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테나치오 (문단 편집) === 1990년대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footballuser.com/1424423_Italy.jpg|width=100%]]}}} || 80년대 후반 [[AC 밀란]]의 감독이었던 [[아리고 사키]]는 미드필더 진에 4명을 배치하는 '''플랫 4-4-2 포메이션의 압박 전술을 고안해냈다.''' 이는 축구 전술사에 있어 큰 반향을 일으켰고, 그 영향으로 [[아리고 사키]]는 [[1994 FIFA 월드컵 미국|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을 지휘하게 되었다. 사키는 자신의 제자들이었던 밀란의 포백[* [[파올로 말디니]], [[프랑코 바레시]],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 [[마우로 타소티]]]을 그대로 국가대표팀에 끌어 모았고[* 말디니와 바레시는 사키가 이탈리아 감독이 되기 전부터 이미 대표팀에 뽑혀왔으나, 코스타쿠르타와 타소티는 이전에는 쟁쟁한 다른 팀 선수들([[주세페 베르고미]], 리카르도 페리 등등)때문에 선발되지 못했었다.], 이들은 당대 세계 최강팀으로 이름을 날리던 [[AC 밀란]][* 더구나 월드컵 바로 직전 시즌인 93-94 시즌 챔피언스 리그의 우승팀이자 세리에 A 우승팀이기도 했다. 해당 시즌 세리에 A에서 밀란은 '''34경기 36득점'''이라는 엽기적인 저득점축구를 했으나, 그와 동시에 실점은 15점밖에 하지 않는 짠물축구를 하여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의 주전 4백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큰 기대를 모았으나, 정작 이 4백이 실제 월드컵 무대에서 가동된 것은 1차전인 아일랜드전뿐이었고 심지어 결과는 1:0 패배. 그리고 타소티는 2차전부턴 선발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이어지는 2차전 노르웨이전에선 바레시가 부상으로 아웃되고 주전 골키퍼였던 삼프도리아의 수문장 [[잔루카 팔리우카]]가 퇴장당하는 요지경 속에 간신히 1:0 승리. 이후 타소티가 8강 스페인전때 잠깐 선발로 복귀했다가 [[루이스 엔리케]]를 팔꿈치로 가격한게 경기 후 적발되어 사후징계로 나가 떨어지고, 결승전인 브라질 전엔 바레시가 부상에서 돌아왔나 했더니 이번엔 코스타쿠르타가 준결승전이었던 불가리아전에서의 경고 누적으로 출장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즉, 밀란 4백 중 월드컵 내내 자리를 지킨 것은 [[파올로 말디니]] 뿐. 그래도 바레시의 경우 결승전에서 그야말로 혼신을 다한 멋진 활약을 보여주었고, 코스타쿠르타의 경우 결승전을 제외하면 전 경기에서 자리를 지키며 평소 듣기도 했던 '바레시의 마리오네트' '바레시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선수'라는 비아냥을 헛소리로 만드는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전 경기에 출장한 말디니는 대회 올스타팀에 선정. 타소티를 제외하면 다들 명성이 허명이 아닌 활약을 해주긴 했다.[* 사실 타소티의 경우, 1960년생으로 당시 이미 만 34세의 노장이었으므로 온전한 활약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긴 했다. 이미 직전 시즌 리그에서도 상당시간의 출장시간을 [[크리스티안 파누치]]와 분담했던 상황. 더구나 당시 미국 월드컵은 무더위가 극심하기로 악명이 높았던 대회였다.(같은 대표팀 선수이자 밀란의 후배였던 당시 24세의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도 더위로 인한 컨디션 저하로 고생했을 정도) 그래도 스페인 전에서의 그 엘보우는 쉴드가 안되긴 하지만(...)] 