.]와 [[블레즈 콩파오레]],[[이브라힘 트라오레]] 등이다. 하지만, 이렇게 무력으로 집권한 이들도 결국에는 무력으로 축출당했거나 반란군들에게 생포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거나 혁명으로 축출되었다. 물론 [[가나]]의 [[제리 존 롤링스]]처럼 안정적인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기도 하고 [[토고]]의 [[냐싱베 에야데마]],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 [[알제리]]의 [[우아리 부메디엔]]처럼 죽을 때까지 안정적으로 종신집권하는 예외사례도 있다. [[SBS]] [[정글의 법칙]] 촬영 당시에는 촬영지였던 [[마다가스카르]]에서 쿠데타가 일어나는 바람에 출연진과 제작진 모두 움직이지도 못한 적도 있었다.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다비드 다코]]는 2번 대통령으로 집권했지만, 2번 다 쿠데타로 퇴진당했다는 기록을 보유했다.[* 1차 임기 중에 [[장 베델 보카사]]의 쿠데타로 축출되었다가 보카사가 황제를 참칭하며 [[중앙아프리카 제국]]을 세우고는 학생 중심의 반정부 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하자 이에 분노한 [[프랑스]]의 지원을 받은 쿠데타로 재집권했으나, 재집권 2년도 안 되어 [[앙드레 콜링바]]의 쿠데타로 쫓겨났다.] [[수단 공화국]]은 독립 이래로 여러 번의 쿠데타가 일어나 많은 기간을 군부독재정으로 보냈다. 그 중에서 [[가파르 니메이리]]와 [[오마르 알 바시르]]는 둘 다 쿠데타로 집권했으며 이슬람 원리주의와 군부독재를 혼합한 최악의 독재를 실시했었다. [[가파르 니메이리]]는 [[1985년]]에 [[쿠데타]]로 실각했으며 이후 [[군정]] 과도정부를 거쳐서 민간정부가 들어섰으나 [[1989년]]에 [[오마르 알 바시르]]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민간정부를 실각시키고 30년간 집권했다. 그러나 [[오마르 알 바시르]]도 [[2019년]]에 [[2019년 수단 쿠데타|쿠데타]]로 실각했으며 이후 군부와 민간합동의 과도정부가 구성되어 2년동안 유지되어 오다가 과도정부의 국가원수인 [[압델파타흐 알부르한]]장군이 [[2021년 10월 수단 쿠데타|쿠데타를 일으켜서 민간인 총리를 해임하고 가택연금 한 뒤 정부 구성원들을 체포한 다음에 정부를 해산하고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이후 [[수단군|군부]]내에서 [[압델파타흐 알부르한]]과 독자적 군사조직 [[신속지원군]]의 사령관[[모하메드 함단 다갈로]]와의 반목으로 [[2023년 4월 수단 쿠데타|쿠데타가 일어나서 영토 전역이 내전으로 악화되는 중이다.]] [[모리타니]]는 독립 이래로 6번의 [[쿠데타]]로 [[국가원수]]들이 교체되었으며 [[2008년]] [[8월 6일]]에 쿠데타가 다시 발생해 국제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다.다만 [[쿠데타]]주동자인 모하메드 울드 압델 아지즈가 민정이양을 하면서 본인이 [[2009년]]과 [[2014년]] 대선에서 연속 승리하여 재임하고 [[2019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고 [[모하메드 울드 가주아니|후임자]]가 당선되고 안정적인 정권이양이후로 정치가 나름 안정되는 중이다. [[알제리]]는 [[1965년]]에 [[우아리 부메디엔]]대령이 쿠데타를 통해서 집권한 바 있으며 [[1991년]] [[12월]]에 치러진 첫 다당제 총선에서 [[이슬람주의]] 정당들이 약진해서 기존의 집권정당이던 [[민족해방전선]]을 누르고 집권을 눈 앞에 두자 [[알제리군|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선거를 무효화 시키자 이에 반발한 [[이슬람주의]] 세력들과의 내전이 10년간 벌어지기도 했다. [[이집트]]는 [[1952년]]에 [[가말 압델 나세르]]가 [[쿠데타]]로 장권을 잡은 이후로 [[안와르 사다트]], [[호스니 무바라크]]에 이르기까지 [[이집트군|군부]]가 2011년까지 59년동안 정치권력뿐 아니라 경제,사회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미쳤었고 [[아랍의 봄]]이후에도 영향력은 막강했다. 