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캐나다군 (문단 편집) == 역사 == 지금이야 [[캐나다]]가 깨끗하고 잘 사는 [[선진국]]이지만 [[20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많은 수의 [[캐나다인]]들은 끝없이 광활하고 혹독한 [[북아메리카]]의 자연에서 살아가면서 [[사냥]]과 야외 생존 능력 등을 자연스럽게 터득했다는 사실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실제로 캐나다군이 맹활약을 한 분야도 [[저격]], [[강습]], [[게릴라]]전 등의 소수 병사들의 악과 깡으로 버텨야 하는 분야들이 많다. 덕분인지 몰라도 21세기의 캐나다군 역시 [[JTF-2]]를 위시한 [[캐나다 특수전사령부]]를 앞세워 미국, 영국과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의 [[특수전]] 전력을 보유 중인데, 특히 그 중에서도 [[저격]] 부문은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군]] 때문에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과거 [[자치령]] 선포 전에도 캐나다 주둔 [[영국군]]은 [[미영전쟁]] 때 [[미군]]의 침입에 단독으로 반격하여 [[수도(행정구역)|수도]]인 [[워싱턴 D.C]]를 공략, [[백악관]]을 불태운 전적이 있다. 미국 건국 이래 현재까지 미국 수도를 점령한 유일한 [[군대]]다. 물론 [[미국인]]들은 캐나다령이 당시 대영제국이었기에 [[영국군]]에게 진 거라고 반발[* [[버락 오바마]]가 [[데이비드 캐머런]]의 방미 당시 이 사건을 언급하며 농담을 한 적이 있다.]하지만, 당시 식민지군은 대부분 캐나다 출신 병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물론 미국이나 캐나다나 둘 다 주력군 출신이 따지고 보면 이전에 [[영국인]]들[* 그전에 [[프랑스인]]들도 넘어와 식민지를 건설했다. 그들은 자기 식민지를 [[누벨프랑스]](새로운 프랑스)라고 불렀고, 지금의 [[퀘벡 주]] 지역이다.]이 건너와 [[식민지]]로 시작했으니[* 영국계가 아닌 원주민계나 다른 나라, 민족 계열이었다면 아니겠지만.] 영국 혈통([[영국인]])이라면 틀린 말은 아니긴 하다. 아무튼 당시의 그 인적 자원이 이후 캐나다군으로 그대로 이어진다. 은근히 [[전투종족]] 기질이 있는 [[군대]]로 알려져 있으며,[* 전 세계 저격최장기록 Top 5 중 세명이 캐나다군 소속이다.] 실제로 전과가 미군급으로 대단하다. [[캐나다인]]들 다수는 [[2차 대전]] 전후로 [[캐나다/경제|경제]], 사회 구조가 전반적으로 [[산업화]]되기 전까지 냉혹하기 짝이 없는 혹한의 캐나다 대자연과 싸우며 먹고 살아온 [[농부]], [[사냥꾼|수렵꾼]], [[나무꾼|벌목꾼]] 같은 강인한 [[인내심]]과 끈기를 요구하는 [[1차산업]] 종사자가 많았으니 캐나다 병사들이 강병 취급 받을 만한 이유가 있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독가스]]가 처음으로 쓰인 2차 이프르(Ypres) 전투에서 [[영국군]]의 지원이 올 때까지 [[오줌]] 적신 [[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고[* 화재 시 유독가스가 발생할 경우에도 비상조치로 사용하는 유용한 방법이다. 