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쿠데타/사례 (문단 편집) ==== 튀르키예 ==== [[튀르키예]]의 경우, 쿠데타는 일어나는데, 정권은 맨날 민간에 이양하는 좀 이상한 경우다. 즉, 튀르키예군은 쿠데타를 일으키더라도 '''직접 권력을 잡지 않는다는 얘기'''. 덕분에 튀르키예에서는 쿠데타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 단, 군인이 직접 정치에 입문하는 일은 (심지어 군인이 멀쩡하게 전역해서 정상적으로 정치에 입문하는 경우에도) 금기시되며, 대중의 지지도 얻지 못한다. 튀르키예군이 쿠데타를 일으키는 이유는 군대 자체가 [[케말 아타튀르크]] 시대부터 국가원리가 된 '''[[세속주의]]'''와 '서구화 정책'의 강력한 지지세력이기 때문이다. 즉, 보수적 이슬람 세력이 정권을 잡고 세속주의를 후퇴시키려고 하면 쿠데타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쪽도 스페인, 중남미와 같이 정부가 친이슬람 성향으로 가려 하면, 공동성명을 열어 "니들 자꾸 그러면 정부 뒤집는다?" 라고 경고를 하고, 그래도 정부가 듣지 않으면 쿠데타를 일으켜 뒤집는 경우이다. 단 2016년 쿠데타는 기존의 전통(?)과 달리 아무 말도 없이 쿠데타가 발생했기 때문에, 그리고 과정 및 결과가 에르도안에게 너무나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주작설이 돌고 있다. 이러한 튀르키예군의 세속주의에 대한 고수는 오스만 제국 후기, 제조업과 군대 운용 방식의 후진성(당시 근대화 정책의 반대 세력은 보수적 이슬람 법학자(=울라마)집단을 중심으로 모이고 있었다)으로 인하여 러시아를 비롯한 유럽의 열강들에게 심심하면 털리던 튀르키예의 쓰라린 기억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것이 오스만 제국 시대의 [[예니체리]] 반란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 또한 존재한다.[* 오스만 제국 시절 중앙군인 예니체리의 반란은 후기로 갈수록 정권획득을 위한 반동이라기보다는 군의 요구 관철을 위한, 혹은 각 사회계층의 요구를 대리하기 위한 보조수단적인 면이 강했기 때문이다. 실제 반란의 주체가 직접 중앙의 정권을 잡은 경우는 단 한번도 없었으며, 많은 반란이 일방적인 진압이 아닌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종결되었다. 물론 그 후에 정치적으로 보복을 당한 경우도 허다하다.] 2000년대 중순 와서 압둘라 귈 총리를 비롯한 이슬람계 정당의 약진에 튀르키예 군부는 고민중이다. 1960년, 1971년, 1983년, 1998년까지 그야말로 10년을 주기로 쿠데타를 벌였고 그럴 때마다 국제적으로 까였으며 여러 모로 엉망이 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미국이 옹호해주었으나 계속되는 쿠데타에 EU 가입 문제와 여러가지로 마찰을 빚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2000년대 후반에 와서 이슬람계 정당인 [[정의개발당]]에 완전히 정국의 주도권이 넘어갔으며, 이 당 출신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는 그동안 군부의 눈치를 보던 관행을 탈피하여 "정치군인"들을 주도적으로 해임하고, 쿠데타 모의를 적발했다며 '''튀르키예군 총사령관''' 등을 체포하여 '''종신형'''에 처하는 강수를 두었는데도 군부는 꼼짝도 못했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8062209095&code=970207|#]] 아마 여기도 민간 정치의 군부에 대한 우위가 확실해지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그 결과가 [[2013 튀르키예 시위|오히려 에르도안의 문민독재로 흘러가서]] 문제지만. 에르도안이 총리직을 버리고 대통령이 된 이후인 2016년 드디어 군부가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에르도안에 역습을 가했으나 오히려 패배하고 말았다. 이번에야말로 에르도안이 군부를 100% 장악하고 길들일 것이라는 전망. 자세한 내용은 [[2016년 튀르키예 쿠데타 미수 사건|2016년 튀르키예 쿠데타 미수 사건]] 참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