이러한 막강한 [[이집트군|군부]]의 영향력은 민주화 이후에도 [[무함마드 무르시]]의 실정이 부각되자 [[이집트군|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무함마드 무르시]]를 실각시키고 [[압델 파타 엘 시시]]가 집권하는 데 어려움이 거의 없었다. 물론 [[이집트인]]들이 격렬히 군부 독재에 반대했으나 탄압 당한 후 숨 죽이고 사는 상태다. 물론 [[무슬림 형제단]]정권도 문제가 많은 정권이었으나 쿠데타는 방법론이 틀렸다. [[부르키나파소]]는 독립 이래로 초대 대통령부터 [[토마 상카라]]를 포함한 모든 대통령들이 쿠데타로 실각되었다. [[블레즈 콩파오레]] 역시 장기집권에 반발한 시민들의 시위로 실각하고 이후 과도정부 수반을 맡은 미셸 카판도 역시 쿠데타로 며칠간 실각했으나 쿠데타의 실패로 민선때까지 과도정부 수반으로 재임했다. 그러나 민선으로 당선된 로크 마르크 크리스티앙 카보레는 2015년과 2020년 대선에서 당선되었으나 2022년 1월에 [[2022년 부르키나파소 쿠데타|쿠데타로 실각했다.]] 이후 2022년 9월에 [[부르키나파소군|군부]]사이에서 내분이 일어났는지 쿠데타가 또 일어나서 기존의 군부 지도자를 밀어내고 [[이브라힘 트라오레|새 군부지도자]]가 군정을 이끌고 있다. [[케냐]]는 독립 이래로 일당독재와 일인독재가 있었으나 쿠데타로 정권이 교체되었던 적은 없었다. 그러나 [[1982년]]에 '''[[일등병]]'''(...)이 쿠데타를 일으키기도 했는데, 쿠데타의 실태를 보면 가히 '''인류 역사상 가장 황당한 쿠데타'''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자세한 사항은 [[1982년 케냐 쿠데타]] 항목 참조. [[말리]]에서도 여러 차례 [[말리 쿠데타|쿠데타]]가 일어났으며, [[1968년 말리 쿠데타]]이후로는 [[무사 트라오레]]가 23년 가까이 집권하다가 [[1991년]]에 다시 [[1991년 말리 쿠데타|쿠데타]]가 일어나서 실각했다. [[2012년]]에는 [[2012년 투아레그 반란]]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 불만을 품은 군인들이 [[2012년 말리 쿠데타|쿠데타]]를 일으켜 성공했다. [[2020년 말리 쿠데타|2020년 말리에서 쿠데타가 또 일어났다.]] 그리고 1년후, [[2021년 말리 쿠데타|다시 한번 쿠데타가]] 일어났다. 기니는 [[프랑스]]로 부터 독립한 이유 3번의 쿠데타가 발생했다. 특이한 점은 그 중에서 2번의 쿠데타는 권력의 공백시기에 벌어졌다는 점이다. 초대 대통령 [[아메드 세쿠 투레]]가 [[1984년]] [[3월 26일]]에 사망한 직후 [[1984년]] [[4월 3일]]에 란사나 콩데 대령이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이후 란사나 콩데 정권이 24년간 이어져오다가 란사나 콩데 대통령이 재임 중 [[2008년]] [[12월 22일]]에 사망한 이후 이틀 뒤에 대위 무사 다디스 카마라의 주도 하에 쿠데타가 일어나서 과도 군사정부 기간을 거쳐서 민정이양을 했다. 이후 [[알파 콩데]] 대통령이 민선 대통령으로 재임했으나 [[2020년]]에 [[3선 개헌|3선을 강행하면서]] 정국이 혼란해지더니 [[2021년 기니 쿠데타|2021년 9월 5일에 군사쿠데타로 실각했다.]] [[니제르]]는 [[1974년]] [[1974년 니제르 쿠데타|쿠데타]]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총 5번의 [[니제르 쿠데타|쿠데타]]와 2번의 쿠데타 시도가 있었다. 가장 최근에는 [[2023년]] [[7월 26일]]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을 억류하면서 [[2023년 니제르 쿠데타|군사 쿠데타]]가 발생했다. 가봉은 [[1960년]] [[8월 17일]]에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래로 [[가봉 민주당]]의 [[일당제]]하에서 레온 음바와 [[오마르 봉고]],[[알리 봉고 온딤바]]부자의 독재가 이어오면서 몇 차례의 [[쿠데타]]시도가 실패하면서 오랫동안 [[문민독재]]가 유지되어 왔었다. 그러나 [[알리 봉고 온딤바]]대통령이 [[대선]]에서 '''3선'''에 성공한 후 몇분도 안돼서 일어나서 독립 이래 처음으로 [[2023년 가봉 쿠데타|쿠데타]]로 정권을 교체하게 되었다. [[가봉군|군부]]는 대통령 선거 결과 '''무효'''를 선언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