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콩키스타도르 (문단 편집) == 개요 == Conquistador[* '콘키스타도르'라고도 하지만 스페인어는 영어처럼 /nk/ 발음이 [ŋk\]로 변하므로 '콘키스타도르'보다 '콩키스타도르'가 원음에 더 가깝다. [[국립국어원]]에서 nq 조합도 /nk/라는 걸 까먹고 [[외래어 표기법]] 규정에 누락시켜서 '콘키스타도르'라고 표기하는 게 규정에 맞았는데(...) 2015년에 은근슬쩍 재심의로 [[레콩키스타]]와 함께 ㅇ 받침으로 표기를 변경했다. 관용 표시가 없는 걸 보아 앞으로도 이렇게 심의할 것으로 보인다. --바꿨으면 표기법을 수정하라고 좀-- 실제로 국립국어원은 외래어 표기법의 스페인어 표기법에 nq의 n도 받침 ㅇ으로 적는다는 비공개 추가 규정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외래어 표기법/스페인어]] 문서 참고.] [[파일:external/www.clker.com/12795743151702834408spanish_conquistador_helmet_1.jpg|width=440]] 콩키스타도르의 상징인 모리용(Morion) 투구. [[파일:스페인의 아즈텍, 마야 정복.jpg]]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07c21bae39e51a4bffe6db9228c84477.jpg]] [[파일:Conquistador_Bastard.jpg]] 당시 콩키스타도르의 무장과 의복. 맨 좌측의 군인은 [[로델레로]]라고 불리기도 했다. 15-17세기에 [[아메리카]] 대륙으로 진출한 [[스페인인]]들을 일컫는 말이다. 오늘날 [[라틴아메리카]]에 존재하는 여러 국가들의 조상이기도 하다. [[포르투갈]] 출신 정복자를 포함시키기도 하고 아시아나 아프리카 등 타 지역을 침략한 정복자들을 포함시키기도 하지만[* [[영어 위키백과]]에서는 이들을 모두 소개하고 있다.] 보통은 아메리카를 침략한 스페인계 정복자를 말한다.[* 포르투갈 정복자들이 차지한 [[브라질]] 지역은 [[아마존]] 유역의 부족사회 정도로 중남미에서 스페인 식민지들에 비해 문명 발달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에 언급되는 일이 드물며 포르투갈 정복자의 아시아나 아프리카 침공은 맥락이나 진행 방식 자체가 많이 다르기 때문에 콩키스타도르로 묶기보단 그 지역의 역사를 설명할 때 따로 언급하는 편이다.] 콩키스타도르는 [[스페인어]]로 [[정복자]][* 영어로는 conqueror([[컨쿼러]])이다.]라는 뜻이며 어원상 [[레콩키스타]]와도 약간 연관이 있다. 이베리아 '본토 수복'은 재정복, 신대륙은 정복.[* 실제로 레콩키스타가 [[그라나다(스페인)|그라나다]]의 함락으로 끝난 게 1492년이다. '''그리고 그 해에 콜럼버스가 항해를 떠나서 신대륙을 발견하면서 콩키스타도르의 시대가 도래했다'''.] 콩키스타도르는 남성형이며 탐험대에 여성들도 소수 동행했기 때문에 여성형인 콩키스타도라(Conquistadora)도 종종 쓰였다. 복수형은 콩키스타도레스(Conquistadores).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국가들과 800년간의 [[레콩키스타]] 전쟁을 진행하는 동안 [[스페인]]은 막대한 수의 군인들을 유지해야 했으며 [[이슬람]] 세력과의 지속적인 전쟁 때문에 병사들의 전투력은 월등하게 높아졌다. 그런데 [[나스르 왕조|그라나다]]를 함락하여 일단 레콩키스타를 완수하고 나자, 전쟁은 소강상태가 되고 레콩키스타에 참가하던 군인들은 '''일자리가 없어졌다.'''[* 레콩키스타의 최종 목표는 [[로마 제국]]의 아프리카 강역인 마그레브 지역까지 다시 그리스도교의 영역으로 만드는 것이었지만 이는 제국주의 시대에 가서야 이루게 되며 유럽 문화권에서 분리된지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났기 때문에 식민지 독립이후 여전히 아랍문화권으로 남게 되었다.][* 게다가 스페인과 바로 마주보고 있는 북아프리카의 [[모로코]]만 해도 상당히 강력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어서 1580년 [[모로코]]를 정복하려 무모하게 원정을 간 세바스티앙 국왕이 친히 이끈 [[포르투갈]] 군대가 오히려 전멸에 가까운 대패를 당했고 왕도 전사했다.] 그 와중에 스페인에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인도]]'를 발견하였고, 인도에는 금은이 곳곳에 잔뜩 쌓여 있다는 정보가 퍼지게 된다. 용병들은 과감하게 배를 사고 콜롬버스를 흉내내어 대서양을 건너 금을 찾아 그들이 '인도'라고 믿고 있는 [[신대륙]]으로 모험을 떠났다. 그 결과 단 수백 명의 스페인 용병들이 [[아즈텍 제국]]과 [[잉카 제국]], [[마야 문명]], 중남미의 여러 원주민 부족들을 '''토벌하고'''[* 다만 [[틀락스칼텍]] 같이 스페인 콩키스타도르의 식민지 세력 확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적대 부족 세력들을 제거하는 데 동참하던 아메리카 원주민 집단들도 있었다.]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전역에 [[스페인 식민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식민제국에서 스스로 왕을 칭하거나 귀족으로 칭하면서 온갖 횡포를 부렸고 현지인들을 마구잡이로 약탈, 학살을 벌였다. 나중엔 수탈할 물자가 없어지면, 원주민을 노예로 부려먹으며 그들의 농장이나 광산을 운영하는 방식으로 부를 얻으려고 하였다. 