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캘거리 (문단 편집) == 역사 == 원주민 등은 약 11, 000여년 전부터 이 지역에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도시로서의 역사는 서구 개척민들이 Bow 강 유역에서 잠시 머무른 1787년을 시작으로 삼는다. 본격적으로 존 글렌이라는 유럽 이민자가 캘거리 지역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한 때는 1873년으로, 캐나다 지역 중에서도 늦게 개발되었다. 이후 현재의 [[왕립 캐나다 기마경찰|RCMP]]가 캘거리 지역에 들어서고 캘거리 지역의 상업과 [[미국]] 간의 무역을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도시의 안정적인 발전 기반을 구축할 수 있게 된다. 1883년, 지금은 캐나다 서부 지역 개척의 기반을 이루어냈다고 평가받는 [[캐네디언 퍼시픽]](CPR)이 캘거리를 통과하게 되면서, 캘거리는 점차 로키 산맥 관문 역할을 하게 되는 이 지역 상업의 중심지가 된다.[* 참고로 캐네디언 퍼시픽의 본사는 [[몬트리올]]에 있었으나, 1996년 이전한 이후 현재는 캘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철로로 인해서 캘거리가 캐나다 서부의 [[밴쿠버]]와 동부의 [[토론토]], [[몬트리올]]과 이어지게 되자 허드슨 베이 컴퍼니 또한 1884년에 캘거리 지역에 진출, 이로 인해 많은 이주민들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지금은 역설적이게도 캘거리에는 정기 여객열차가 다니지 않고있다. 정기 여객열차를 이용하려면 북쪽에 있는 에드먼턴까지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추운 날씨와 더딘 발전으로 캘거리의 인구 증가율은 90여년 동안 아주 천천히 늘어난다. 1902년에는 캘거리의 성장 원동력인 [[석유]]가 [[앨버타주|앨버타]] 주에서 처음 발견되지만, 본격적으로 시추할 정도의 경제적인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 [[유전]]을 발견한 때는 50년 후인 1950년이다. [[앨버타주|앨버타 지역]]에서 발견된 [[석유]]는 흔히 오일 샌드로 알려진 모래가 섞인 석유로 일반적인 석유보다 시추하는데 더 많은 비용이 들어서 경제적인 이유로 시추를 하지 못하였다. [[1970년대]] 이후 가파르게 증가하는 석유 값으로 인해서 오일 샌드를 개발할 수 있게 되자, 석유 사업을 기반으로 한 회사들의 캘거리 유입으로 인해 캘거리 시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20년 마다 30만 명씩이나 되는 이민자가 몰려오는 호황을 누리게 된다.[* 1971년 캘거리에 등록된 인구가 약 40만 명이었지만, 1990년에는 약 70만 명, 2010년에는 100만 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2010년대 [[셰일가스]] 개발로 인한 유가 폭락 등으로 인해 [[앨버타]] 주의 경제 성장이 둔화되며 캘거리 시도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는 중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