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코닥 (문단 편집) === 특허와 코닥 ===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성공적인 [[경영]]으로 빠르게 성장한 코닥이었지만, 당시 코닥이 고용한 [[과학자]]의 수는 고작 10명도 채 안되었다. [[1911년]] 이스트만은 [[독일]]의 한 화학 [[공장]]을 [[견학]]하게 되는데, 이 독일 화학 회사는 700여명의 [[독일인]] [[엔지니어]]와 화학자를 고용하고 있음을 확인한 코닥은 크게 충격을 받게 된다. 시장에서 선두를 점하고 있던 코닥이었지만, 코닥의 성공이 상품 개발과 혁신으로부터 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이스트만은 이를 계기로 [[연구소]]를 설립하고 지속적인 투자로 상품 개발에 착수한다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고[* 이스트만이 세운 연구소는 미국에서 설립된 최초의 상업 연구 단지 중 하나였다.], 당시 연구소장에게 2가지의 임무를 부여하는데, 첫째는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다 연구해봐라.'였고 둘째는 '당신의 임무는 사진술의 미래다.'였다. 또한 이스트만은 평생동안 [[MIT]]에 [[기부]]를 하였는데 [[1912년]] 150만 달러의 기부를 시작으로, 죽기 직전까지 MIT에만 총 450만 달러를 기부하였다.[* 이스트만은 다른 미국 대학에도 막대한 기부를 하였지만, MIT가 기부 금액이 가장 컸던건 이스트만이 개인적으로 존경했던 대학이였기 때문이다.] 이런 이스트만의 기부와 투자는 코닥을 단순한 카메라 필름 회사가 아닌 수많은 [[특허]]를 갖춘 견실한 기업으로 만드는 현명한 선택이었고, 코닥은 1세기 동안 [[특허]]를 통해서 가장 큰 이익을 남기는 회사 중 하나로 남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