스페인 중앙정부에서 이를 제지 하였고 많은 콩키스타도르들의 자치권을 박탈하였다. 몇몇 콩키스타도르들은 스페인 중앙정부에 반항하지만 이들은 진압당했고, 결국 정복지에 중세 유럽의 장원과 비슷한 엔코미엔다(Encomienda)를 받고 엔코미엔다에 거주하게 된 원주민들을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며, 엔코미엔다에서 거둔 세금을 본국에 납부할 의무를 부여받았다.[* 엔코미엔다는 이후 대농장인 아시엔다(Hacienda)/파젠다(Fazenda)로 바뀌어 라틴아메리카는 대농장 지주가 수많은 소작농을 거느리고 [[플랜테이션]] 농장을 경영하는 구조가 자리잡았다.] 하지만 본국과의 거리가 멀었던 탓에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원주민 인권 문제도 제기되자 급기야 스페인 왕실조차도 [[바야돌리드 논쟁]] 이후, "그만해라, 이제 인디오들도 제국 신민인데 마음대로 죽이고 그러지 마라."라고 통첩을 보내기에 이른다. 그리고 본국에서 보낸 관료들로 말미암아 중앙정부의 간접적인 영향력 안에 놓인 지역들은 안정된 정치구조 안에 놓일 수 있었다. 그리고 [[스페인 제국]] 정부에서는 콩키스타도르가 세습 영주가 되는 것을 경계하여 부왕을 임명하고 직접 통치로 전환했다. 여기까지는 콩키스타도르들도 어찌 하지 못하고 받아들였으나[* 중남미에서 그토록 패악질을 부렸던 콩키스타도르들 중에서도 직접 왕이 되려는 사람은 없었다. 당시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은 엄격한 신분 질서가 지배하는 계급 사회였기 때문.], 스페인 정부는 멍청하게 콩키스타도르들을 식민지 촌놈들이라며 차별하는 실책을 저지른다. 본토에서 파견된 고관들은 [[페닌술라르]]였고 콩키스타도르 후손을 포함해 아메리카 식민지에 정착한 유럽인은 [[크리오요]]로 구분했는데, 크리오요는 불만을 품다가 19세기에 와서는 [[미국 독립 전쟁]] 당시의 자결권 논리를 자기들에 맞게 차용해서는 스페인을 아예 몰아내어 현재의 중남미에 독립국가들을 세운다. 크리오요는 통제하던 스페인에서 벗어나자 대놓고 원주민들을 괴롭히며 영토를 마저 빼앗았고, 현재 라틴아메리카의 극단적인 혼란은 이런 콩키스타도르들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베네수엘라]]/[[콜롬비아]]/[[볼리비아]]/[[페루]]/[[에콰도르]]를 해방한 [[시몬 볼리바르]]와 호세 파에스, [[칠레]]를 해방한 베르나르도 오이긴스, [[아르헨티나]]를 해방한 [[호세 데 산 마르틴]]과 마누엘 벨그라노 등 남미의 식민지 독립 운동 지도자들마저 남미 원주민을 극심하게 차별하거나 적대시했었다. 물론, 이들이 유럽계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콩키스타도르의 초기 근거지였던 [[쿠바]]와 [[푸에르토리코]]는 남미/중미 본토와는 달리, 스페인이 좀 더 오래 지배하지만 결국 [[미국-스페인 전쟁]]에서의 패전으로 잃는다. [[에르난 코르테스]] 같은 일부 예외를 제외한 콩키스타도르들은 신분이 거의가 하급 귀족이나 그저 입에 풀칠만 할 정도의 하류층 출신으로 학식이 매우 얕았다. 이점에선 19세기 후반 골드 러시 때의 개척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통계적으로 어느 나라든지 식민지로 이주하는 본국인들 대부분이 본국의 하류층 출신들이다.[*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 시절에 [[조선]]으로 건너간 [[일본인]]들 역시 하류층 또는 경제적으로 조선인과 별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코르테스도 가난한 하급 귀족이나 아버지의 교육열 덕분에 살라망카로 유학을 가서(대학교육을 받았다, 법학사 자격을 땄다, 법원 서기로 근무했다 등등 주장이 엇갈려서 확정할 수가 없지만) 고등교육을 받았고, 아메리카로 넘어온 뒤 20대를 고스란히 행정 관료(시청 서기로 시작했다.)로 보내서, 고급 어휘와 수사법, 행정능력과 정치 감각을 두루 겸비했다. 이걸로 카를 5세의 환심을 얻었으며, 자기 아래 원주민들을 대하는 방식도 여느 콩키스타도르들과 달라서 봉건제하의 영주와 영민 관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반면 잉카를 정복한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서명도 못 해서 자기 이름을 새긴 판에 잉크를 묻혀 서명을 찍을 정도의 문맹이었다. 대개 하층민 출신들이 신분 상승을 추구했다는 점 때문인지 칠레 역사학의 거장 중 한 명인 가브리엘 살라사르(Gabriel Salazar) 교수는 이들을 '이베리아 반도에서 왕, 교회, 대상인들의 점점 더 심해지는 억압 앞에 무너져가는 이베리아 반도 촌락 민주주의를 아메리카에서 되살린 민주주의의 중흥자들'이라는, 원주민들 입장에선 어처구니가 없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2015년]] [[7월 9일]], [[볼리비아]] 원주민 대표들과 만난 [[교황]] [[프란치스코(교황)|프란치스코]]는 과거 콩키스타도르 시대부터 교회가 원주민들에게 [[야훼|하느님]]의 이름으로 저지른 중대한 죄에 대해 용서를 [[http://media.daum.net/culture/religion/newsview?newsid=20150710113809393|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