여기에서 [[오줌]]의 역할은 단순히 [[가스]]를 들이키지 않도록 막는 것이기 때문에 깨끗한 [[물]]을 구할 수 있다면 가급적 물을 쓰는 것이 좋다. ] 독일군에 맞서 전선을 사수했다. [[1차 대전]]에선 위의 2차 이프르 전투와 비미 전투를 비롯한 다양한 활약을 많이 했는데 덕분에 "[[돌격대|스톰 트루퍼]][* 독일어 원문 슈트름트루펜]"라는 이명을 얻었다. [[비미 리지 전투|비미 리지(Vimy Ridge) 전투]]는 처음으로 작전 입안에서 실제 동원병력까지 거의 95% 이상이 캐나다군이었던, [[캐나다]]가 주도한 첫 전투이다. [[부활절]] 다음 날인 [[월요일]], 따뜻한 음식과 [[럼주]]로 배를 채우고 독일군과의 전투를 시작했다. [[포병]]의 지원사격을 받으며 1만 5천 명이 제1진을 향해 공격하여, 진흙 구덩이, [[철조망]], [[지뢰]]를 넘어 노도같이 밀고 나갔다. 반격하는 [[독일 제국군|독일군]]의 [[기관총]]과 [[포탄]]은 살인적이였으나, 물밀듯이 밀려오는 수많은 캐나다 군인을 막기엔 어려웠다. 그들은 너무나 저돌적으로 공격한 나머지, [[최전방]] 방어선을 넘었는지도 모른 채 제2차 방어선으로 진격하여 무너뜨린다. 이 전투에서 거둔 전과는 '[[온타리오]] 주 파병 군단', '[[매니토바]] 주 파병 군단'인 식으로 구분되던 캐나다군이 처음으로 '우리는 캐나다군'이라는 동질감을 느끼게 한 계기가 되었으며, 캐나다 국민들에게도 실질적으로 '[[캐나다인]]'이란 [[정체성]]을 확립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 전투 이후 [[1차 대전]] 당시 캐나다군이 항상 입에 달고 다녔던 말이 "Who won at the Vimy?"(비미 리지 전투에서 이긴 나라가 어디더라?)였을 정도로 이 전투에 대한 [[캐나다인]]들의 당시 [[자부심]]은 대단했다. [[영국군]]이고 [[프랑스군]]이고 왕창 깨졌던 곳인데 캐나다군은 그에 비교도 안 되게 적은 희생으로 요충지를 점령한 것이다. 당시 캐나다군의 [[보급]]과 [[장비]]는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제식소총이 [[로스 소총|저절로 분해되거나 작동부가 파괴되지 않나]], 특히 [[군화]]의 내구성이 너무 형편없던 나머지 밑창이 종이짝처럼 순식간에 떨어지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났다. 때문에 [[농담]]으로 캐나다군은 [[독일 제국군|독일군]]의 [[부츠]]를 뺏으려고 그렇게 용맹하게 싸웠다는 말이 있을 지경이었다. 당시 캐나다군이 [[제식]]으로 사용한 [[로스 소총]](Ross Rifle)은 적절한 성능에 스트레이트 풀 방식이라 연사 속도가 빨랐던 볼트 액션 [[소총]]이었지만, [[볼트]]를 분해했다가 재조립할 때 [[조립]]을 잘못하기가 너무나도 쉬워서 볼트를 다시 끼웠는데 약실 폐쇄가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발생했다. 잘못 조립한 볼트가 든 [[소총]]을 발사하면 볼트가 분해되어 [[사수]] 얼굴을 향해 튀어나가면서 소총이 폭파했다. 총이 분해되는 것은 둘째치고 사망자까지 발생했다고 한다. 자세한 것은 [[http://www.youtube.com/watch?v=EaSui_UqDX8|사용 영상 참조]][* [[https://www.youtube.com/watch?v=2uGYSQ_-FJU|다른 영상]]에 따르면, 실제로 로스 소총은 사냥용으로는 좋지만, 군용으로는 꽝이였다고 한다. 그리고 휴즈씨의 [[방산비리]] 때문에 캐나다군들은 당시 [[영국군]] 제식소총이었던 [[리-엔필드]]를 더 원했다고.]. 수렵([[사냥]])을 본업으로 삼던 출신들이 많았던 탓인지 캐나다군에는 뛰어난 저격수([[엽병]])들도 많았는데, 그중 전공이 가장 화려한 [[저격수]]로는 [[https://en.wikipedia.org/wiki/Francis_Pegahmagabow|'프랜시스 페가마가보']]라는 [[아메리카 원주민|원주민]] 출신 [[부사관]]이 있다. 