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칼리파 (문단 편집) == 용례 == [[아랍어]]로 '''할리파'''(خليفة / Khalīfah), [[터키어]]로는 '''할리페'''(Halife), 영어권에서는 '''칼리프'''(Caliph)로 통칭된다. 예전에는 회교 황제, 회교 교황, 회황(回皇), 회교주 등으로 번역되었지만 현재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쓰는 표현은 '''칼리파'''이다. [[부르즈 할리파]]에서의 할리파가 바로 이 칼리파를 의미한다. 부르즈(برج / Burj)는 아랍어로 '탑'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부르즈 할리파는 '칼리파의 탑'이 된다. 할리파에서의 ㅎ에 해당하는 아랍문자 하(خ / Khāʾ)는 무성 연구개 마찰음(/x/) 또는 무성 구개수 마찰음(/χ/)을 나타낸다. 해당 음소는 〈[[외래어 표기법]]〉상의 [[https://www.korean.go.kr/front/page/pageView.do?page_id=P000105|국제 음성 기호와 한글 대조표]]에 따르면 ㅎ으로 표기하기 때문에 할리파로 쓴 사례도 있다. 그러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https://stdict.korean.go.kr/search/popup/wordLink.do?word_no=342338|칼리파]]가 등재돼 있으며 역사 용어로도 칼리파와 칼리프라는 표기가 굳어졌기 때문에 할리파라는 표기는 부르즈 할리파나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카타르]]의 전 [[아미르]])처럼 현대 고유명사나 아랍인의 인명에서 쓰인다. 정식으로 공표되진 않았으나, 국립국어원에서 만든 아랍어 자모와 한글 대조표에서는 h와 구분하기 위해서인지 kh도 그냥 ㅋ로 표기하도록 하기 때문에, 이 시안을 따를 경우 칼리파가 된다. 어디까지나 시안이긴 하지만 국립국어원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많은 출판사에서 이를 참고한다. 본래 아랍어 할리파는 '대리자' 또는 '계승자'라는 뜻을 가진 말로 초대 정통 칼리파였던 [[아부 바크르]]가 사용한 칭호인 '''할리파트 라술 알라'''(خليفة رسول الله, 신의 사도의 계승자)에서 유래했다.[* 여성형 명사를 나타내는 [[아랍 문자]] '[[ة|타 마르부타]]'(ة)가 끝에 붙어 있기 때문에 연결형 문법에서는 '할리파트'(خَلِيفَة / Khalīfat)로 발음교체가 발생한다.] '''할리파트 알라'''(خليفة الله, 신의 대리인), '''아미르 알무미닌'''(أمير المؤمنين, 신자들의 총사령관),[* 이 칭호는 일부 세속 군주들도 사용하는데 과거에는 무굴 제국의 황제 [[아우랑제브]]가 쓰기도 했고, 현재는 [[무함마드 6세|모로코 국왕]], 소코토 토후국(나이지리아에 소속)의 아미르가 사용하고 있다.] '''이맘 알움마'''(إمام الامة, 이슬람 공동체의 인도자)의 별칭도 자주 쓰였다. 물론 [[맘루크 왕조]]와 같이 허수아비에 불과한 시절도 있었지만, 전근대 [[가톨릭]]의 [[교황]]과 마찬가지로 종교뿐 아니라 정치까지 맡아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게다가 잘 나갔을 무렵의 교황령은 이탈리아 반도 중부 대부분을 영유하는 대국이었다.] 그런데 사실 [[세계사]]에서 제정일치의 군주제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집트]]의 [[파라오]], [[일본]]의 [[천황]]이 그러했고 한국 역사를 보더라도 [[단군]], [[궁예]] 등 제정일치 시절이 있었다. 다만, '칼리파'의 경우, 동시대의 다른 제정일치 군주제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는 있다. 흔히 칼리파와 비교되는 [[가톨릭]]의 [[교황]] 같은 경우, 교황령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통치자였고, 가톨릭 세계의 주도권을 두고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와 팽팽한 대결을 벌이기도 했지만 교황의 경우, 명목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모든 가톨릭 교권의 정치적 통치자는 아니었다. 