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캔디캔디 (문단 편집) ==== 주제가 ==== 주제가 작곡은 와타나베 타케오가, 작사는 원작 스토리를 쓴 나기타 케이코가 했으며, 가사 속에서 캔디의 밝은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웃으면서 달려가자 푸른 들을" 이라든가 "나 홀로 있을 땐 어쩐지 쓸쓸해지지만 그럴 땐 얘기를 나누자 거울 속의 나하고" 같은 구절 때문에 농담삼아 캔디 광년이 설이 나오기도 했다. [[게이머즈]]에서 만화로 그려지기도 했다(...) 워낙 작품이 큰 인기를 끈 덕분에 애니메이션 주제가 역시 한일 양국에서 모두 히트를 쳤다. [youtube(zPSQ7cdngaE)] [youtube(oIoEZ07L21Q)] 오프닝의 전조부 '외로워도~슬퍼도~ 나는 안울어~'부분과 전국 노래자랑 BGM에서 실로폰 소리가 끝난 후 바로 나오는 부분의 멜로디와 비슷하다는 의견이 있다. [[https://youtu.be/4AMO_YRN62k|실제로 이를 섞어놓은 사람이 있는데 한번 직접 들어보자.]] 일본판은 [[호리에 미츠코]][* 가수 겸 성우이기도 한데,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세일러 스타즈]]의 [[세일러 갤럭시아]]의 성우가 이 사람이다.]가 불렀다. 이 캔디캔디가 얼마나 메가히트를 했는지 호리에 미츠코는 해당 주제곡에 짓눌렸다고 한다. 그리고 원래 음반사에서는 동요와 같이 처리되던 애니메이션 노래가 별도 부서로 분리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발매사인 [[일본 컬럼비아]]에서 호리에 미츠코는 '''[[미소라 히바리]] 다음가는 거물'''로 취급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야말로 충공깽. 한국판은 몇가지 버전이 있는데, 1977년 더빙판은 당시 선화여자중학교 1학년생이던 소프라노 곽현주[* 어릴 적부터 어머니 손에 이끌려 KBS 아기노래회에서 노래를 배워 4살 무렵에 김자경오페라단에 최연소 단원으로 입단하여 오페라에서 주로 아역을 도맡았고, KBS 어린이합창단과 리틀엔젤스예술단을 거치며 국제 무대 경험도 쌓았다. 그 사이 선화여자중학교/예술고등학교-[[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을 졸업한 후, [[줄리아드 스쿨]]에서 전문 연주자 과정을 받고 [[스토니브룩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땄다. 음악 커리어 동안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 오디션, 로렌 재커리 소사이어티 콩쿠르 등지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https://m.blog.daum.net/kkkdc/2224|참고 자료]])]가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kbrkjs&logNo=50178444113&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부른 바 있고]], [[정여진]]씨가 부른 버전도 가장 잘 알려져 있고 인기 가수 [[혜은이]]도 1983년 더빙판 주제가를 불렀을 정도였다.[* SBS [[강심장]] 2011년 12월 6일 방영분에서 직접 말했다.] 원래 방송용은 준비 과정에서 석혜원[* 석혜원 버전은 1983년에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은하철도 999 앨범에 실려있다.]이 불렀다가 MBC 자체적으로 이런저런 얘기가 나온 끝에 혜은이가 방송용까지 맡았다. 그런데 한국판 오프닝 가사는 일본 오프닝 가사와 내용이 다르다. 원래 가사는 자신의 주근깨도 좋다는 내용이었는데 대한민국에서는 괴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등등 어려움 속에서도 강인한 인내심으로 고난을 이겨낸다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진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설에 의하면 당시 인고를 견뎌내는 어머니적 여성상을 심어주기 위해 이렇게 개사하라는 상부의 압박 때문이라고도 한다. --어찌되었든 한국판 오프닝의 작사자는 다른 이도 아닌 [[윤석중]] 선생이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