공식적으로 인정된 사살수인 378명에 더해 300여 명의 적병을 [[포로]]로 잡는 기록까지 세웠는데, 이는 [[1차 대전]] 당시 모든 나라의 [[저격수]]들이 세운 기록들 중 [[인간흉기|가장 많은 사살기록]]이며, 덕분에 당시에는 아직 법적으로 [[캐나다]] 국민으로 인정되지 않았던 [[아메리카 원주민|원주민]]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일개 [[병사]]에서 [[부사관]]까지 [[진급]]하고 높은 급의 여러 [[훈장]]을 수여 받았다. 이후 그는 출신 [[부족]]의 [[추장]]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고아]] 출신으로서는 엄청난 [[신분]] 상승이다. 자세한 것은 [[https://www.youtube.com/watch?v=kYzDBeG3By0&t=1|영상 참조]]. 지상군만 활약한 게 아니다. [[캐나다 공군]]의 조종사들은 명 [[파일럿]]으로 명성을 떨쳤는데, 캐나다 출신 [[전투기]] 조종사 빌리 비숍(Billy Bishop)[* 본명은 [[윌리엄 에이버리 비숍]]. [[스트라이크 위치스]] 세계에도 그를 모티브로 하는 [[리네트 비숍|캐릭터]]가 존재한다. 또한 [[에이스 컴뱃 어설트 호라이즌]]의 주인공 [[윌리엄 비숍]] 역시 그가 모티브. 다만 이쪽은 [[미 공군]] 소속이다.]은 다른 [[전투기]]의 후방을 먼저 잡아 [[격추]]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총 72기의 적기를 격추했다. 그 외에 레이먼드 콜리셔(Raymond Collishaw)라는 조종사는 60기를 격추. 전후 [[조지 5세]] [[캐나다 국왕|국왕]]으로부터 최우수 전쟁영웅에게 수여하는 빅토리아 십자훈장을 받은 왕립항공비행단 소속 10명의 공군조종사가 있었는데, 그중 3명이 캐나다 조종사였을 정도로 캐나다 출신 에이스 [[파일럿]]들이 많았다. 이는 [[연합군]] 내부의 [[차별]]이 만들어낸 결과인데, 처음에는 '캐나다 파일럿들이 뭐 싸울 줄이나 알겠냐'고 놀리면서 [[전투]]에 보내지 않고 [[벨기에]] 근방 영공 방어만 맡겼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따금씩 날아오는 적기들을 잡으면서 조종실력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갔기 때문에 캐나다 [[파일럿]]들은 엄청난 실력을 겸비한 에이스들이 되었지만, 본격적인 [[전선]]에는 투입이 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에이스 [[파일럿]]들은 전쟁에서 살아남거나 끝나던 해까지 살아남은 경우가 많지만, 처음 투입되는 [[신병]]들이 엄청 죽어나간 덕분에 당시 [[파일럿]]의 평균 생존기간은 1주일이었다. 이 엄청난 수의 피해를 메꾸기 위하여 [[연합군]]은 [[캐나다 공군]]의 전선 투입을 허가했다. 덕분에 [[캐나다]]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재미는 톡톡히 봤다. [[2차 대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1943년]] [[12월]]에 [[이탈리아 전선]]의 오르토나라는 마을에서 [[나치 독일|독일]] [[공수부대]]를 상대로 큰 고전을 했는데, [[마을]]의 구조가 좁은 [[골목]]과 길거리로 구성되어 있었고 [[독일 국방군|독일군]]이 사방에서 [[매복]]했기 때문이다. 즉, 길거리만 나오면 [[저격수]]와 [[기관총]] [[사수]]가 버티고 있었단 소리. 그래서 새로운 [[전술]]을 사용했는데, 이름하야 쥐구멍(mousholing) 전술이다. 적이 안보이는 곳에 [[폭탄]]으로 [[구멍]]을 뚫어 진입로를 만들고, 그걸 건물 건물 마다 적용해서 모든 [[건물]]의 안전한 통로를 잇는것이 바로 그 전술이다. 이는 상당히 효과적으로 쓰여서 현대 [[시가전]]에서도 쓰일 정도. 