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타리파 (문단 편집) === 사상 === 현재 카타리파의 사상은 알기 어렵다. 카타리파는 소멸했고, 그들 자신이 남긴 자료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카타리파의 사상은 주로 반박자들의 문서에서 발견할 수 있다.[* [[개신교]]계 일각에서는 카타리파가 [[재세례파]]와 유사했으나 [[가톨릭]] 측에서 왜곡한 것이라 보기도 한다. 다만 어디까지나 '일각'이며, 개신교계에서도 대다수는 카타리파를 [[이단]]으로 본다.] 전체적으로 선과 악, 신과 악마, 천국과 현세, 영혼과 육체 등을 대칭적으로 뚜렷하게 구분하는 이원론이 특징이며 선한 신의 영혼의 천국은 따로 있고 현재의 세상을 더러운 물질적 악의 세상으로 보고 있다. [[영지주의/기독교|영지주의]]적인 색채가 강했으며, 카타리파는 이를 [[보고밀파]]에서 받아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카타리파는 세상을 렉스 문디(Rex Mundi)라는 악한 존재가 창조했다고 생각하였는데, 고대 영지주의와 다른 점은 세상을 창조한 악한 존재를 [[사탄]]과 동일시 하게 여겼던 것이다. 또한, 카타리파는 [[환생]]을 믿어 금욕적이고 정결한 삶을 살다 죽으면 사탄이 다스리는 더러운 물질적/육체적 현세를 벗어나 죽은 사람의 영혼이 영적인 세계인 선한 신의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믿었다.[* 사실 카타리파의 뿌리인 [[마니교]]도 환생을 믿었는데, 이는 [[마니교]]가 원래 [[불교]]의 교리를 베껴서 만들어진 종교라서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마니교는 아니지만, [[드루즈파]] 같은 [[이슬람교]]의 각종 이단 종파들도 불교나 [[힌두교]]의 영향을 받아서 환생을 믿었는데, 정통 이슬람교에서는 그런 교리들을 당연히 이단으로 취급하여 철저하게 탄압하였다.] 영지주의에서 믿듯이, 물질 세계에 갇힌 영혼은 세상을 벗어나서 영적 세계인 천국에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더러운 세상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고 금욕 생활을 보내는 것이다. 카타리파의 수장인 비숍과 카톨릭보다는 간단하고 평등한 여러 성직자 계급이 있고 일반교인으로 완전한 금욕생활을 보내는 신도가 완덕자(Perfecti)이다. 카톨릭과는 달리 여성도 성직자가 될 수 있었다. 예배 의식으로 엔두라(endura)가 있었으며, 죽음 직전에 안락식(Consolamentum)이라는 의식을 하였다. 그 이외의 [[가톨릭]]에서 하는 [[7성사]]는 일절 거부하였다. 카타리파에게 가장 큰 죄악은 살인이었으며 따라서 육식 또한 기피하였다. 완덕자 (Perfecti) 들은 부산물이나 생식을 통해서 나오는 음식들은 무조건적으로 기피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채식주의]] 생활을 하였다. 고기는 생식활동의 결과이므로 먹지 않았고, 생식활동의 결과물인 다른 음식([[달걀]], [[치즈]], [[버터]]) 역시 금지하였다. 단, [[야채]]와 [[과일]] 이외에도 [[생선]]을 비롯한 해산물은 뭐든지 먹어도 좋았다. 이는 당시 사람들이 해산물은 생식활동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바다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카타리파는 생식을 목적으로 하는 [[성행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자손을 번식하는 것 또한 가장 기피하였다. 이는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 또한 물질세계에서의 고통을 받는 것을 받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속박의 굴레를 씌우는것이라는 의미가 강했다. 고로 그들은 주로 '[[항문성교|생식에 연결되지 않는 성행위]]'를 하였다.[* 여기에서 영어 비속어 "Bugger"가 나왔다. 카타리파가 불가리아인들의 이단종파로 알려져서 "불가르"파로도 불렸기 때문.] 이러한 것들 때문에 고발당한 의심스러운 신도를 조사할시 "합법적으로" 결혼한 것을 확인하였을때 그 신도는 제명되었다. 카타리파에서는 '맹세'를 금지하였다.[* [[신약성경]]에서 [[예수]]가 "하늘이나 땅을 두고 맹세하지 마라."라고 한 구절 때문이다.] 이 때문에 봉건질서를 파괴한다고 여겨져서 세속 봉건 영주들에게도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일체의 상업적 행위도 금지하였다. 다만 카타리파 신도들 중에서 이러한 규율들을 정말 칼같이 다 지키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대부분의 카타리파 신도들은 정상적인 성관계를 가져 아이를 낳았고, 고기와 술과 계란도 마음껏 먹고 살았다.[* 이러한 점은 카타리파의 뿌리인 [[마니교]]도 마찬가지였다. [[마니교]]도 일반 신자들 중에서는 [[육식]]과 [[음주]]를 금지하는 규율들을 별로 지키지 않았던 사람들이 많았다. 사실 어느 종교의 신자라고 해서 그 종교의 규율들 모두를 진짜 칼같이 다 지키는 철두철미한 신자는 드물지 않은가?] 규율들을 다 지키는 것이 어렵기도 했거니와, 가톨릭 교회 당국에 체포당해 "너는 이단인 카타리파가 아니냐?"라고 추궁을 받았을 때, "나는 아내도 있고 아이들도 있고 고기와 술과 계란도 마음껏 먹고 삽니다. 이렇게 카타리파의 규율들을 지키지 않는 나는 결코 카타리파 신도가 아닙니다."라고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한 의도도 있었다. 그럼에도 카타리파가 급속도로 세력이 확산되고 광범위하게 퍼질 수 있던 비결은 당시 [[서유럽]]의 [[가톨릭]]과 [[교황청]]이 세속화가 이뤄지면서 부정부패와 연관되고 권위주의적으로 변모해 갔기 때문이다. 권위주의적인 교회에 반발심을 가지게 된 귀족, 가톨릭의 교리상 성직자[* [[주교]], [[신부(성직자)|신부]], [[부제(성직자)|부제]]. 수녀는 성직자가 아니라 [[수도자]]이며, 수도자는 남녀 모두 될 수 있다(수사, 수녀).]가 될 수 없던[* "[[세례성사|세례]] 받은 [[남자]]만이 (거룩한) [[성품성사|서품]]을 유효하게 받는다(가톨릭교회법 제 1024조)."] 여성, 그리고 [[라틴어]]를 모를 뿐만 아니라 [[문맹]]으로 인해 라틴어로 집전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이후부터 자국어로 미사를 드릴 수 있게 되었고, 이전에는 모두 [[라틴어]]로 미사를 드렸다.] [[미사]]를 이해할 수 없던 서민층 등이 가톨릭에 비해 훨씬 교리적으로 가볍고 입문하기 쉽던 카타리파 등의 이단에 빠져들게 된 것이다. [[중세]] 후기로 갈수록 서민들은 내용을 알 수 없던 성당에서의 [[미사]]보다 집에서 개인적인 예배를 보는 것을 중시하게 되면서 신앙이 올바른지에 대한 검토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게 되었고, 이는 보고밀파, 카타리파와 같이 이단으로 부를만한 교단들이 발생하거나 침투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되게 되었다. 즉 어떻게 보면 카타리파와 이를 진압하기 위해 벌어진 알비 십자군 전쟁은 이후 벌어질 [[교황청]] 권위의 추락과 [[종교개혁]]의 서막과도 같은 사건이라고 볼수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