바레시와 타소티의 빈자리는 안토니오 베나리보, 로베르토 무씨, 루이지 아폴로니가 멋지게 메웠고[* 2차전에선 타소티 대신 베나리보가 라이트백으로 선발 출장, 바레시마저 아웃된 3차전부턴 말디니가 센터백으로 이동하고 베나리보가 레프트백, 아폴로니/무씨가 라이트백으로 뛰었다.(아폴로니는 3차전, 무씨는 16강/4강/결승전에 선발출장) 특히 베나리보는 다른 역대 이탈리아 수비수들에 뒤지지않는 멋진 퍼포먼스를 선보였으며 무씨가 16강전의 활약 이외엔 불안하긴 했지만 결승전에서 무씨 대신 교체된 아폴로니 역시 좋은 활약을 펼쳐주었다.] 주전 골키퍼 팔리우카의 퇴장(조별 리그 2차전) 및 출장정지(조별 리그 3차전 및 16강전)라는 비상사태도 라치오의 수문장이었던 루카 마르케잔니가 멋지게 수습해내서 결과적으론 월드컵이 끝난 후에도 7경기 5실점이라는 준수한 수비력을 보여주었지만, 조별리그 동안 3경기 2득점이라는 빈약한 공격력으로 간신히 토너먼트에 올랐다.[* 심지어 조별 리그 3위였다(...). 32강 제도하에선 여지없이 탈락이었겠지만 당시는 24강 6개조 중 1,2위 팀 총 12팀이 16강 진출에 남은 4자리를 각조 3위 팀 중 상위 4팀이 차지하는 방식이었기에 그야말로 간신히 턱걸이로 16강 진출... 그것도 턱걸이 중의 턱걸이었다.] '''하지만 토너먼트가 시작하면서 [[로베르토 바조]]가 각성하였다.''' 바조가 그야말로 대활약, 토너먼트에서 위기 때마다 바조의 득점으로 위기를 간신히 넘기고[* 물론 앞에서 언급한 수비진의 힘도 있었고, [[로베르토 도나도니]], [[디노 바조]],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 [[니콜라 베르티]] 등의 미드필더진의 활약도 있었다. 다만 바조 파트너였던 여러 공격수들은 다른 선수들만큼의 존재감을 못냈다(...)], 결승전에서 [[호마리우]]를 위세로 한 엄청난 공격진의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승부차기까지 이끌어냈다. 그러나 승부차기에서 주장 바레시와 공격수 마싸로, 그리고 에이스 바조가 실축, 90년 월드컵에 이어 또다시 승부차기 때문에 울고 만다. 사실 마싸로가 실축한 시점에서 사실 이탈리아의 승부차기 승리는 어렵긴 했지만 그동안 팀을 하드캐리해왔던 에이스인 바조의 실축은 그야말로 온 이탈리아 축구팬들의 경악과 절망을 불러왔으며, 월드컵 후 모든 비난의 화살이 영웅 바조에게 집중되었다. 그외에 전술가로 기대를 모았으나 정작 월드컵 동안엔 기대에 못미쳤던 감독 아리고 사키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여담이지만 이 대회에서 상기 이미지대로 선발멤버가 나온 적은 없다. 말디니, 알베르티니, 바조 셋을 제외하면 멤버도 경기마다 한두 명씩 바뀌었고, 조별예선 2~3차전과 16강전에선 4-3-1-2에 더 가까운 포메이션으로 나오는 등 위 이미지는 그와중 가장 많이 선발멤버로 선택을 받은 선수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저중에서 코스타쿠르타를 바레시로 바꾸면 결승전 멤버[* 그리고 도나도니와 베르티의 위치가 바뀌어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4-4-2 플랫 포메이션의 경우 대체적으로 상기 이미지와 같이 도나도니가 왼쪽, 베르티가 오른쪽에 섰으나 결승전때만은 왠지 베르티가 왼쪽, 도나도니가 오른쪽에 섰다. 뭐 이 둘의 경우 위치에 크게 구애받지않는 선수들이었긴 하지만. 도나도니는 좌우, 중앙 가리지 않고 다 뛸 수 있던 선수고, 베르티는 이 대회에선 다른 선수들이 만족스럽지 못해 상대적으로 제일 많이 선택되긴 했지만 원래는 측면보다는 중앙지향적인 선수였다.] 가 되지만, 결승전을 제외하면 이 대회에선 코스타쿠르타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더 높았기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