대테러전에서도 자주 쓰이는데 주요 진입로인 [[문]]과 [[창문]]에만 적들의 신경이 집중되어 있어서 벽을 폭파하고 진입하면 [[기습]]의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또한 [[2차 세계대전]] [[서부전선]]의 터닝포인트인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도 큰 활약을 했다. [[미군]]이 담당했고 몇시간만에 전사자만 3000명 이상이 나와 유명해진 오마하 해변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주노 해변에 상륙한 캐나다군은 상륙한 지 불과 15분만에 [[독일 국방군|독일군]]의 저항을 분쇄하여 [[해변]]을 점령하고 더 나아가 우회기동하여 [[영국군]]이 고전하고 있던 골드 해변의 후방을 차단하고 조여들어가 [[독일 국방군|독일군]]을 포위 섬멸하였다. 이 덕분에 [[영국군]]은 1시간이나 먼저 [[상륙]]을 시작한 [[미군]]보다 더 빨리 해변을 장악할 수 있었다. 당시 사상자 수를 보면 골드 해변의 [[영국군]] 사상자가 약 400여명, 주노 해변의 캐나다군 전사자가 359명에 부상자가 574명이였고, 소드 해변의 [[영국군]] 및 [[자유 프랑스|자유 프랑스군]]은 683명의 사상자를 기록하였으며, 유타 해변에서는 200여 명의 사상자만을 기록했다. 즉 캐나다군이 상륙한 주노 해변의 방어가 허술해서 15분 만에 해변을 장악한 게 아니라 오히려 사상자 수로는 오마하 해변 바로 다음이었을 정도로 저항이 거센 해안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15분의 기적은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냥 [[악]]과 [[깡]]으로 해냈다는것. 대전 기간에 [[윈스턴 처칠]]은 "나에게 [[인간흉기#s-2.1.2.3|캐나다 병사]]와 [[미국]]의 기술력, [[영국]]의 [[장교]]들이 주어졌다면 세상을 지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원문은 If I had Canadian soldiers, American technology, and British officers I could rule the world.]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는데, 그만큼 캐나다 병사들의 [[전투력]]이 뛰어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2차 대전]]때 [[알류샨 열도]]에서도 싸우기도 했었고, [[미군]]과 캐나다군이랑 함께 [[특수부대]]를 창설해서 [[프랑스]] 남부에 [[자유]]를 얻어주는 [[작전]]을 많이 실행했다. 참고로 이 부대는 [[악마]]의 [[여단]](Devil's Brigade)라고 불렸는데, 이 [[부대]]가 그 유명한 [[미합중국 육군 특수작전부대|그린베레]]의 조상뻘이 된다. [[6.25 전쟁]] 시기 캐나다가 [[대한민국|한국]]에 [[파병]]시킨 병력은 [[유엔군사령부|UN군]]에서 [[미국]]과 [[영국]] 다음인 세 번째로 그 수가 많을 정도로 한국에 큰 힘을 보태주었다. [[1950년]] 당시 캐나다군 전체 병력의 절반을 모두 [[대한민국|한국]]에 보냈다고 하니 대단하다고 할 만하다. 게다가 단순히 병력만 많이 보낸 것이 아니라 큰 활약도 했으니,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가평 전투이다. 인해전술로 밀고 내려오는 13배가 넘는 [[중국 인민지원군|중공군]]을 상대로 버티는 등 병력 규모에 비해 그 파워는 뭔가 밸런스가 맞지 않을 정도였다.[* 옆 [[고지]]를 지키던 [[호주군]]은 이미 큰 피해를 입고 [[후방]]으로 철수하고 [[캐나다군]]만이 [[뉴질랜드군|뉴질랜드 포병대대]]의 지원을 받으며 667고지를 지키는 상황이였다.] 가평전투 당시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참호까지 밀고 들어오며 고전하게 되자, [[뉴질랜드군]] 포병대대에게 [[브로큰 애로우|자신들의 위치로 포격을 해줄 것을 요청하는]] 패기까지 보여줬다.