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코케테무르 (문단 편집) === [[고비 사막]]에서 서달의 북벌을 막아내다 === 북원의 거듭된 패배를 목도하고 코케테무르의 생존을 확인하게 된 명 태조 주원장은 1372년이 되자 서달을 총대장으로 삼고 그와 다른 장수들에게 15만의 대군을 내주어 코케테무르를 영원히 없애버리고[* 《명태조실록(明太祖實錄)》에 따르면 주원장이 노골적으로 '''왕보보를 정벌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나온다.] 북원을 완전히 멸망시키라고 지시했다. 서달이 5만의 군사를 이끌고 북진한다는 소식을 접한 코케테무르는 중국 대륙에서의 싸움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것 알고 있었기에 서달을 고비 사막에까지 끌어들여 공격할 계획을 짰다. 우선 코케테무르는 본진에 대군을 남겨놓고 자신은 소수의 군대만을 이끌어 서달을 요격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가장 먼저 야마천(野馬川)[* 케룰렌 강(Kherlen River)]에서 명군(明軍) 맞아 싸웠지만 패배하여 달아났다.[* 《명사》에 등장한 서술대로 적었으나 사실상 패배라기보다는 별다른 싸움을 해보지도 않고 도망간 것에 가깝다. 당시 명군의 선봉장이던 남옥(藍玉)이 코케테무르를 격파했다는 기록만 존재하는데, 명군의 본대를 이끌던 서달이 전혀 언급되지 않은 것을 보면 제대로 싸운 것이 아니라 서달이 이끄는 본대가 도착하기 전에 코케테무르가 군대를 후퇴시키고 달아났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코케테무르는 계속 달아나다가 토라하(土剌河)[* 툴 강(Tuul River)]에 이르러서 명군과 재차 교전했는데, 토라하에서의 싸움도 야마천의 싸움과 똑같은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코케테무르는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명군의 선봉대에 쫓겨 달아났다. 마침내 서달이 지휘하는 5만의 명군이 [[영북행성|영북]](嶺北)으로 깊숙히 진격해와서 카라코룸의 코앞에까지 이르자, 코케테무르는 자신의 본대와 부장 하종철(賀宗哲)의 군대를 일제히 일으켜 서달의 군대를 에워싸고 공격하니 이번에는 서달이 매우 불리하였다. '''코케테무르는 기세를 타고 명군을 닥치는대로 마구 살상하니 이 싸움에서 죽은 명군이 수만여 명에 달했다.''' 그러나 서달은 오히려 침착하게 대응하여 남은 병사들에게 보루를 쌓게 하고 엄하게 방비하니 코케테무르가 그 방어를 뚫지 못하여 서달의 북벌군을 전멸시키지는 못했다. 비록 코케테무르는 명나라의 북벌군을 완전히 없애버리지는 못했지만, 명의 15만 북벌군 중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맡은 서달의 군대를 격파함으로써 북원의 멸망을 막아내고 명 태조 주원장의 뜻을 꺾는데 성공했다. 그와 더불어 코케테무르는 주원장을 포함한 명나라 사람들에게 그의 악명을 제대로 떨치게 되었다. '''영북 대전'''의 패배를 겪은 명군은 코케테무르가 살아있는 동안에 국경의 요새 밖으로 나와서 북원의 군대를 공격하는 일이 매우 드물게 되었다.[* 실제로 태조 주원장은 영북의 패배 이후로 대략 15년 동안 북원을 향한 대규모의 토벌군을 일으키지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