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코케테무르 (문단 편집) == 평가 == >'''확곽은 가볍게 보아서는 아니 됩니다.''' >---- >《명사》에 수록된 [[유기(명나라)|유기]]의 평가 >어느 날, [[홍무제|태조]](太祖)는 나라의 제장(諸將)들을 모두 불러모으고는 다음과 같이 질문하였다. >"그대들은 천하(天下)의 기남자(奇男子)가 누구라고 보는가?" >이에 장수들은 하나같이 답하였다. >"[[상우춘]] 장군은 채 1만이 되지 않는 군대를 이끌고도 천하를 횡행하였으며, 그가 가는 곳마다 대적할 자가 없었으니 상우춘 장군이야말로 진정한 기남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태조가 웃으며 답한다. >"상우춘이 인걸(人傑)이기는 하였지만 내가 얻어서 신하로 기용하였었다. '''그러나 나는 왕보보를 신하로 얻지 못하였는데, 그야말로 진정한 기남자가 아니겠는가?'''" >태조는 마침내 왕보보의 누이동생을 진왕비(秦王妃)로 책봉하였다. >---- >《명사》에 수록된 명 태조 주원장의 평가 >'''확곽은 백전불굴(百戰不屈)의 정신으로 [[차칸테무르|선대]]의 의지를 이으려 했지만 끝내 한을 품고 죽었다. ''' [[진우정]]은 참된 의지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았으며, [[바자르오르미|양왕]](梁王)은 [[나하추|납합출]](納哈出)이 나라를 배반한 것을 부끄러워하였으니 '''이들 모두가 원의 충신이다.''' (후략) >---- >《명사》「확곽첩목아등전(擴廓帖木兒等傳)」의 결언(結言) > (전략(차칸테무르에 대한 평가)) '''확곽첩목아는 [[차칸테무르|그의 부친]]에 비해 군사적 재능이 조금 못 미쳤고, 그 때문에 변방으로 쫓겨나서 기구한 삶을 살아야 했지만 죽을때까지 나라에 충성하고 부친의 의지를 이으려고 하였으니 [[홍무제|명태조]](明太祖)가 그를 기남자라고 말한 것은 지당하다. ''' >---- >《[[신원사|신원사]](新元史)》「확곽첩목아전(擴廓帖木兒傳)」의 결언(結言) 역사가들은 코케테무르를 그의 양아버지이자 스승과도 같은 존재인 [[차칸테무르]]에 비해 능력이 못 미치는 인물로 평가[* 비록 나라의 멸망을 막지 못하고 서달에게 처참히 패한 전적이 있어서 빛이 바래긴 했지만 코케테무르 또한 원의 모든 관군들을 상대로 벌인 내전에서 승리를 거머쥔 인물인만큼 그의 뛰어난 군 지휘능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할지언정 그가 원의 마지막 명장이자 북원을 지탱하는 기둥이었다는 점에는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특히 북원에는 코케테무르가 죽자 더 이상 그와 같은 군사적 능력을 가진 인물이 나오지 않았고, 이로 인해 1388년에 일어난 명나라의 북벌은 막아내지 못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