[* 출처: Heroes of the Forgotten War: The Battle of Kapyong.] [[참호]] 안에서 싸우는 자신들보다 엄폐물 없이 노출된 [[중국 인민지원군|중공군]]의 피해가 더 클 것을 예상했기 때문. [[브로큰 애로우]] [[무전]]을 받은 [[뉴질랜드군]]도 처음엔 놀라 선뜻 포격하지 못하다가 결국 해줬고 캐나다군의 의도대로 방어에 성공하게 된다. [[4월 25일]] 전투 후에 [[미군]]과 한 대화는 가히 압박이다. [[미군]]은 아예 가평 전투에서 [[유엔군사령부|UN군]]이 패배했다고 가정하고는 들어온 통신이 적군의 것인 줄 알았다는데, [[미군]]이 캐나다군과 [[호주군]]+[[뉴질랜드군]]이 패배했을 것이라 지레짐작한 이유는 캐나다군과 함께 [[가평군]]을 사수하던 [[호주군]]이 병력의 40%를 잃은 뒤 이미 후퇴를 해 실질적으로 [[전선]]을 지키던 [[보병]] 병력은 캐나다군 1개 [[대대]]의 450명[* 이상 [[JTBC]] 특집 [[다큐]] 6.25의 이방인 - 영연방 참전 병사의 회고에 따름. [[영연방]] 연합군의 전체 병력은 2,500명 정도였으나, 전술했듯 [[호주군]] 대대가 큰 손실을 입고 빠져나가고 [[영국군]]은 규모가 작고 좀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고, [[뉴질랜드군]]의 병력은 포병대대라 [[백병전]]이 벌어지던 당시 상황에서는 큰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물론 캐나다군이 깡 좋게 자신들의 위치로 쏴달라고 요청해서 결과적으로 큰 도움이 되긴 했다.]이 전부였던 데 반해 [[중국 인민지원군|중공군]]은 1개 [[사단]] 6,000명이 밀고 내려오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캐나다군은 [[방어]]에 성공했고, 47명 전사자에 99명 부상자를 낸 반면 [[중국 인민지원군|중공군]]은 최소 1,000명에서 최대 4,000명 이하가 사상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추정인 이유는 [[중국 인민지원군|중공군]]이 자세한 피해기록을 남기지 않았고 전투가 끝난 후 [[유엔군사령부|UN군]]이 적들의 시신으로 대충 확인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가평 전투에서 큰 좌절을 겪은 [[중국 인민지원군|중공군]]은 이후 더 이상 대대적인 공세를 퍼붓지 못 하고 [[삼팔선]]까지 후퇴해 방어선을 구축하게 되어 [[6.25 전쟁]]에 있어 큰 전환점이 된 [[전투]]라고 할 수 있다. 자세한 사항은 [[영문 위키백과]]의 [[http://en.wikipedia.org/wiki/Battle_of_Kapyong|가평 전투]] 참조. 이 인연으로 [[대한민국 정부]]는 휴전 후 캐나다를 최우선 수교대상국으로 지정했고 [[1963년]]에 수교를 맺었다. 이후에도 캐나다군은 [[유엔군사령부|UN군]]의 일원으로 많은 Peacekeeping/Peacemaking 미션에 참가했다. 주로 Peacekeeping(전투억제) 쪽으로 말이다. [[2017년]] [[JTF-2]] 소속의 한 [[저격수]][* [[특수부대]] 소속인데다가 현재 [[이라크]]에서 실전을 치르고 있는 대원이라 정확한 신원이 발표되지는 않았다. 군사 기밀이기 때문.]가 [[이라크]]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도중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IS]] 대원을 3,450m 밖에서 사살하여 8년만에 [[저격]]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저격에는 [[맥밀란 Tac-50]] 저격소총이 사용되었으며 [[총알]]이 목표에 맞기까지 10초를 [[비행]]했다고 한다. 