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코스타리카 (문단 편집) == 역사 == 코스타리카는 16세기 이전에는 수십개의 도시국가들이 존속해있었으며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탐험대에 처음 발견되었으며, 아름다운 자연의 장관에 그 이름을 “풍요로운 해안”, 즉 코스타리카로 이름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름과 달리 에스파냐의 지배를 받게 된 코스타리카는 전혀 풍요롭지 못했으며 오히려 식민지의 해안은 에스파냐 해군과 타 국가의 해적의 싸움, 그리고 일방적인 학살로 인해 죽은 원주민들의 시체로 뒤덮여 지옥을 방불케하는 참상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황금같은 자원이 풍부하던 코스타리카는 다른 아메리카 식민지들과는 달리 군력이 크지 않았기에 해적들의 목표가 되기 일수였다. 앞서 말했듯이 코스타리카는 밀림으로 덮여 있었으며, 타 중미 국가보다 더 낙후되어 있었다. 원주민들의 저항은 18세기까지 강하게 계속되었으며 타 지역과 달리 [[에스파냐]] 식민 통치자들도 빈곤에 시달렸다.[* 이 사실은 코스타리카의 민족정체성 형성을 위한 '신화'를 구성하는데 전용되었다. 즉 다른 중미 국가와 달리 코스타리카는 착취할 원주민도 없거나 정복 후에 몰살되었고, 그러므로 주민은 거의 모두 백인이고 모두가 가난했으니 처음부터 평등했으며 이것을 바탕으로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후 민주주의를 일궈 "중미의 스위스"로 발돋움했다는 것이다. 물론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는 코스타리카 엘리트들이 약빨고 지어낸 신화란게 중론이며, 실제로는 백인들도 원주민 피가 꽤 많이 섞였고 노예제도 엄연히 실존했다는게 정설이다. 그리고 독립 후 정치사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나라도 독재와 내란 등 나름 혼란스런 시대를 보냈다. 사실 근대기에 원주민들의 영향력이 전무한것은 아니라서 현재의 라몬주 일부 지역을 탈라만카 왕이 통치했었고, 코스타리카 정부에서 이를 인정했다. 다만 혼란속에서 4명의 왕 모두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고, 1910년에 왕계가 끊긴이후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 1821년에는 [[멕시코]]의 일부로 스페인에서 독립하다가 1823년에 [[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의 일원으로 독립하였으며, 1838년에는 별 충돌 없이 중미 연방에서 독립하였다. 독립 이후에는 소국이 되어 1864년에도 인구가 12만 499명에 불과했다. 코스타리카 초대 국가원수 후안 모라 페르난데스는 자유주의적인 정책을 폈으며, 1870년대 토마스 과르디아 구티에레스의 독재를 겪기도 했으나 다른 중미 국가보다 혼란은 덜했다. 과르디아는 바나나 농장을 세우고 커피 수출을 위해 [[미국]] 기업에 철도 부설권을 넘겼다. 이후 군부 독재와 민정이 연달아 이어졌고, 1930년대엔 [[공산주의]]가 득세하자 1936년 선거에선 커피 경작자들에 의해 반공 및 친[[나치]] 성향의 레온 코르테스 카스트로가 당선되기도 하였다. 1940년 집권한 라파엘 앙헬 칼데론 과르디아가 복지국가 전환을 시도하였으나[* 독재적으로 정책을 펼쳤지만 최저임금제 도입이나 교육 개혁 등을 시행하면서 코스타리카가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길을 닦았기에 코스타리카 내에서 논쟁적인 인물이다. 여하튼 테오도로 피카도 미할스키에게 권력을 넘겨준 이후에 해외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가 1958년에 코스타리카로 귀국하면서 하원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이후에도 1962년 대선에 나서기도 하였으나 낙선했다. 그리고 1966년에 오틸리오 울라테 블랑코와 같이 코스타리카 통일당을 결성해 참여했으며 1970년에 생을 마감한다. 참고로 그의 아들도 1990년부터 1994년까지 대통령에 재직하기도 하였다. 다만 아버지와 다르게 보수적인 성향이 강했다. 대통령으로서의 평은 부패스캔들로 인해서 좋지는 않은편이다.]그는 얼마 안 가 인기를 잃었고, 1944년 그의 측근 피카도가 대통령이 되자 부정선거로 규탄당했다. 1948년 다시 칼데론이 대선에 출마했으나 보수파인 블랑코에게 패배했다. 그러나 블랑코가 투옥되고 칼데론이 대통령이 되자 사민당의 호세 피게레스 페레르가 반정부 봉기를 주도해 수도를 장악하여 1949년 블랑코에게 권력을 넘겼다. 이후 코스타리카 신헌법이 제정되어 시민의 자유가 보장되고 군대가 폐지되었다. 페레르는 1953년 대통령이 되었으며 반독재의 기치를 들었다. 또한 코스타리카의 주요 산업이던 바나나 산업에서 자국의 이익 배당률을 10%에서 30%로 늘렸다. 이후 코스타리카는 별 다른 문제 없이 정치가 안정되었고 경제도 중미에선 괜찮은 편이다. 그렇지만 1980년대와 90년대에는 경제가 그리 좋지는 못한 편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