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칼리닌그라드 (문단 편집) === 냉전 === [[제2차 세계 대전]] 패전과 함께 독일인은 추방되거나 비참하게 죽었고, 대신 러시아인들이 대거 이주해 들어왔다. [[1945년]] 이 지역은 [[소비에트 연방]]의 최대 구성국인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의 일부가 되었다. [[니키타 흐루쇼프]]는 이 땅을 이에 인접한 소련 구성국인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합병하려고 했다. 실제로 병합됐다면 지금쯤 칼리닌그라드는 리투아니아 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리투아니아의 공산당 지도자 [[안타나스 스녜츠쿠스]](Antanas Sniečkus)가 거절해서 무산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 설에 따르면, 스녜츠쿠스는 이 곳을 리투아니아로 합병하면 리투아니아 인구 가운데서 러시아계의 비율이 너무 높아져 버리는 상황을 꺼려서 거절했다고 한다.[* 사실 칼리닌그라드가 [[튜튼 기사단]]이 정복하기 이전에는 [[고대 프로이센]]인 같은 발트족의 땅이었고 [[프로이센 공국]]도 상당기간 동안 [[폴란드-리투아니아]]의 봉신이었지만 러시아가 점령한 것은 고작 [[7년 전쟁]]이랑 [[제1차 세계 대전]] 초반 일시적으로 점령한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러시아에 소속되는 것보다 리투아니아에 소속되는 것이 훨씬 역사적 명분이 있다. 그러나 이곳은 독일인을 쫓아내고 그 자리에 군인을 중심으로 한 러시아계 사람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따라서 러시아인들이 추후 발트 3국 주류 민족과 불편한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건 당시에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고, 실제로도 이 곳 없이도 발트 3국 독립 후 발트 3국 내부에선 그렇게 되었다. 결국 칼리닌그라드는 그대로 러시아 소속으로 굳어졌다.[[https://www.quora.com/Why-wasnt-Kaliningrad-given-to-the-Lithuanian-SSR-rather-than-Russia|#]] 영토와 함께 리투아니아 입장에서는 통제하기 어려운 거대한 소수민족 집단이 덤으로 따라오는 셈이니 그냥 안 받는 게 낫다고 여긴 것이다. 당시 리투아니아 인구가 350만 내외였고, 거기서 정점을 찍고 인구가 계속 줄어들어 2021년 현재 270만 내외로 추정되는데, 칼리닌그라드 주는 흐루쇼프 당시인 1959년 센서스 기준 60만 내외였지만 계속 늘어나서 2021년 현재 100만이 넘을 것으로 추정 된다. 실제로 리투아니아의 우방국들이 러시아계 주민에게 시민권을 갱신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국적을 주지 않아서 20퍼센트 가까운 무국적자가 대량 발생했음을 생각하면, 매우 적절한 선택이었다. 위 설이 사실이라면 안타나스 스녜츠쿠스의 선견지명이다.] 어쨌든 1946년 4월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소속 쿄닉스베르크주(Кёнигсбергская область)가 설치되었으며 도시 이름도 쿄닉스베르크(Кёнигсберг)였으나,[* 러시아어에는 한국어에 있는 외래어 표기법 비슷하게 외래어를 옮기는 규칙이 있는데, 이 규칙에 따라 독일어를 러시아어로 비슷하게 옮긴 게 쿄닉스베르크(Кёнигсберг [ˈkʲɵnʲɪɡzbɛrk\])이다. 지금도 이를 줄인 '쿄닉(쿄니크)'이라는 별명이 여행사 등에서 사용된다.] 동년 7월 [[미하일 칼리닌]]([[소련 최고회의]] 상무회 주석)이 사망한 후, 도시와 주 모두 그의 이름을 따 칼리닌그라드로 이름이 바뀌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