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컵라면 (문단 편집) === 원조 === [youtube(cVETL_vzGCU)] [[닛신 컵누들]] CF.[* BGM은 오오사와 요시유키의 'そして僕は途方に暮れる'.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OST로 쓰이기도 했다. 마지막 문구는 "그대 다음에, 따뜻한. 컵누들(きみの、つぎに、あったかい。カップヌードル)"이다.] 초기에는 저런 감각적인 CF를 선보였으나 최근 들어서는 [[https://www.youtube.com/watch?v=NuX8ZRxJIF0|이렇게]] [[https://www.youtube.com/watch?v=dSr7sS1p7B8|약 빤]] CF도 선보이고 있다. [[1971년]] [[닛신식품]]의 창업주 [[안도 모모후쿠]]가 개발한 것이 그 시초이다. [[1958년]] 인스턴트 라면이 개발되었고 인스턴트 라면 시장은 금세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결국 돌파구로서 세계 시장, 특히 면식에 생소한 [[서양]]을 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주로 접시에 음식을 담아 먹는 문화이기 때문에 동양권과는 달리 넓고 깊은 그릇이 별로 없었다. 이 그릇이 왜 중요했냐면, 닛신식품의 [[치킨라멘]]은 지금처럼 냄비에 물 끓여서 조리하는 방식이 아닌, 오목한 그릇에 면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3분간 기다렸다 먹는 방식이기 때문이었다. 즉 컵라면에서 컵만 뺀 형태였다. 이런 문제 때문에 서양에서는 라면을 팔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안도 회장은 외국인 바이어와 만난 자리에서 힌트를 얻게 된다. 바이어는 종이컵에 인스턴트 라면을 부숴넣고 끓는 물을 넣어 익혀 먹은 다음 컵을 버려서 처리했다. 이때 안도는 '아예 컵에 담아 팔자'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컵누들]]이다. 개발 초기에는 시장에서 전혀 안 팔렸다. 가격도 그렇고 슈퍼 및 편의점 주인들조차 "일본에 [[냄비]] 없는 집이 어디 있소?"라면서 외면했다. 거기다가 처음엔 [[도쿄]]의 [[야구장]]에서만 팔았고, 한동안 [[간토]] 지방에서만 판매했던지라 인스턴트 주제에 [[지방(지리)|지방]]민은 먹을 수 없다는 [[핸디캡]]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타개책으로 [[소방관]], [[경찰관]] 등 냄비를 사용할 수 없는 공공 기관의 [[철야]] 근무자에게 어필해 보았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1972년, 악명 높은 [[아사마 산장 사건]]이 TV에서 방송될 때 [[경찰기동대|기동대원]]들이 먹는 것이 [[PPL|실시간 중계되면서]] 일반인들에게도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0년대 일본에서 청년들이 사회에 진출하게 되고 그에 따라 [[편의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또 당시 일본은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돈이 많이 풀려있었고]], 높은 구매력과 바쁜 생활 등으로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추가적 지출을 감당할 수 있다는 점도 한 몫 했다. 닛신에서는 당시 [[시부야]] 같은 젊은이들이 많은 곳을 중심으로 무료 시식 행사를 열기도 했다. 말 그대로 컵라면의 전성기가 찾아오게 되고, 이후 90년대에 [[1인 가구]]가 늘면서 시장이 커졌으면 커졌지 줄어들지 않는 시장으로 변모했다[* 더구나 21세기 현재와 같이 ‘간편, 간단’이 생활의 키워드가 되고 여기에 등산, 낚시, 사냥, 그리고 오지 탐험과 같은 레저 활동이 일상화 된 현대에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품으로 자리잡고 있다. 더욱이 용기는 먹은 후 바로 버릴 수 있어서 설거지가 귀찮거나 불가능한 독신자들이나 외지 근무자들에겐 인기 만점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