설령 교황권의 전성기에 황제권에 대한 교황권의 우위를 주장했을지언정, 속계(정치)의 제1인자는 황제였고, 교황은 종교계의 1인자로 그 영역이 명확히 갈려있었던 것이다. 이에 비해 칼리파는 원칙적으로는 종교와 정치를 모두 아우르는 이슬람 세계의 최고 지도자였고, [[이슬람 제국]]의 전성기에는 실질적으로도 이러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교황이 교황령을 통치하는 세속 군주로서의 측면도 가지고 있었다고는 하나, 가톨릭 세계의 일부분에 대한 세속 군주의 측면도 가진 것을 종교 뿐 아니라 정치 영역에서도 이슬람권 전역의 최고 지배자로 여겨지던 초기 칼리파의 권력과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다른 제정일치 군주제와 비교할 경우, 사실 조직화된 종교에서 제정일치 체제 그것도 교리적으로 공인된 제정일치 체제가 나타나는 사례 자체가 생각만큼 흔하지는 않다. 애초에 제정일치 체제가 제일 흔하게 나타나는 경우는 성읍국가나 군장국가 수준의 초기 국가체제에서 [[사제(성직자)|사제]]나 [[제사장]]이 통치자를 겸하는 경우인데, 당시의 국가 단위[* 솔직히, 현대 기준으로는 그냥 동네 하나와 별로 다를 바 없다고 할 정도로 작은 경우가 많다.]에서 제일 존경받고 똑똑한 웃어른인 제사장이 재판이나 분쟁조정 등의 세속적 정치 영역까지 담당하는 것이라, 세속적 권력이든 종교적 권위든 이후 시대의 국가나 종교만큼 체계화된 것이 아니었다.[* 위에 제시된 사례 중에는 대략 [[단군]] 정도가 이에 해당한다. 그리고 [[궁예]]와 같은 사례를 본다면 솔직히 [[불교]] 교리 어디에도 궁예를 미륵불로 인정하는 부분은 없다. 이건 말하자면 궁예가 일방적으로 미륵불을 자처함으로써 스스로에게 종교적인 권위를 부여하고, 이를 통하여 권력을 강화한 사례이지, 공식적인 교리로 보장되는 제정일치 체제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 이슬람 세계에서야 '난 너 칼리파로 인정 안 해!' 라고 생깔지언정 칼리파의 권위 자체를 부정하기는 힘들었던 데 비해, 궁예가 미륵불을 자처한다고 태봉 사람 말고 누가 그걸 인정해 줬겠는가를 생각해보면 된다.] 사실 이슬람 세계에서 칼리파의 정치적인 위치는 설명하기가 매우 복잡한데 초기 이슬람 시대만 하더라도 칼리파는 말 그대로 이슬람 세계의 최고 지도자로서 종교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가장 높은 위치의 존재였다. 그러나 [[아바스 제국]]이 [[우마이야 제국]]을 멸망시키고 [[아브드 알 라흐만 1세]]가 [[후우마이야 제국]]을 세우면서 이슬람 세계에서의 칼리파가 둘로 나뉘었고, 다시 [[시아파]]의 [[압둘라 알마흐디]] 빌라가 [[파티마 제국]]을 세우면서 이슬람 세계에는 3명의 칼리파가 공존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바스 칼리파가 실질적인 세속 권력을 잃고 [[살라흐 앗딘]]이 파티마 제국을 멸망시키면서 이슬람 세계는 크게 둘로 나뉘게 되는데, 동부 이슬람 세계에서의 칼리파는 이때부터 점차 종교적이자 상징적인 존재로 변하는 반면, 서부 이슬람 세계에서의 칼리파는 종교적, 정치적 권위를 모두 가진 존재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13세기 동부 이슬람 세계에서는 [[일 칸국]]의 창건자인 [[훌라구 칸]]이 바그다드를 정복해 아바스 칼리파조가 세속 영토를 모두 상실했고, 서부 이슬람 세계에서는 [[무와히드 왕조]]가 멸망하면서 칼리파는 완전히 이집트 [[술탄]]의 꼭두각시이자 상징적인 존재로 전락하게 되었다. 여러모로 볼 때 이슬람 세계의 칼리파는 일본의 [[천황]]과 유사한 점이 많다. 본래 정치적, 종교적으로 최고 지도자였으나 이후 [[막부#s-3|군사 정권]]이 들어서면서[* 중동의 아미르와 일본의 무가정권은 모두 지방의 군벌 세력으로부터 시작했다는 점 역시 공통적인 점이다.] 상징적인 존재로 전락했다는 점에서 둘은 매우 비슷하다. 다만 중세 후기의 아바스 칼리파와 술탄의 관계는 종교 권력과 세속 권력의 대립이라는 점에서 볼 때 서유럽의 [[교황]]과 [[황제]]의 관계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