이번 신기록은 이전 [[영국군]] 저격수인 크레이그 해리슨이 세운 기록과 비교해 거의 1km나 늘어난 거리로, 한동안 기록이 깨지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래는 [[저격수]] 기록 탑5인데, 5명 중 3명이 캐나다군 소속이다. 1. Canadian sniper in Iraq(2017): 3,450m 2. British sniper Craig Harrison in Afghanistan(2009): 2,475m 3. Canadian sniper Rob Furlong in Afghanistan(2002): 2,430m 4. Canadian sniper Arron Perry in Afghanistan(2002): 2,310m 5. U.S. sniper Brian Kemer in Iraq(2004): 2,300m 이외에도 세계 최초로 [[CADPAT|픽셀형 위장 무늬]]를 채택하였으며, [[AR-15]]를 먼허생산한 디마코(Diemaco) 사의 [[콜트 캐나다 C7|C7]]과 [[콜트 캐나다 C8|C8]] 같은 총기를 채택했다. 게다가 이 [[소총]]은 미국보다도 [[위버 레일]]을 먼저 도입했고[* 현재는 C7A2로 개량되며 피카티니 레일로 변경되었다.] 엘칸 C79 조준경과 디마코에서 자체 제작한 탄창을 사용한다. [[탄창]]의 내구성은 요즘에 나온 [[PMAG]]만큼은 아니더라도 신뢰성이 상당이 높다. [[미국]], [[영국]]과 인접한 데다가 [[파이브 아이즈|최우방 동맹국]]이기 때문에 [[미군]], [[영국군]]과는 합동훈련 등의 밀접한 교류[* 이렇게 미국, 영국과 같이 군사적 활동을 많이 하다보니, 규모는 작은 대신 실전경험이 많고 숙련도가 높다.]를 통해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데, 가장 최근에 [[미군]], [[영국군]]을 직접적으로 도운 대외적 활동으로는 [[ISAF]]의 일원으로서 [[아프가니스탄]]에 전투병력을 파병하여 일선에서 활약한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날 기미가 전혀 없자 결국 [[2011년]] [[7월 7일]]부로 파병된 캐나다군이 모든 활동을 중지하고 전병력이 철군하였다. 이 전쟁에서 158명이 전사하고 635명이 부상 당하는 큰 피해를 입었지만, 결국 얻은 것이 없는 쓰라린 경험이 되고야 말았다. 다만 캐나다군의 기밀 특수부대인 [[JTF-2]]는 여전히 미국/영국 특수부대와 함께 전투지역에서 활동 중이다. [[캐나다 해군]]은 [[1980년대]] 말에 [[원자력 잠수함]]을 개발하는 방안을 공식 추진하기도 했다. 만약 성사되었다면 비(非)핵무장 국가로는 처음으로 [[원자력 잠수함]]을 확보하는 사례[* 지금은 [[브라질 해군]]이 이 노선을 추진하고 있다. 후에 [[대한민국 해군|한국군]]도 추진 중.]다 되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참사]]로 인해 [[원자력]]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된 상황이었고, [[동맹국]]인 [[미국]], [[영국]]도 부정적 반응을 보인 탓에 얼마 안 되어 철회해야 했다. 결국은 [[호주]]가 [[AUKUS|확보]]하게 된다.[[https://en.wikipedia.org/wiki/Canada-class_submarine|#]] 부족한 인력난을 겪고 있는 탓에 [[영주권]]자들도 모집하기로 결정했다.[[https://www.vanchosun.com/news/main/frame.php?main=1&boardId=17&bdId=76842|#]] [[포병]]전력이 상당히 빈약하다. [[자주곡사포]]랑 [[다연장로켓]]이 1문도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